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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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03 日本書紀(720)
▐ 7국이면 낙동강 유역을 대부분 포함하므로 古奚津은 그 서쪽 즉, 전라도의 바닷가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남쪽은 제주도다. '남쪽 오랑캐'라는 표현이 이질적인 문화권이었다는 인상을 주므로 더욱 바다 건너 제주도가 의심된다.
강진은 예로부터 탐라로 건너가는 나루여서 耽津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당나라로 건너가는 나루를 唐津이라 한 것과 같다.
따라서 忱彌多禮는 제주도로, 古奚津은 강진으로 가정한다.
이 가정은 屠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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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6.04 三國史記(1145)
▐ 침미다례는 倭가 391년에 백제에게 줬다가 397년에 다시 빼앗았다. 침미다례가 탐라라면, 476년 이전에 다시 백제에게 줬을 것이다. 倭는 백제가 475년에 한강유역을 상실하자 구마나리를 주어 재건을 도운 적이 있다. 그 시기에 같은 맥락에서 탐라를 백제에게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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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9.04 日本書紀(720)
백제의 문근왕이 죽었다. 천왕이 곤지왕의 다섯 아들 중 둘째인 말다왕이 어린 나이에 총명하므로 칙명으로 궁궐에 불러 직접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근하게 조심하도록 타이르고 그 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병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 군사 500인을 보내 자기 나라로 호위해 보냈는데, 이 사람이 동성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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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8.08 三國史記(1145)
▐ 무진주는 영산 지역에 있고 영산 지역은 이 당시에 전방후원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백제의 왕이 왜 이 지역을 지날 수 있었는지는 일본서기에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동성왕은 倭가 세운 백제왕이기 때문이다. 동성왕이 倭가 주었던 탐라를 치는 것은 倭의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倭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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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8.08 三國史記(1145)
▐ 498년에 백제 동성왕이 무진주에 이르렀을 때 탐라가 항복해 온 것은 391년에 倭와 백제의 연합군이 고해진에 이르렀을 때 침미다례가 항복해 온 것과 유사하다. 탐라는 육지의 상황을 지켜보다 침공의 정보가 있으면 미리 항복하여 그것을 방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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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12 日本書紀(720)
남해의 ●耽羅人이 처음으로 백제국과 통교하였다.
▐ 삼국사기(1145)의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나오는 躭羅·耽羅 이야기에 의해 初通이라는 표현은 부정된다. 일본서기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枕彌多禮가 이즈음에는 耽羅로 불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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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9 隋書(636)
陳을 평정한 해에 어떤 전선 한척이 표류하여 바다 동쪽의 ●□牟羅國에 닿았다. 그 배가 돌아올 적에 백제를 경유하니 昌(위덕왕)이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냈다.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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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9 北史(659)
陳을 평정한 해에 전선이 표류하여 해동의 ●躭牟羅國에 닿았다. 그 전선이 돌아 가면서 백제를 통과하게 되자 昌(위덕왕)은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내고 아울러 사신도 보내어 표를 올려 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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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津縣
道康縣은 본래 백제의 道武郡이었는데, 신라 때에 陽武로 고쳤고, 고려 때에 도강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시켰다. 탐진현은 본래 백제의 冬音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탐진으로 고쳐 陽武郡에 예속시켰으며, 고려 때에는 영암군에 예속하였다가 뒤에 장흥부에 예속시켰다. 1417년에 병마도절제사의 營을 道康의 옛 치소에 옮겨 두 현을 합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탐진을 치소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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