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0918 왕씨고려

왕씨고려는 신라의 영토와 백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왕조만 바뀐 것이다. 고려의 영토와 백성 대부분은 발해로 흡수되었고 그래서 발해는 고려계승국을 자처하였다. 왕씨고려는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고려를 한국사에 끼워넣었는데, 이때부터 민족 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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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훤
상주 출신의 견훤은 서남 지방의 新羅 장수로 있다가 전주를 점령하고 “新羅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百濟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며 百濟를 세웠다. 200여 년 전 百濟의 땅이었던 지역에서 新羅에 반하는 세력을 키우는 데에는 百濟계승 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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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궁예
견훤百濟가 세워진 이듬해에 버림받은 신라왕자 궁예는 “지난날 新羅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髙麗를 깨뜨렸다. 내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며 髙麗를 세웠다. 궁예가 新羅 및 견훤百濟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髙麗계승만한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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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王建
王建이 호족으로 있던 開城은 원래 樂浪郡에 속했던 곳이고 '황제 顓頊의 후손 祖明이 東海를 건너와 平壤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였고 그 후손 受兢이 箕子로부터 王氏 성을 하사 받았다'는 開城王氏 이야기는 樂浪王氏 이야기와 닮아 있으며 '王建의 어머니가 三韓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성을 韓氏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朝鮮韓氏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王建의 정체성은 髙麗가 아니라 樂浪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髙麗계승을 내세운 것은 궁예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1719#1954 SHARED COMMENT
 
(4) 부여, 예맥, 옥저 그리고 고려
발해는 부여, 예맥, 옥저 그리고 고려의 옛 땅을 각각 부여부, 용원부(책성부), 남해부 그리고 압록부로 편제하였다. 왕고는 발해가 망하기 전에 세워졌으니 부여, 예맥, 옥저 그리고 고려의 옛 땅은 일단 왕고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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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여, 고려 그리고 발해
발해가 망한 이후 요나라에 대항해서 부여, 貊 그리고 발해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모두 일어났다. 왕고가 발해의 유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민족통일을 했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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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성계
全州의 李安社는 170여 집을 이끌고 三陟을 거쳐 宜州로 가 살았는데 왕고는 그를 宜州兵馬使로 삼아 高原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散吉大王이 雙城에 주둔하자 그는 1천여 집과 함께 항복하고 종친의 딸을 散吉에게 시집보낸 뒤, 時利를 거쳐 斡東으로 옮겨갔다. 이때가 1254년이었다. 1255년에 원나라는 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그를 南京 등처 五千戶所의 首千戶로 삼고 達魯花赤을 겸하게 하였다. 1274년에 李安社가 죽자 이듬해에 아들 李行里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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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일성
뿌리를 찾아서: 전주김씨(全州金氏)위키백과: 김일성위키백과: 김정일¦김일성
 
(8) 三皇五帝
三皇 - 伏羲 神農 黃帝五帝 - 少昊 顓頊 嚳 堯 舜黃帝少昊顓頊-2070 ~ -1600 夏-1600 ~ -1046 商0648 晉書0695 新羅1145 三國史記3황5제夏商周断代工程王氏源派記(車柳氏宗譜史由來)뿌리를 찾아서 - 開城王氏
 
(9) 계승국가와 나라의 정체성
0117 The Roman EmpireRomania's Geographic ChallengeThe Germans - Charlemagne and the Saxons | DW DocumentaryThe Holy Roman EmpireThe Holy Roman EmpireWhy Do Greece & Macedonia Hate Each Other?WIKIPEDIA: Russian Empire¦계승국가와 나라의 정체성
 
건국자와 나라의 정체성
이제까지 여러 건국자의 뿌리를 살펴보았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나라의 시조 아골타가 신라왕족의 후손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듣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럼 금나라와 금나라를 계승한 청나라는 모두 우리 역사네.” 여기서 말하는 우리 역사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뜻하는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그 국가를 세운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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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고려는 高句麗를 계승하지도 않았고 발해를 통일하지도 않았으며 新羅의 후속국일 뿐이다.
왕씨고려는 高句麗를 계승하지도 않았고 발해를 통일하지도 않았으며 新羅의 후속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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