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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나오는 '주나라의 호왕이 즉위한 기묘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는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武王乃封箕子於朝鮮)'는 사기의 기록과 연결된 것이다.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사기의 기록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평가되므로 여기에 연결된 단군 설화도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091 사기
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其後箕子朝周過故殷虛感宮室毀壞生禾黍箕子傷之欲哭則不可欲泣為其近婦人乃作麥秀之詩以歌詠之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 그 후 기자는 주나라에 배알하고 옛 은나라의 유적을 지나게 되었는데 궁궐이 무너지고 그곳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부인들이나 하는 거라 시만 한 수 지어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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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 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주나라의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으니 수가 1,908세다. ● 고려 제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으로 周武王을 虎王으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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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설의 형성 과정
논어에서 단순히 '기자라는 인물이 殷이 망하기 전에 떠났다'고 한 이야기가, 죽서기년에서 '나중에 周에 조배를 왔다'는 이야기로 발전했으며, 상서대전에서는 '기자가 떠난 곳이 조선이며 周무왕이 그곳을 봉지로 인정했다'는 이야기로까지 발전시켜 놓았다. 나아가 한서에서는 기자가 범금8조로 조선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졌고 위략에서는 위만에게 쫓겨난 조선왕을 그의 후손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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