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369~0474 年代記 > 0369.03 日本書紀(720)

왜의 군사가 반도로 건너와 백제의 군사와 함께 동부에 있는 신라를 치고 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 7국을 복속시킨 뒤, 다시 서부로 돌아 忱彌多禮 및 比利·辟中·布彌支·半古 4읍의 항복을 받아 백제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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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00
卌九年春三月 以荒田別鹿我別爲將軍 則與久氐等共勒兵而度之 至卓淳國 將襲新羅 時或曰 兵衆少之 不可破新羅 更復 奉上沙白蓋盧 請増軍士 卽命木羅斤資沙々奴跪是二人不知其姓人也 但木羅斤資者百濟將也 領精兵 與沙白蓋盧共遣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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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01
49년 봄 3월 황전별과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이 “군대가 적어서 신라를 깨뜨릴 수 없으니, 다시 사백·개로를 보내어 군사를 늘려 주도록 요청하십시오”라 하였다. 곧 목라근자와 사사노궤에게 (이 두 사람은 그 성을 모르는데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군이다) 정병을 이끌고 사백·개로와 함께 가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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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02 卓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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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10
倶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 因以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七國 仍移兵西廻 至古爰津 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於是 其王肖古及王子貴須 亦領軍來會 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自然降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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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11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 때 비리·벽중·포미지·반고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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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12 七國
㖨┆加羅┆卓淳┆南加羅┆多羅┆安羅┆比自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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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13 古奚津┆忱彌多禮
忱彌多禮·枕彌多禮·枕羅·耽羅·躭牟羅
13659 SHARED
 
0369 14 四邑
比利┆辟中┆布彌支┆半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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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20
是以 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 共會意流村今云州流須祇 相見欣感 厚禮送遣之 唯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登辟支山 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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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21
그래서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의류촌(지금은 주류수기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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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22 意流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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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30
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 時百濟王盟之曰 若敷草爲坐恐見火燒 且取木爲坐恐爲水流 故居磐石而盟者示長遠之不朽者也 是以 自今以後 千秋萬歲 無絶無窮 常稱西蕃 春秋朝貢 則將千熊長彥至都下 厚加禮遇 亦副久氐等而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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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31
다시 고사산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백제왕이 “만약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로 자리를 만들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된다. 그러므로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오래도록 썩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니, 지금 이후로는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국이라 칭하며 봄 가을로 조공하겠다”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천웅장언을 데리고 도읍에 이르러 후하게 예우를 더하고 구저 등을 딸려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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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0474 倭의 韓國개입
0369~0474 倭의 韓國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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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일본서기가 왜곡은 있어도 날조는 없다.
일본서기 신공황후조에는 波沙寐錦, 宇流助富利智干, 微叱己知波珍干岐 그리고 毛麻利叱智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 이야기는 모두 삼국사기에 대응하는 기록이 있다. 婆娑尼師今(80), 于老(309), 未斯欣(402) 그리고 毛末(418) 이야기인데, 시점은 모두 옮겨놓았지만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69년에 왜가 백제와 함께 한국 남부를 공략해서 나눠가졌다'는 이야기 또한 완전 날조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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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대응 기록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한 사료에만 나오고 다른 사료에는 대응하는 기록이 없는 경우가 있다. '369년에 왜가 백제와 함께 한국 남부를 공략해서 나눠가졌다'는 일본서기 기록과 '396년에 고려가 백제를 침공하여 58성을 받아갔다'는 광개토왕릉비 기록 그리고 '400년에 고려가 5만의 군대를 보내어 신라를 점령한 왜를 쫓아냈다'는 광개토왕릉비 기록이 대표적이다. 광개토왕릉비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면 일본서기 또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318#1485 SHARED
 
❸ 뒷받침하는 정황이 많다.
왜가 백제와 신라를 압도하며 한국을 장악한 정황은 여러 사료에 나타난다.
318#13732 SHARED
 
교정
▐ 荒田別·木羅斤資는 古奚津에서 忱彌多禮를 복속시킨 뒤 북상하며 半古와 布彌支를 복속시켰고 백제왕 부자는 比利와 辟中을 복속시키며 남하하였는데, 두 군대는 意流村에서 만나 회동하고 荒田別은 왜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318#27040 SHARED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해석
왜의 황전별과 녹아별이 탁순에 이르러 사백과 개로를 백제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오자 함께 신라를 치고 7국을 평정하였다. 서쪽으로 가 고해진에 이르러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초고와 귀수가 왔는데 이때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초고는 의류촌에서 왜군을 전송하고 천웅장언과 함께 백제의 벽지산과 고사산에 차례로 올라 맹세하고 도읍으로 돌아와 대접한 뒤 구저를 딸려 천웅장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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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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