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1) 일본서기의 신뢰성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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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 일본서기 신공황후 원년 | R
또 일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왕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왕의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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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 일본서기 신공황후 원년 | R
壬寅 초하루 甲辰 북으로 火前國 松浦縣에 이르러 玉嶋里의 작은 냇가에서 식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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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 일본서기 신공황후 5년 | R
癸卯 초하루 己酉日 신라왕이 汙禮斯伐과 毛麻利叱智 富羅母智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微叱許智伐旱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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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1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2 | R
조분왕(助賁王) 2년(231) 7월에 이찬(伊湌)으로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려고 나가 [감문국을] 깨뜨리고,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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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3 | R
[조분왕] 4년(233) 7월에 왜인이 침입해 오자, [석]우로가 사도(沙道)에서 습격하여 나아가 싸웠다.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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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3 삼국사기(1145) | R
왜인이 침입해 왔으므로 우로가 사도(沙道)에서 추격하여 싸웠는데,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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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4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4 | R
[조분왕] 15년(244) 정월에 승진하여 서불한(舒弗邯)이 되었고 군사의 일을 겸하여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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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5 | R
[조분왕] 16년(245)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자 나가서 쳤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이 되어 군사들이 추위로 괴로워하자, [석]우로는 몸소 다니며 위로하고 손수 땔나무에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여러 사람들이 마음으로 감격하고 기뻐하기를 마치 솜옷을 두른 것같이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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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9 삼국사기 첨해 이사금 3년 | R
여름 4월에 왜 인(倭人)이 서불한(舒弗邯) 우로 (于老)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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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1 | R
석우로(昔于老)는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의 아들이다. [혹은 각간(角干) 수로(水老)의 아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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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6 | R
첨해왕(沾解王)이 재위하였을 때, 사량벌국(沙梁伐國)이 전에 우리에게 속하였다가 갑자기 배반하고 백제로 돌아갔다. [석]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량벌국을] 토벌하여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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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7 | R
[첨해왕] 7년 계유(癸酉, 253)에 왜국의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객관(客館)에 있었는데, [석]우로가 그를 대접하였다. 손님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언젠가는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鹽奴)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 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우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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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8 | R
왜인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잡았다.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앉히고 그를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그때] [석]우로의 아들은 어려 걷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안고 말을 타고 돌아왔다. 후에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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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9 | R
미추왕(味鄒王)때에 왜국(倭國)의 대신(大臣)이 와서 공물을 바쳤다. [석]우로의 아내가 국왕에게 청하여 사사로이 왜국 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곧 그가 술에 몹시 취하게 되자, 장사를 시켜 마당으로 끌어내려 그를 불태워 전일의 원한을 갚았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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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3 삼국사기 열전 - 석우로 논평 | R
논하여 말한다. [석]우로가 당시 대신으로 군무와 국정을 맡아,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비록 이기기 못하더라도 패하지는 않았다. 그런 즉, 그 계책은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였다. 그러나 한 마디 말의 어그러짐으로 스스로 죽음을 취하였고, 또 두 나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였다. 그 아내가 원한을 갚았으나, 또한 변칙이요 정도(正道)는 아니다. 만일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의 공적은 또한 기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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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2-06 삼국사기(1145) 유례 이사금 9년 | R
왜의 군사가 사도성(沙道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므로, 일길찬 대곡(大谷)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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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삼국사기 흘해 이사금 | R
흘해 이사금(訖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命元夫人)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이때 이르러 기림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기를 '흘해는 어리지만 노성(老成)한 덕이 있다.'하고는 받들어 그를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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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1 삼국유사 나물왕(奈勿王) 김제상(金堤上) 1 | R
제17대 나밀왕(那密王)36년 경인(庚寅)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이르기를 “우리 임금이 대왕께서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신 등을 시켜 백제가 지은 죄를 대왕에게 아뢰게 하는 것이오니,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심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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