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삼한(三韓)시대 연대기 > 562년에서 659년 사이 | 133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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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신라, 임나병합 | 9
0562-01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0562-06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0562-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0562-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0562-0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0562-0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0562_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임나사(任那史) | R    
0562-08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대장군 대반련 협수언을 보내어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치게 하였다. 협수언은 이에 백제가 낸 꾀를 써서 고려를 쳐서 깨뜨렸다. 그 왕이 담을 넘어 도망하자 협수언은 마침내 승세를 타고 왕궁에 들어가 진귀한 보물과 갖가지 재화, 칠직장, 철옥을 모두 얻어 돌아왔다. (어떤 책에는 “550년에 대반협수언련이 백제국과 함께 고려왕 陽香을 비진류도에서 쫒아내었다”고 한다.)
http://qindex.info/d.php?c=1520#39757
0571-03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반전이자랑군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임나를 멸망시킨 사유를 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162
0571-04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천황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황태자는 밖에 나가 없었으므로 역마로 불러들였다. 누워 있는 내전에 불려 들어가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163
0581 수서(隋書 636) | R
그 나라(백제)의 왕 여창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치니, 창(昌)을 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41101
0589 수(隋 581-618) 중국 통일 | R
수(隋)는 북중국에 세워졌던 나라로 589년에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618년에 당(唐)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25002
0590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수(隋) 문제가 사신을 보내 벼슬을 주어 왕을 상개부의동삼사를 삼고, 요동군공의 작위를 계승하게 하고 옷 한 벌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27
0591-0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사신을 수에 들여보내 은혜에 감사하는 표(表)를 올리고 왕으로 책봉해주기를 청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2
0591-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수레와 의복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3
0591-0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사신을 들여보내 은혜에 감사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4
0592-0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사신을 수(隋)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5
0594 수서(隋書 636) | R
(신라의) 왕위가 김진평에 이른 594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방물을 바쳤다. 고조는 진평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41102
0597-04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정축 초하루 백제왕이 왕자 阿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2936
0597-0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사신을 수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6
0598-02 구당서(舊唐書) | R
원(元 영양왕)이 말갈의 기병 만여명을 거느리고 요서에 침입하였는데 영주총관 위충이 물리쳤다. 고조가 이 소식은 듣고 크게 노하여 한왕 양(諒)을 원수로 삼고 수군과 육군을 총동원하여 고려를 치게 하는 한편, 조서를 내려 그의 작위를 삭탈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28
0598-06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의 관작을 삭탈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29
0598-06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한왕 양의 군대가 임유관을 나왔는데 장마를 만나 군량의 운반이 계속되지 않아 군대 안에 식량이 떨어지고 또 전염병에 걸렸다. 주라후는 동래에서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향하다가 역시 바람을 만나 배가 많이 표류하고 가라앉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0
0598-09 구당서(舊唐書 945) | R
군량 수송이 중단되어 6군의 먹을 것이 떨어지고, 또 군사가 임유관을 나와서는 전염병마저 번져 왕사의 군대는 기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요수에 진주하자, 원(元 영양왕)도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표문을 올리는데, '요동 더러운 땅의 신하 원(遼東糞土臣元) 운운하였다. 고조는 이에 군사를 거두어 들이고, 과거와 같이 대우하였다. 원(元)도 해마다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1
0598-0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백제) 왕이 수(隋)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도(軍道)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7
