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5.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나? > 한국통일의 배경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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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 삼국사기(1145) 모본왕 04년 | R
왕은 날로 포학해져 앉아 있을 때에는 항상 사람을 깔고 앉았고, 누울 때에는 사람을 베개 삼았다. 사람이 혹 움직이면 용서하지 않고 죽였다. 신하로서 간하는 자가 있으면 활을 당겨 그에게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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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3 삼국사기(1145) 모본왕 06년 | R
두로가 칼을 품고 왕 앞으로 나아가니 왕이 그를 눌러 끌어다 앉자, 이에 칼을 뽑아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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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08 삼국사기(1145) 봉상왕 09년 | R
왕이 나라 안의 남녀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궁실을 수리하였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고 일이 괴로워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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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삼국사기(1145) 고국원왕 41년 | R
백제왕(근초고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서거하였다. 고국의 들에 장사지냈다. 백제 개로왕이 위(魏)에 표(表)를 보내어 말하기를 “쇠(釗 고국원왕)의 머리를 베어 매달았다.”고 하였는데 지나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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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2 위서(魏書 554 北齊·魏收) 列傳 | R
(개로왕이 북위에 올린 표) 그들의 선조인 쇠(釗 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선조인 수(須 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쇠(釗)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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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삼국사기(1145) 개로왕 21년 | R
왕은 나라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안에는 궁실과 누각과 대사 등을 지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욱리하에서 큰 돌을 가져다가 곽을 만들어 부왕의 뼈를 장사하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았는데 사성 동쪽에서 숭산 북쪽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창고가 텅 비고 백성들이 곤궁해져서 나라의 위태로움은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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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09 삼국사기(1145) 개로왕 21년 | R
고구려왕 거련(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왕이 싸울 수가 없어 성문을 닫고 있었다. ... 성안이 위험에 빠지고 왕은 도망하여 나갔다.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 밑으로 묶어 보내 죽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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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8 문주왕(4년) | R
가을 8월에 병관좌평 해구(解仇)가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법을 어지럽히며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왕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다. 9월에 왕이 사냥을 나가 밖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적을 시켜 해치게 하여 드디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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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07 삼국사기(1145) 성왕 32년 | R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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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 삼국사기(1145) 선덕왕 11년 | R
대야성이 패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이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이를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루 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얼마가 지나 “슬프다! 대장부가 되어 어찌 백제를 삼키지 못하겠는가?”하고는, 곧 왕을 찾아뵙고 “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게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라 말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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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8 삼국사기(1145) 의자왕 02년 | R
장군 윤충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자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서울에 보내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서쪽 지방의 주, 현에 나누어 살게 하고 군사를 남겨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왕이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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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07 삼국사기(1145) 태종무열왕 07년 | R
13일에 의자왕이 좌우 측근을 데리고 밤을 타서 도망하여 웅진성에 몸을 보전하고, 의자왕의 아들 융(隆)은 대좌평 천복 등과 함께 나와 항복하였다. 법민이 융(隆)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 융은 땅에 엎드려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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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China | R
Chinese civilization originated in various regional centers both along the Yellow River and the Yangtze River valleys in the Neolithic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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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이란 말은 언제 생겨났을까? | R
삼국사기에는 왜(倭)가 한국통일 즈음인 67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日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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