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7) 신라의 기원 | 42
in Silla's webmarks all the webmarks


003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구려 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0
003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왕이 기뻐하며 좌우에 일러 “이는 어찌 하늘이 내게 내려준 아들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거둬 길렀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알지(閼智)라 했다. 그가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金氏)라 했고, 시림의 이름을 계림(雞林)으로 고치고 이것으로 국호를 삼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1
0262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味照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이칠의 딸이고,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으로 조분왕의 딸이다. 그의 선조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大輔)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았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았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2
0289 삼국지(三國志) | R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3
0289 삼국지(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 | R
辰韓者 古之辰國也 진한은 옛 진국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70
0289 삼국지(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 | R
진한의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의 고역을 피하여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4681
0289 삼국지(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 | R
변진 24국 중에서 12국은 진왕(辰王)에게 신속되어 있다. 진왕은 항상 마한사람으로 왕을 삼아 대대로 세습하였으며, 진왕이 자립하여 왕이 되지는 못하였다. (위략: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한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476
0445 후한서(後漢書) 列傳 東夷 | R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 모두 옛 진국이다. 皆古之辰國也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7664
0445 후한서(後漢書) 東夷 | R
진한(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길, 진(秦)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을 피하여 한국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69
0636 수서(隋書) 列傳 東夷 | R
新羅國 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之地 或稱斯羅 신라국은 고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漢)대의 낙랑 땅으로서 사라라고도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17536
0636 수서(隋書) 列傳 東夷 | R
魏將毌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者遂爲新羅焉 위(魏)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옥저로 쫓겨 갔다.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 갔는데,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17537
0636 수서(隋書) 列傳 東夷 | R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신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17538
0636 양서(梁書) 列傳 諸夷 | R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 때 유망인들이 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가니, 마한에서는 동쪽 땅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였고 그들이 진(秦) 사람인 까닭에 그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7663
0636 양서(梁書) 列傳 諸夷 | R
又辰韓王常用馬韓人作之 世相係 辰韓不得自立爲王 明其流移之人故也 恒爲馬韓所制 마한의 왕은 항상 진한 사람을 세워 대대로 이어 가고, 진한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었으니, 그들이 분명히 흘러 들어와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7803
0636 양서(梁書) 列傳 諸夷 | R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473
0648 진서(晉書) 列傳 四夷傳 | R
진한(辰韓)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진(秦)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을 피하여 한(韓)에 들어왔는데, 한(韓)이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6014
0648 진서(晉書) 列傳 四夷傳 | R
辰韓常用馬韓人作主 雖世世相承 而不得自立 明其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也 진한은 언제나 마한 사람을 임금으로 삼아 비록 대대로 계승하지만 스스로 임금이 되지는 못하였으니, 그들이 흘러 들어온 사람이 분명한 까닭에 마한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7804
0659 북사(北史) | R
대대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 때 유망인들이 역을 피하여 가자, 마한에서는 그 동쪽 지경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고, 그들이 진(秦) 사람인 까닭에 그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71
0659 북사(北史) | R
또 진한의 왕은 항상 마한 사람을 세워 대대로 이어가고, 진한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었으니, 그들이 분명히 흘러 들어와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475
0659 북사(北史) | R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신라는 고려 동남쪽에 있는데, 한(漢) 때의 낙랑 지역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66
0659 북사(北史) | R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474
0659 북사(北史) | R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일설에 의하면 위(魏)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옥저로 쫓겨 갔다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고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68