0600-0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려) 사신을 수(隋)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2
0600-0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백제)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니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고 기상이 걸출하였다. 법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5
0602-02 일본서기 推古天皇 10년 | R
來目皇子를 신라를 치는 장군으로 삼고, 여러 神部와 國造·伴造 등과 군사 2만 5천 명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0
0602-04 일본서기 推古天皇 10년 | R
장군 來目皇子가 筑紫에 도착하였다. 이에 嶋郡에 나아가 주둔하여, 선박을 모으고 군량을 날랐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1
0602-06 일본서기 推古天皇 10년 | R
大伴連囓·坂本臣糠手가 함께 백제로부터 도착하였다. 이 때 來目皇子는 병들어 누워 결국 (신라를) 토벌하지 못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2
0602-08 삼국사기 무왕 3년 | R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 명을 보내 항전하자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왔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6
0603-04 일본서기 推古天皇 11년 | R
다시 來目皇子의 형 當摩皇子로 신라를 정벌하는 장군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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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07 일본서기 推古天皇 11년 | R
癸卯 當摩皇子가 難波로부터 배를 출발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4
0603-07 일본서기 推古天皇 11년 | R
당마황자가 파마에 도착하였다. 그 때 같이 간 처(妻) 사인희왕이 적석에서 죽었다. 이에 적석의 회립 산등성이 위에 장사지내고 당마황자가 돌아왔다. 마침내 (신라를) 정벌하지 못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9625
0603-08 고려, 신라의 북한산성 공격 | 3
0603-0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0603-0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0603_ 아차산성 발굴 | R    
0607 수서(隋書 636 唐·魏徵等) 東夷 | R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0663
0607 북사(北史 659 唐·李延壽) 四夷 | R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0662
0607 삼국사기 영양왕 18년 | R
왕이 번방(藩邦)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으므로 황제가 토벌해올까 두려워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4
0607-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백제) 한솔 연문진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또한 좌평 왕효린을 보내 공물을 바치면서 고구려를 치자고 요청하였다. 양제가 이를 허락하고 고구려의 동정을 살피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3
0607-05 삼국사기 영양왕 18년 | R
군대를 보내 백제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옮겨서 석두성을 습격하여 남녀 3천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8
0608-02 삼국사기 영양왕 19년 | R
장수에게 명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사로잡은 포로가 8천인이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19
0608-03 삼국사기 무왕 09년 | R
수나라 문림랑 배청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우리 나라 남쪽 길을 통과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26708
0608-03 삼국사기 무왕 09년 | R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26
0608-04 삼국사기 영양왕 19년 | R
신라 우명산성을 쳐서 빼앗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0
0611-02 삼국사기 무왕 12년 | R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26707
0611-02 삼국사기 영양왕 22년 | R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치기로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1
0611-02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백제)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치려 하므로, 왕이 국지모를 수나라에 보내 행군 일정을 물으니 양제가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내리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보내 왕과 상의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26723
0611-04 삼국사기 영양왕 22년 | R
행차가 탁군의 임삭궁(臨朔宮)에 이르니, 사방의 병력이 모두 탁군에 모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5
0612 삼국사기 무왕 13년 | R
수나라 6군이 요하를 건너자, 왕이 국경에서 군비를 엄하게 하여 수나라에 협조한다고 표명하였으나 실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26725
0612-01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모두 1백 13만 3천 8백 명인데 2백만 명이라 하였으며, 군량을 수송하는 자는 그 배였다. 매일 1군씩을 보내어 서로 거리가 40리가 되게 하고 진영이 연이어 점차 나아가니, 40일만에야 출발이 완료되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에 걸쳤다. 어영(御營) 안에는 12위·3대·5성·9시를 합하고, 내외 전후 좌우 6군을 나누어 예속시키고 다음에 출발하게 하니 또한 80리를 뻗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2
