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369~0474 年代記 > 0418 毛末

○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5년(325년)에 신라가 모마리질지를 보내어 미질허지벌한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눌지왕 2년(418년)에 모말이 왜로 가 미사흔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눌지왕 10년(426년) 乙丑年(425년)에 제상이 왜로 가 미해를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복호는 장수왕이 즉위한 후 외교 관계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므로 삼국사기의 기록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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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03.07 日本書紀(720) 微叱 1
신라왕이 오례사벌과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 부라모지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허질벌한을 꾀어 “사신 오례사벌과 모마리질지 등이 나에게 ‘우리 왕이 제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에 연루시켜 처자를 모두 종으로 삼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라건데 잠시 본토에 돌아가서 그 사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 속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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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03.07 日本書紀(720) 微叱 2
황태후가 곧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갈성습진언을 딸려 보냈다. 함께 대마에 도착하여 서해의 수문에 머물렀다. 이 때 신라의 사신 모마리질지 등이 몰래 배와 뱃사공을 나누어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풀을 묶어 사람 모습을 만들어 미질허지의 자리에 두고 거짓으로 병든 사람인 채하고 습진언에게 “미질허지가 갑자기 병이 들어서 죽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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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03.07 日本書紀(720) 微叱 3
습진언이 사람을 시켜 병자를 돌보게 했는데, 속인 것을 알고 신라 사신 세 사람을 붙잡아서 우리 속에 집어넣고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신라에 나아가 도비진에 이르러 초라성을 정벌하고 돌아왔다. 이 때 사로잡힌 사람들이 오늘날의 상원과 좌미‧고궁‧인해 4읍의 한인 등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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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 미질(微叱)
○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원년(320년)에 신라왕 파사매금이 미질기지파진간기를 왜에 인질로 바쳤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실성왕 원년(402년)에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나물왕 36년(391년) 庚寅年(390년)에 왕의 셋째 아들 미해를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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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정월에 왕의 동생 복호가 고구려에서 나마 제상과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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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가을에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이 왜국에서 도망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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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1
박제상(朴堤上, 毛末이라고도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고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5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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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2
제상이 아뢰기를, “왜인의 경우는 말로 달랠 수 없습니다. 마땅히 거짓 꾀를 써서 왕자를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신이 저 곳에 가면 청컨대 제가 나라를 배반했다는 말을 퍼뜨려, 저들이 듣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를 보지 않고 율포에 다다라 배를 띄워 왜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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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3
그 아내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가 포구에 이르러 배를 바라다보며 대성통곡하면서, “잘 다녀오시오.”라고 하였다. 제상이 돌아다보며, “내가 왕의 명을 받아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다시 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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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4
왜국으로 들어가서 배반하여 온 자와 같이 하였다. 왜왕이 그를 의심하였다. 백제인으로 전에 왜에 들어간 자가 신라가 고구려와 더불어 왕의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다고 참소하였다. 왜가 마침내 군사를 보내 신라 국경 밖에서 정찰하고 지키게 하였다. 마침 고구려가 쳐들어 와서 왜의 순라군을 포로로 잡아 죽였다. 왜왕은 이에 백제인의 말을 사실로 여겼다. 또한 신라왕이 미사흔과 제상의 가족을 옥에 가두었다는 말을 듣고 제상이 정말로 나라를 배반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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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5
이에 군사를 내어 장차 신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겸하여 제상과 미사흔을 장수로 임명하고 아울러 그들을 향도로 삼아, 해중(海中) 산도(山島)에 이르렀다. 왜의 여러 장수들이 몰래 의논하기를, 신라를 멸망시킨 후에 제상과 미사흔의 처자를 잡아 돌아오자고 하였다. 제상이 그것을 알고 미사흔과 함께 배를 타고 놀며 고기와 오리를 잡는 척 하였다. 왜인이 그것을 보고 다른 마음이 없다고 여겨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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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6
이에 제상은 미사흔에게 몰래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 미사흔이, “제가 장군을 아버지처럼 받들었는데, 어찌 혼자서 돌아가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제상은, “만약 두 사람이 함께 떠나면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미사흔이 제상의 목을 껴안고 울며 작별을 고하고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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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7
