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 (1) 기자조선 부정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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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 R
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주왕이 무도하여) 미자는 떠나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거스르는 말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공자는 “상나라에 세 명의 어진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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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 Wikipedia | R
서기전 479년에 죽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공자의 제자와 문인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도 여러 대에 걸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傳, 記, 論, 語 등으로 불리다 전한때 논어로 고착되었고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된 것은 후한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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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 R
五十一年冬十一月戊子,周師渡盟津而還。王囚箕子,殺王子比干,微子出奔。 겨울 11월 무자에 주나라 병사가 맹진을 건너 돌아 왔다. 왕(상나라 주왕)은 기자를 가두고 왕자인 비간은 죽였는데 미자는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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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 R
十六年 箕子來朝 (주나라 무왕) 16년에 기자가 와서 조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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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기년(竹書紀年) - Wikipedia | R
죽서기년은 황제의 시대로부터 전국시대 魏양왕에 이르기까지의 일이 저술되어 있다. 279년에 魏양왕의 무덤에서 대나무에 기록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것을 학자들이 정리하고 교정하여 책으로 편찬하였는데 이 책도 점차 흩어지고 분실되어 남송시대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심약의 주가 붙은 금본죽서기년이 있는데 이는 명나라 때의 위작으로 간주된다. 1917년에 왕국유가 고서에 인용된 기록을 모아 고본죽서기년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기자 이야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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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대전(尙書大傳) | R
무왕은 은(殷)을 이기자 공자 녹부에 이어 기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언짢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그 소식을 듣고 조선을 그의 영지로 내려 주었다. 기자는 이제 주나라로부터 영지를 받았으니 신하의 예의를 안 지킬 수가 없어 무왕 13년에 배알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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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 尙書) - Wikipedia | R
상서는 고대 국가들의 정사에 관한 문서를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크게 虞書·夏書·商書·周書의 4부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요순시대,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에 관련된 내용을 싣고 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불타 없어진 것이 많아 漢문제가 복생에게 사람을 보내 배워오게 하였는데 이것이 금문상서이다.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발견했다는 고문상서도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상서는 동진의 매색이 조정에 바친 금문상서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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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BC 91) | R
이에 무왕이 곧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 그 후 기자는 주나라에 배알하고 옛 은나라의 유적을 지나게 되었는데 궁궐이 무너지고 그곳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부인들이나 하는 거라 시만 한 수 지어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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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82) | R
은(殷)이 쇠퇴하자 기자는 조선으로 가서 그 사람들에게 예의, 농사, 양잠 그리고 길쌈을 가르쳤다. 낙랑조선 사람들이 금지된 8가지 조항을 어기면,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 배상해야 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데 죄를 면하려면 50만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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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 R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禮)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예(禮)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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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 Wikipedia | R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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