0612-02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황제의 행차가 요하에 도착하여 조서를 내려 천하에 사면을 베풀고, 형부상서 위문승 등에게 명하여 요하 좌측 백성들을 위로하게 하고, 10년 간 조세를 면제해주고 군현을 만들어 설치하고 서로 통치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3
0612-05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요동성은 여러 번 나가 싸우다가 불리하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4
0612-06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황제는 이에 요동성 서쪽 수 리 떨어진 곳에 머무르다가 육합성에 거둥하였다. 우리의 여러 성들이 굳게 지키고 함락되지 않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5
0612-06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좌익위대장군 내호아가 배의 뒷부분과 앞부분이 수백 리에 이르게 바다에 떠올라 먼저 패수로 들어와서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아군과 서로 만났는데 이를 대파하였다. ... 내호아가 정예병력 수만 명을 골라 곧바로 성 아래로 나아갔다. ... 숨은 병력이 나가니 내호아가 크게 패하여 겨우 붙잡히는 것을 면하였고 사졸로서 돌아간 자는 수천인에 불과하였다. 아군이 추격하여 배 있는 곳에 이르렀으나 주법상이 진영을 정비하고 기다리고 있어 아군이 후퇴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6
0612-06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모두 압록수 서쪽에 모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7
0612-06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왕이 대신 을지문덕을 보내 그 진영에 나아가 거짓 항복하게 하였는데, 실은 그 허실을 보려고 함이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8
0612-06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우문술이 사졸들이 피로하여 다시 싸울 수 없음을 보고, 또 평양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으로 헤아려, 드디어 그 속임수에 따라 돌아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29
0612-07 삼국사기 영양왕 23년 | R
살수에 이르러 군사가 반쯤 강을 건넜을 때 아군이 뒤에서 후군을 공격하니 우둔위장군 신세웅이 전사하였다. ... 처음 9군이 요하에 이르렀을 때는 무릇 30만 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온 것은 겨우 2천7백인이었고 수만을 헤아렸던 군수와 기계는 모두 잃어버려 없어졌다. 황제가 크게 화가 나서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에 병력을 이끌고 돌아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30
0613-01 삼국사기 영양왕 24년 | R
황제가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기를 “고구려라는 작은 오랑캐가 상국을 업신여긴다. 지금 바다를 공략하고 산을 옮길 일이라도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하물며 이 오랑캐쯤이야?”라 하고, 다시 정벌할 것을 논의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7
0613-01 삼국사기 영양왕 24년 | R
황제가 조서를 내려 천하의 병력을 징발하여 탁군에 집결시키고 백성들을 모집하여 효과를 삼고, 요동 옛 성을 수리하여 군량을 저장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6
0613-04 삼국사기 영양왕 24년 | R
황제가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요동성 을 공격하였는데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허락하였다. ... 마침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글이 도착했다.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고, 또 고관의 자손들이 모두 양현감의 처소에 있음을 듣고 더욱 걱정하였다. 병부시랑 곡사정이 평소에 양현감과 친하였으므로 속으로 불안하여 도망쳐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31
0613-04 삼국사기 영양왕 24년 | R
황제가 밤에 비밀리에 여러 장수를 불러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8
0614-02 삼국사기 영양왕 25년 | R
황제가 전체 신료에게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정벌할 일을 의논하게 하였으나 여러 날이 지나도록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조서를 내려 천하의 병사들을 다시 징발하여 여러 길로 함께 진군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39
0614-07 삼국사기 영양왕 25년 | R
왕이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고 그에 따라 곡사정을 돌려보내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고 사지절을 보내 내호아를 소환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0
0614-07 삼국사기 영양왕 25년 | R
황제가 회원진에서 군대를 돌이켰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1
0614-10 삼국사기 영양왕 25년 | R
황제가 서경에 돌아와서 우리 사신과 곡사정을 대묘에 알리고, 곧 왕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으나 왕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장수들에게 명하여 장비를 엄하게 하고 다시 후에 군사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으나 마침내 실현하지 못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32
0618 수(隋)왕조 몰락 | R
양제는 술에 취해 듣지 않다가, 618년 이에 불만을 품은 근위군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양제의 죽음을 들은 이연은 양유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한다.
