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 (2) 위략 부정 | 15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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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사기(史記) 화식열전 | R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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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사기(史記) 흉노열전 | R
其後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그후 연나라에는 진개라는 현명한 장수가 있어 동호의 인질이 되었는데 동호가 그를 매우 신뢰하였다. 돌아와 동호를 침공하여 내쫓고 천여 리의 땅을 빼앗았다. 이어 연나라는 장성을 쌓았는데 조양에서 시작해서 양평에까지 이르렀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동호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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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사기(史記) 조선열전 | R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筑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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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염철론(鹽鐵論 BC 81) | R
燕襲走東胡,辟地千裏,度遼東而攻朝鮮。 연(燕)이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했다. 또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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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위략(魏略) | R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연(燕)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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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사기(史記) | R
秦滅燕屬遼東外徼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는 요동 변방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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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 BC 202 위략(魏略) | R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否)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否)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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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후 사기(史記) 조선열전 | R
漢興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屬燕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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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사기(史記 BC 91) | R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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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삼국지(三國志 289) | R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준왕은) 그의 가까운 신하와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경유하여 한(韓)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그 뒤 준(準)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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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위략(魏略) | R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준(準)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한씨(韓氏)라는 성(姓)을 사칭하였다. 준(準)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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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잠부론(潛夫論 85-162) | R
其後韓西亦姓韓,爲衛滿所伐,遷居海中。 그후 한서도 역시 한(韓)씨 성을 사용하였는데, 위만의 침공을 받아 바다 가운데로 옮겨갔다. (案韓西蓋卽朝鮮. 朝誤爲韓, 西卽鮮之轉, 故 『尙書大傳』 以西方爲鮮方. 살펴보건대 韓西는 朝鮮이 아닐까 싶다. 朝를 韓으로 잘못 썼고 西는 鮮을 달리 쓴 것으로 보인다. 상서대전에도 西方을 鮮方으로 표기하기도 했었다. - 1800년경 왕계배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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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23 삼국지(三國志 289) | R
지황 연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 군에서는 염사착의 공과 의를 표창하고, 관직과 밭 그리고 집을 주었다. 그의 자손은 여러 대를 지나 125년에 이르러서는 그로 인하여 부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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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4 후한서(後漢書 445) | R
한(韓)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광무제는 소마시를 대하여 한(漢)의 염사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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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 Wikipedia | R
주나라 역사가 집안인 사마 가문의 후손이며, 아버지인 사마담은 전한의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으로 천문과 달력에 밝고, 고전에도 통달하였다. 사마천의 나이 42살쯤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太初曆)을 기원전 104년 무제 (태초 원년)에 완성하였다. 그 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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