0659 북사(北史) | R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신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2967
0945 구당서(舊唐書) 東夷列傳 | R
新羅國 本弁韓之苗裔也 其國在漢時樂浪之地 東及南方俱限大海 西接百濟 北鄰高麗 신라국은 본래 변한의 후예이다. 그 나라는 한(漢)대의 낙랑 땅에 있으니, 동쪽과 남쪽은 모두 큰 바다에 연하여 있고, 서쪽은 백제와 접하였으며, 북쪽은 고려와 인접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4682
1060 신당서(新唐書) 東夷列傳 | R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신라는 변한의 후예이다. 한(漢)대의 낙랑 땅에 위치하니 횡으로는 1천리 종으로는 3천리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4680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前此中國之人苦秦亂東來者衆多處馬韓東與辰韓雜居至是寖盛故馬韓忌之有責焉 예전에 중국인들이 진(秦)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쪽으로 온 자들이 많았다. 마한 동쪽에 자리잡고 진한과 뒤섞여 산 경우가 많았다. 이때에 이르러 점점 번성하자 마한이 이를 싫어하여 책망한 것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7688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 수풀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이에 가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이 있었다. 이를 갈라보니 갓난아이가 나왔다. 거두어 길렀는데, 나이 10여 세가 되자 재주가 특출하고 숙성하였다. 6부인들은 그 출생이 신이하므로 이를 받들고 존경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받들어 임금으로 삼은 것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472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 抵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옛날 황실의 딸이 남편 없이 잉태를 하여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자 바다에 배를 띄워 진한으로 가서 아들을 낳으니, 해동의 시조 왕이 되었다. 황실의 딸은 지상의 신선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에 있는데, 이것이 그녀의 상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1856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신라 고사(古事)에는 "하늘이 금궤(金櫃)를 내려 보냈기에 성(姓)을 김씨(金氏)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듣건대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로 성을 삼았고 ...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4
1281 삼국유사(三國遺事) | R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서 도피해 온 자들이므로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고을과 동리 이름을 사탁(沙涿)·점탁(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 사람들의 방언에 탁(涿) 자를 읽을 때 발음을 도(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혹 사량(沙梁)이라 쓰고, 양(梁)을 또한 도(道)라고도 읽는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115
1281 삼국유사(三國遺事) | R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의 딸이다. 이름은 사소(娑蘇)이고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얻어 해동에 와서 오래 머물고 돌아가지 않았다. 그 처음 진한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으니 대개 혁거세와 알영 이성(二聖)이 나온 바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116
1281 삼국유사(三國遺事) | R
금상자에서 나왔으므로 김(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 仇刀)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5
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 R
진한(辰韓)이 비록 연인(燕人)이나 후에 진(秦)이 통일하였기 때문에 통칭하였고 옛사람들이 진(秦)과 진(辰)을 통용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40958
KBS: 문무왕비문의 비밀 1 | R
신라 김씨왕족은 흉노(匈奴)의 후손인가?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6
KBS: 문무왕비문의 비밀 2 | R
왜 흉노(匈奴)의 후예라고 밝혔나?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7
KBS: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 R
대당 고故김씨부인 묘명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신라김씨의 조상이 흉노족이라는 주장을 다시 재조명 해본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8
Wikipedia: Xiongnu | R
a confederation of nomadic tribes from Central Asia with a ruling class of unknown origin.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59
삼국지와 후한서의 차이점 | R
삼국지에서 변한(弁韓)으로 표기된 나라를 후한서에서는 변진(弁辰)으로 표기하고 있다. 삼국지에는 진한이 옛 진국이라고 되어 있고 후한서에는 삼한 전체가 옛 진국이라고 되어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 모두 마한에서 진왕을 선출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그 통치 영역이 삼국지에는 마한의 목지국과 변진한의 12개국이었다고 되어 있고 후한서에는 삼한 전체였다고 되어 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34678
신라문무대왕릉비(新羅文武大王陵碑) | R
한국금석문 종합정보 시스템.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60
연합뉴스: 소호금천씨와 김일제, 그리고 신라김씨 | R
신라김씨 스스로 그 뿌리를 흉노에서 찾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9세기 재당(在唐) 신라인의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의 덮개돌.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쪽 교외 곽가탄(郭家灘)에서 출토된 이 묘지명에서 신라김씨는 소호금천씨에서 비롯되어 한 무제 때 투항한 흉노 왕자 김일제로 혈통이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61
위키백과: 김일제 | R
한무제때 한나라의 포로가 된 흉노 왕자 김일제는 한무제의 신임을 받아 노예에서 해방되고 관리로 기용되어 김씨성을 하사받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2262
execute:0.677 sec, load: sec [ refresh ] [ Twttr ] [ Fcbk ] [ Gplus ] [ Email to Silla ]
Qindex.info 2004,   Introduction | 소개 | 介绍 | 導入 | qindex.inf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