제상은 방 안에서 혼자 자다가 늦게 일어나니, 미사흔을 멀리 가게 하려고 함이었다. 여러 사람이, “장군은 어찌 일어나는게 늦습니까?”라고 물었다. “어제 배를 타서 몸이 노곤하여 일찍 일어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곧 나오자, 미사흔이 도망한 것을 알았다. 마침내 제상을 결박하고 배를 달려 추격하였다. 마침 안개가 연기처럼 자욱하고 어둡게 끼어 있어 멀리 바라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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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三國史記(1145) 毛末 8
제상을 왕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냈더니, 곧 목도(木島)로 유배보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을 시켜 땔나무에 불을 질러 전신을 불태우고, 후에 그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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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0
(눌지왕) 10년 乙丑에 왕이 “옛날 아버님께서는 성심으로 백성의 일을 생각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동쪽의 왜로 보냈다가 다시 못 보고 돌아가시었고 내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웃 나라의 군사가 강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았소. 고구려만이 화친을 맺자는 말이 있었으므로 내가 그 말을 믿고 아우를 고구려에 보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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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1
눌지왕은 보해를 보자 미해가 더욱더 생각나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슬펐으므로 눈물을 흘리면서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마치 몸에 한쪽 팔만 있고 얼굴에 한쪽 눈만 있는 것 같아서 비록 하나는 얻었으되 하나는 잃은 상태이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으랴.” 이때 제상은 이 말을 듣고 두 번 절을 한 다음 왕에게 다짐하고 말에 올라타 집에 들르지도 않고 달려 바로 율포의 해안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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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2
제상의 아내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율포에 이르렀으나 남편이 벌써 배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내가 그를 간절히 부르자 제상은 다만 손만 흔들어 보일 뿐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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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3
그는 왜국에 도착하여 거짓으로 꾸며 말하기를 “계림왕이 아무런 죄도 없이 제 아비와 형을 죽였으므로 도망하여 이곳에 이른 것입니다.” 하니 왜왕은 이 말을 믿고 제상에게 집을 주어 편안히 머무르게 하였다. 이때 제상은 항상 미해를 모시고 해변에 나가 놀았다. 그리고 물고기와 새와 짐승을 잡아서 매번 왜왕에게 바쳤다. 왜왕은 매우 기뻐하여 조금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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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4
어느 날 새벽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제상이 말하기를 “지금이 떠날 만합니다.” 하자 미해가 이르기를 “그러면 같이 갑시다.” 하였다. 제상이 “만일 신이 같이 떠난다면 왜인들이 깨닫고 추격할까 염려됩니다. 바라건대 신은 이 곳에 남아 그들이 추격하는 것을 막겠습니다.” 했다. 미해가 이르기를 “지금 나는 그대를 부형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나 홀로 돌아가겠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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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5
제상이 말하기를 “신은 공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써 왕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하고는 술을 따라 미해에게 드렸다. 이때 계림 사람 강구려가 왜국에 와 있었는데 그로 하여금 모시게 하여 미해를 보내었다. 제상은 미해의 방에 들어가서 이튿날 아침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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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6
미해를 모시는 사람들이 들어와 보려 하였으나 제상이 나와 그들을 가로막으며 말하기를 “미해공이 어제 사냥하느라 몹시 피로해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저녁 무렵 좌우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히 여겨 다시 물었다. 대답하여 이르기를 “미해공은 떠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라고 하였다. 좌우 사람들이 왜왕에게 달려가 이를 고하자 왕이 기병을 시켜 그를 쫓게 하였으나 따라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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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7
이에 제상을 가두어 두고 묻기를 “너는 어찌하여 너희 나라 왕자를 몰래 보내었느냐?” 하자 대답하기를 “나는 오로지 계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오. 나는 단지 우리 임금의 소원을 이루게 했던 것뿐이오. 어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겠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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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8
왜왕은 노하여 이르기를 “이미 너는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감히 계림의 신하라고 말하느냐. 그렇다면 반드시 오형(五刑)을 모두 쓸 것이나 만약 왜국의 신하라고 말을 한다면 필히 후한 녹을 상으로 줄 것이다.” 대답하기를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차라리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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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삼국유사(1281) 9
왕이 노하여 제상의 발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베어 그 위를 걷게 하였다 지금 갈대의 붉은 빛깔이 나는 것은 제상의 피라고 한다. 다시 물어 이르기를 “너는 어느 나라 신하인가?”라고 하자, “나는 계림의 신하다.”라고 하였다. 쇠를 달구어 그 위에 제상을 세워 놓고 묻기를 “너는 어느 나라 신하인가?”라고 하자, “나는 계림의 신하다.” 왜왕은 제상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목도(木島)라는 섬에서 불 태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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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문천 - 모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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