http://qindex.info/d.php?c=1520#36110
0618-09 삼국사기 영류왕 01년 | R
영류왕(榮留王)은 이름이 건무(建武)이고 [성(成)이라고도 한다] 영양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영양왕이 재위 29년에 서거하였으므로 즉위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6109
0623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이 해 신라가 임나를 공격하여 임나가 신라에 복속되었다. ... 그 해에 대덕 境部臣雄摩侶·소덕 中臣連國을 대장군으로 하고, 소덕 河邊臣禰受·소덕 物部依網連乙等·소덕 波多臣廣庭·소덕 近江脚身臣飯蓋·소덕 平群臣宇志·소덕 大伴連·소덕 大宅臣軍을 부장군으로 하여,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1394
0623-01 삼국사기 무왕 24년 | R
당나라에 대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고조가 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사신을 보내 왕을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책봉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0
0623-07 삼국사기 무왕 24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2
0623-10 삼국사기 무왕 24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과하마를 바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26724
0625-11 삼국사기 무왕 26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1
0626 삼국사기 무왕 27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라는 갑옷을 바치면서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고 상국을 입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호소하였다. 고조는 산기상시 주자사에게 조서를 보내 우리와 고구려가 서로의 원한을 잊으라고 달랬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3
0626-12 삼국사기 무왕 27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4
0627-08 삼국사기 무왕 28년 | R
왕이 조카 복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백제와 신라가 대대로 원수를 맺어 서로 자주 침공한다고 하면서 왕에게 조서를 보내 말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7
0629-09 삼국사기 무왕 30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6
0631-02 삼국사기 영류왕 14년 | R
왕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동북은 부여성에서 동남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여 리(里)였다. 모두 16년만에 공사를 마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3
0631-03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백제왕 의자가 왕자 풍장(豐章)을 들여 보내어 볼모로 삼았다. (의자왕은 641년에 왕이 되었으므로 이 기록은 연도를 잘못 표기했거나 무왕을 의자왕으로 잘못 표기한 거 같다.)
http://qindex.info/d.php?c=1520#32942
0631-09 삼국사기 무왕 32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5
0632-0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맏아들 의자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9
0632-12 삼국사기 무왕 33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78
0636 수서(隋書 唐·魏徵等) 東夷 | R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敬仰之,恆通使往來。신라와 백제는 모두 왜(倭)를 대국으로 여기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항상 사신을 통하고 왕래한다.
http://qindex.info/d.php?c=1520#41817
0636-02 삼국사기 무왕 37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1
0637-12 삼국사기 무왕 38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철제 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쳤다. 태종이 후히 위로하고 비단 도포와 채색비단 3천 단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0
0640-02 삼국사기 무왕 41년 | R
자제들을 당나라에 보내 국학에 입학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4
0640-10 삼국사기 무왕 41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철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82
0641-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서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무왕 재위 33년에 태자가 되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렸다. 무왕이 사망하자 태자가 왕위를 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사부랑중 정문표를 보내 왕을 주국(柱國) 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왕(百濟王)으로 책봉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4
0641-08 삼국사기 의자왕 01년 | R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1
0642 신당서(新唐書 1060) | R
여러 대신이 건무(영류왕)와 상의하여 죽이기로 하였다. 개소문이 알아차리고 제부의 병사들을 불러 모아 거짓으로 크게 열병을 한다고 말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의 참석을 청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다 죽여버리니 무려 백여명이나 되었다. 또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죽여서 시체를 찢어 도랑에 던져 버렸다. 이어 건무 아우의 아들인 장(藏 보장왕)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2
0642 신당서(新唐書 1060) | R
태종은 건무(영류왕)가 부하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사자에게 부절을 주어 보내어 조문하게 하였다. 어떤 이가 태종에게 토벌 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태종은 초상을 기회로 하여 남을 치고 싶지 않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6
