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솔까역사이야기 > 공녀 | 18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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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4-16 조선왕조실록 | R
임금(태종 이방원)이 황제(영락제)의 서신에 절하고 나서 서쪽 섬돌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황제의 뜻을 전하기를,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http://qindex.info/d.php?c=4909#40580

1417-04-04 조선왕조실록 | R
전국의 혼인을 금지하니, 새해 인사차 보낸 통역 사신 원민생이 명나라의 서울로부터 돌아와 황제(영락제)가 미녀를 요구한다고 (태종 이방원에게) 넌지시 알린 때문이었다.
http://qindex.info/d.php?c=4909#41006

1417-08-16 조선왕조실록 | R
사신 황엄·해수가 한씨·황씨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한씨의 오빠 부사정 한확, 황씨의 형부 녹사 김덕장, 근수하는 시녀 각 6인, 화자 각 2인이 따랐다. 길 옆에서 보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http://qindex.info/d.php?c=4909#40747

1419-01-19 조선왕조실록 | R
(세종의 왕위계승을 승인하는 영락제의 문서가) 경복궁에 당도하자 상왕(태종)은 궁문 밖에서 영접하고 사신은 절·고를 받들고 근정전에 당도하였다. 임금(세종)은 뜰에 내려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네 번 절하고 면복을 입고 나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멀리 사은하며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山呼舞蹈四拜) 면복을 벗었다.
http://qindex.info/d.php?c=4909#40748

1419-01-19 조선왕조실록 | R
예식이 끝나니 한확은 악차 앞에 와서 네 번 절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임금(세종)이 사신과 더불어 행례할 적에 한확은 “감히 그럴 수 없다.” 고 사양하는데 임금이 강권하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한확은 잔치에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는 본국 사람인데 그 누이가 황제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가서 총애를 받고 있었다.
http://qindex.info/d.php?c=4909#4114

1424 세종 06년 | 8
1424 세종 06년 07월 08일 | R     1424 세종 06년 07월 13일 | R     1424 세종 06년 07월 20일 | R     1424 세종 06년 09월 1일 | R     1424 세종 06년 09월 25일 | R     1424 세종 06년 10월 17일 | R     1424-10-17 조선왕조실록 | R     1424-10-17 조선왕조실록 | R    

1426 세종 08년 | 6
12월 | 11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 R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 R     1426 세종 08년 04월 07일 | R     1426 세종 08년 04월 18일 | R     1426 세종 08년 11월 18일 | R    

1427 세종 09년 | 10
1427 세종 09년 02월 06일 | R     1427 세종 09년 05월 01일 | R     1427 세종 09년 05월 01일 | R     1427 세종 09년 05월 04일 | R     1427 세종 09년 07월 18일 | R     1427 세종 09년 07월 19일 | R     1427 세종 09년 07월 19일 | R     1427 세종 09년 07월 20일 | R     1427 세종 09년 07월 21일 | R     1427-05-01 조선왕조실록 | R    

1428-10-04 조선왕조실록 | R
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돌아가니, 임금(세종)이 모화루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보내고, 진헌사 총제 조종생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 한확이 함께 갔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이라 하였다.
http://qindex.info/d.php?c=4909#40750

Sejong the Great | R
Sejong the Great (May 7, 1397 – May 18, 1450, r. 1418 - 1450) was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of Korea.
http://qindex.info/d.php?c=4909#26738

Yongle Emperor | R
The Yongle Emperor (Traditional Chinese: 永樂; Simplified Chinese: 永乐; pinyin: Yǒnglè; Wade-Giles: Yung-lo; IPA: [i̯ʊŋlɤ]) (May 2, 1360 – August 12, 1424), born Zhu Di (Chu Ti) , was the third emperor of the Ming Dynasty of China from 1402 to 1424.
http://qindex.info/d.php?c=4909#26737

번국과 속국에 대한 이런 정의 | R
이시이 아키라(石井明) 도쿄대 명예교수 등도 류큐가 중국의 번속국이라는 의견을 냈다. 번국은 대국의 제후 등이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를 뜻하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대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형태를 뜻한다.
http://qindex.info/d.php?c=4909#40581

삼국/신라시대 | 10
0428(308) 일본서기(720) | R     0453-11 일본서기(720) | R     0458-07 일본서기(720) | R     0461-04 일본서기(720) | R     0466 魏書 - 고려 장수왕 54년 | R     0472 魏書 - 백제 개로왕 18년 | R     0631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 R     0646 삼국사기 고려 보장왕 | R     0722 삼국사기 신라 성덕왕 | R     0791 삼국사기 신라 원성왕 | R    

왕고시대 | 24
1231 고려사절요 | R     1273-03 고려사(高麗史 1451) | R     1273-03 고려사(高麗史 1451) | R     1275 고려사절요 | R     1276 고려사절요 | R     1288 고려사절요 | R     1290 고려사절요 | R     1292 고려사절요 | R     1293 고려사절요 | R     1294 고려사절요 | R     1300 고려사절요 | R     1301 고려사절요 | R     1302 고려사절요 | R     1305 고려사절요 | R     1307 고려사절요 | R     1308 고려사절요 | R     1309 고려사절요 | R     1310 고려사절요 | R     1331 고려사절요 | R     1335 고려사절요 | R     1338 고려사절요 | R     1343 고려사절요 | R     1353 원사 | R     1362 고려사절요 | R    

일본군위안부 [日本軍慰安婦] | R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
http://qindex.info/d.php?c=4909#26741

조선사람의 해외여행 | R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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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공녀 | 2
두산백과: 왕소군 | R     두산백과: 화번공주 | R    

환향녀 [還鄕女] | R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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