Silla's home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삼국의 언어 | 22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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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 R
20-23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살던 부락을 나오다가 밭에서 참새를 쫓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말은 한인(韓人)의 말이 아니었다.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인(漢人)으로 이름은 호래다. ... 함자현에서 낙랑군에 연락을 하자, 군은 염사착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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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 R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의 고역을 피하여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진(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연(燕)과 제(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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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 R
진한에서는 낙랑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아(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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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後漢書 南朝宋·范曄) | R
진한(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길, 진(秦)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을 피하여 한국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그들은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진(秦) 말과 흡사하기 때문에 혹 진한(秦韓)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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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양직공도(梁職貢圖) 백제국사 | R
言語衣服畧同高麗 行不張拱 拜不申足 以帽爲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언어와 의복은 고려와 거의 같다. 다닐 때에는 두 손을 맞잡지 않고 절을 할 때에는 다리를 펴지 않는다. 두건를 관(冠)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複衫), 바지를 곤(褌)이라 한다. 그 말에는 중국(夏)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과 한(韓)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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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제번공직도(諸番貢職圖) 신라국사 | R
其俗與高麗相類 無文字 刻木為範 言語待百濟而後通焉 풍속은 고려와 서로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 나무에 새긴 것으로 규범을 삼는다. 언어는 백제인이 말한 다음에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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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_ 양직공도와 제번공직도 해설 | R
송서와 양직공도에 나오는 이야기는 실질적인 국제관계라기보다 각국이 지닌 외교력의 결과로 나타난 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백제의 외교력이 큰 힘을 발휘하였다. 제번공직도의 신라 제기는 양직공도에서 양서와 남사로 이어지는 기록의 전승 과정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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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양서(梁書) | R
(신라)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 때 유망인들이 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가니, 마한에서는 동쪽 땅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였고 그들이 진(秦) 사람인 까닭에 그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이 쓰는 것과 비슷하니,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마한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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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양서(梁書) | R
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 문자가 없어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사용한다. 언어는 백제인이 말한 다음에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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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양서(梁書) | R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行不張拱 拜不申足則異 呼帽曰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 韓之遺俗云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려와 거의 같다.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두건를 관(冠)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複衫), 바지를 곤(褌)이라 한다. 그 말에는 중국(夏)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과 한(韓)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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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주서(周書) | R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 夏言竝王也 妻號於陸 夏言妃也 (백제) 왕의 성은 부여씨로 '어라하'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 말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이라 호칭하니, 중국 말로 왕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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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春秋美姿顔善談笑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담소를 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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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진서(晉書) | R
진한(辰韓)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진(秦)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을 피하여 한(韓)에 들어왔는데, 한(韓)이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성책을 세웠으며, 언어는 진(秦)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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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남사(南史) | R
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 문자가 없어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인이 말한 다음에 통한다.
http://qindex.info/d.php?c=1212#27669
0659 남사(南史) | R
言語服章略與高麗同 呼帽曰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 韓之遺俗云 (백제) 언어와 복장은 고려와 거의 같다. 두건를 관(冠)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複衫), 바지를 곤(褌)이라 한다. 그 말에는 중국(夏)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과 한(韓)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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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북사(北史) | R
진한(辰韓)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 때 유망인들이 역을 피하여 가자, 마한에서 그 동쪽 지경을 분할하여 살게 하였고 그들이 진(秦) 사람인 까닭에 그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이 쓰는 것과 비슷하니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마한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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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1-11-24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신라가 사찬 김약필, 대내말 김원승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말을 익힌 자 세 사람도 약필을 따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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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0-01-01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천황이 대극전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받았다. 발해군의 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행렬에 함께 서 있었다. 天皇御大極殿受朝賀 渤海郡使新羅學語等同亦在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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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0-09-16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신라국이 급찬 김정권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육오안찰사 종4위하 등원혜미조신조갈 등으로 하여금 내조한 이유를 묻게 하였다. 정권이 “직공을 닦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저희 나라의 왕이 조(調)를 가져다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성조의 풍속과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학어 2인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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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0-01-05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신라 사신이 방물을 바치고 이어, “신라 국왕께서 ‘삼가 살찬 김난손과 급찬 김암 등을 보내어 조(調)를 바치고 겸하여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파당판관 해상삼수 등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사신에 딸려 보내고, 또한 상례에 따라 학어생을 보냅니다’고 하셨습니다”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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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공도를 베낀 후대의 사서들 | R
양서와 남사에 나오는 백제와 신라의 풍습은 양직공도의 그것과 동일하다. 양서와 남사가 편찬될 당시의 풍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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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정 한국어 - 2편 말은 민족을 낳고 | R
삼국사기 지리지에 남아있는 고지명을 비교해 본 결과 고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어휘 중 같은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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