0642-01 삼국사기 의자왕 02년 | R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2
0642-02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아담산배련비라부, 초벽실사반금, 왜한서직현을 백제 조문사의 처소에 보내어 그 쪽 소식을 물었다. 조문사가 대답하기를 “백제국왕이 저희들에게 ‘새상(塞上)은 항상 나쁜 짓을 하므로 돌아오는 사신에 딸려 보내주기를 청하더라도 일본 조정에서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7
0642-02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백제 조문사의 종자 등이 “지난 해 11월 대좌평 지적이 죽었습니다. 또 백제 사신이 곤륜(崑崙)의 사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의 아들 교기(翹岐)와 누이동생 4명, 내좌평 기미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 명이 섬으로 추방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6
0642-07 삼국사기 의자왕 02년 | R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하여 미후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3
0642-08 삼국사기 의자왕 02년 | R
장군 윤충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서울에 전달하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나라 서쪽의 주·현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왕은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섬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9
0642-11 삼국사기 보장왕 01년 | R
보장왕은 이름이 장(臧)이고, 나라를 잃은 까닭에 시호가 없다. 건무왕의 동생 대양왕의 아들이다. 건무왕(영류왕) 재위 25년에 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장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4
0642_ 삼국사기 열전 죽죽 | R
대야성이 함락되는 과정이 잘 설명되어 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01
0642_ 삼국사기 선덕왕 11년 | R
처음 대야성이 패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이는 김춘추의 딸이었다. 김춘추가 이를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루 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 “죽령은 본래 우리의 땅이니, 그대가 만약 죽령 서북의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보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8
0642_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김춘추 탈출 1) | R
춘추가 청포 3백 보를 왕이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차려 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무르익자 농담하듯 말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97
0642_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김춘추 탈출 2) | R
춘추는 그 말을 듣고서 그 뜻을 깨달아 왕에게 글을 보내 “두 영(嶺)은 본래 대국의 땅이니, 신이 귀국하여 저희 왕께 그것을 돌려주라고 청하겠습니다. 저를 믿지 못한다고 하시면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왕이 이에 기뻐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96
0642_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김춘추 탈출 3) | R
그때 고구려 첩자인 승려 덕창이 사람을 시켜 왕에게 고하였다. 왕은 앞서 춘추가 맹세하는 말을 들었고 또 첩자의 이야기를 듣고서 감히 다시 붙잡아 둘 수가 없어 후하게 예우하여 돌려보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95
0642_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김춘추 탈출 4) | R
국경을 벗어나자 바래다준 사람에게, “나는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고자 군사를 청하러 왔으나 대왕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셨으니 이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지난 번 대왕께 글을 드린 것은 죽음을 면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오.”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694
0643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이 해 백제 태자 여풍(餘豐)이 벌통 4개를 가져와 삼륜산에 놓아 길렀으나 끝내 번식시키지 못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1395
0643-01 삼국사기 의자왕 03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8
0643-06 삼국사기 보장왕 02년 | R
당 태종이 말하기를 “개소문이 그 임금을 죽이고 국정을 제멋대로 하니 진실로 참을 수 없다. 지금의 병력으로도 이를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백성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내가 거란과 말갈로 하여금 그들을 길들이려 하는데, 어떠한가?”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5
0643-06 신당서(新唐書 1060) | R
장(藏 보장왕)을 요동군왕 고려왕(遼東郡王 高麗王)의 벼슬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41911
0643-09 신당서(新唐書 1060) | R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글을 올려, “고려와 백제가 연합하였으므로 침범을 받을 것 같습니다. 삼가 천자께 의지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1912
0643-09 신당서(新唐書 1060) | R
황제의 편지를 주어 보내 고려를 나무라고 공격하지 말도록 하였다. 사자가 채 이르기 전에 개소문이 벌써 신라의 두 성을 탈취하였다. 현장이 태종의 유지를 알리자, “지난 날 수(隋)의 침략을 받았을 적에 신라는 우리 땅 5백리를 빼앗아갔소. 다 돌려주지 않으면 싸움을 중지할 수 없소.” 라고 하였다. 현장이, “지나간 일을 논할 것이 있겠소? 요동(遼東)은 본시 중국의 군현이지만, 천자께서는 그래도 취하지 않으시었소.”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41913
0643-11 삼국사기 의자왕 03년 | R
왕이 고구려와 화친을 맺었다. 그 목적은 신라의 당항성을 빼앗아 그들이 당나라로 조공하러 가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 왕은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신라왕 덕만(선덕여왕)이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왕이 이 사실을 듣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5
0644-01 삼국사기 의자왕 04년 | R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을 보내 두 나라를 타이르자 왕이 표문을 올려 사죄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9
0644-09 삼국사기 의자왕 04년 | R
신라 장군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7성을 빼앗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5
0644-10 신당서(新唐書 1060) | R
태종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고자 장안의 노인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며, “요동(遼東)은 옛 중국 땅이며 도적 막리지가 그 군주를 죽였으므로 짐(朕)이 친히 경략하려 한다. 그러므로 어른들과 약속을 하겠는데 나를 따라 나서는 아들이나 손자들은 내가 잘 보살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곧 포(布)·속(粟)을 후하게 내려 주었다. 라고 하고, 곧 포(布)·속(粟)을 후하게 내려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66
0644_ 삼국사기 의자왕 04년 | R
왕의 아들 융(隆)을 태자로 삼았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30
0645-05 삼국사기 의자왕 05년 | R
왕은 태종이 직접 고구려를 치면서 신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을 타서 신라를 습격하여 7성을 빼앗으니, 신라에서 장군 유신을 보내 공격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6
0645-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고려·백제·신라가 함께 사신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백제의 조사(調使)가 임나의 사신을 겸하여 임나의 조를 바쳤다. ... "과거 우리의 먼 조상의 시대에 백제국은 내관가가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세 개로 묶은 그물과 같았다.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 속하도록 주었고, 후에 삼륜률외군동인을 보내 임나국의 경계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왕은 칙명에 따라 그 경계를 다 보여주었으나, 조(調)에 빼놓은 것이 있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41393
0646-05 삼국사기 보장왕 05년 | R
왕과 막리지 개금(蓋金 연개소문)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아울러 미녀 두 명을 바쳤다. 황제(태종)가 이들을 돌려보내며 사신에게 말하였다. “여색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나 그들이 친척을 떠나 마음 상하는 것이 딱해 나는 취하지 않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967
0647-10 삼국사기 의자왕 07년 | R
장군 의직이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무산성 아래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감물과 동잠 두 성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유신이 직접 군사들을 격려하며 결사적으로 싸워서 아군을 크게 격파하니 의직이 단신으로 돌아왔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7
0647_ 일본서기 효덕천황 | R
신라가 上臣 大阿湌 金春秋 등을 보내고 博士 小德 高向黑麻呂·小山中 中臣連押熊을 보내 와서, 孔雀 1쌍과 鸚鵡 1쌍을 바쳤다. 그리고 春秋를 인질로 삼았다.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談笑를 잘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12
0648-03 삼국사기 의자왕 08년 | R
의직이 신라 서부 변경의 요차 등 10여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4
0648-04 삼국사기 의자왕 08년 | R
옥문곡으로 진군하니, 신라 장군 김유신이 이들과 두 번 전투하여 크게 이겼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2
0648_ 삼국사기(1145) | R
(신라) 이찬 김춘추와 그의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의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의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07
0648_ 삼국사기(1145) | R
‘내가 지금 고구려를 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희 신라가 두 나라 사이에 끌림을 당해서 매번 침략을 당하여 편안할 때가 없음을 가엽게 여기기 때문이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내는 바가 아니고 보배와 사람들은 나도 가지고 있다. 내가 두 나라를 바로 잡으면 평양(平壤) 이남의 백제 땅은 모두 너희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
http://qindex.info/d.php?c=1520#40696
0648_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 R
“저는 나라의 위엄과 신령함에 의지하여 두 차례 백제와 크게 싸워 20성을 빼앗고 3만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며, 또한 [김]품석공과 그 부인의 뼈를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하늘이 주신 다행이 이른 것이지 제가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http://qindex.info/d.php?c=1520#35702
0649-08 삼국사기 의자왕 09년 | R
왕이 좌장 은상을 보내 정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석토성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신라 장수 유신, 진춘, 천존, 죽지 등이 이를 맞아 공격하였으나 불리해지자,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도살성 아래 진을 치고 재차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3
0651 구당서(舊唐書 945) | R
(백제) 사신이 돌아갈 적에 의자에게 새서를 내려 이르기를, "왕은 빼앗은 신라의 성을 모두 본국에 돌려 주시오. 신라도 사로 잡아간 백제의 포로를 모두 왕에게 돌려 보내야 할 것이오. 왕이 만약 나의 처분에 따르지 않는다면 짐은 이미 법민이 청하는대로 왕과 싸우게 놓아 둘 것이오. 또한 고려와 약속하여 멀리서 서로 돕지 못하게 할 것이오. 고려가 만약 이 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즉시 글단의 제번을 시켜 요택을 건너 쳐들어 가게 할 것이오."
http://qindex.info/d.php?c=1520#41320
0651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이 해 新羅의 貢調使 知萬沙湌 등이 唐나라의 옷을 입고 筑紫에 이르렀다. 조정에서 함부로 풍속을 바꾼 것을 싫어하여 꾸짖고 돌려 보냈다. 그 때 巨勢大臣이 “지금 신라를 정벌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정벌하는 상황은 모든 힘을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難波津으로부터 筑紫海 가운데까지 서로 이어지도록 배를 가득 띄우고 신라를 불러 그 죄를 묻는다면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청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41396
0652-01 삼국사기 의자왕 12년 | R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0
0653-08 삼국사기 의자왕 13년 | R
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21
0654-03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01년 | R
태종무열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 용춘의 아들이다.
http://qindex.info/d.php?c=1520#35847
0655 구당서(舊唐書 945) | R
백제가 고려·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북계를 침입하여 3십여 성을 함락시켰다. 춘추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구원을 청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17
0655-02 삼국사기(1145) | R
(백제) 태자의 궁을 수리하는데 대단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하였으며,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건축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16
0656-03 삼국사기 의자왕 16년 | R
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좌평 성충이 적극 말렸더니, 왕이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하려는 자가 없었다. 성충은 옥에서 굶주려 죽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40
065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이 해 사신을 新羅에 보내 “沙門 智達, 間人連御廐, 衣網連稚子 등을 너희 나라 사신에 딸려 唐에 보내려고 한다”고 말하였는데, 新羅가 그 말에 따라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沙門 智達 등이 돌아왔다. 西海使 小花下 阿曇連頰垂, 小山下 津臣傴僂 傴僂는 우리 말로 俱豆磨(くつま)라 한다 가 百濟로부터 돌아와 駱駝 1마리, 당나귀 2마리를 바쳤다.
http://qindex.info/d.php?c=1520#40692
0657-01 삼국사기 의자왕 17년 | R
왕의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각각 식읍을 주었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14
0659 북사(北史 唐·李延壽) 四夷 | R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仰之,恆通使往來。신라와 백제는 모두 왜(倭)를 대국으로 여기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항상 사신을 통하고 왕래한다.
http://qindex.info/d.php?c=1520#41818
0659-04 삼국사기 무열왕 06년 | R
백제가 자주 변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장차 치려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군사를 요청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520#35708
0659-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가을 7월 丙子 초하루 戊寅 小錦下 坂合部連石布, 大仙下 津守連吉祥이 唐에 사신으로 갔다. …… 일을 마친 후 칙지로 ‘국가가 내년에 반드시 해동을 정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 왜의 사신들은 동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드디어 서경에 숨겨 특별한 곳에 가두어 두었다. …… 고통을 겪은 지 해가 지났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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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경의 세계지도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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