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 (1) 견훤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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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고사기(古事記) | R
도진이명(陶津耳命)의 딸 활옥의비매(活玉依毘賣)는 용모가 단정하였는데, 밤마다 어떤 남자가 찾아와 사랑을 나누었다. ... 그 부모가 "삼실을 바늘에 꿰어 옷에 찔러 두어라"고 하였다. 이튿날 삼실을 따라가 보니 문고리 구멍을 지나 밖으로 나가 미화산 신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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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견훤 1 | R
견훤(甄萱)은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이(李)씨였으나 후에 견(甄)으로 씨(氏)를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으며 자기 힘으로 살다가 후에 가문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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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견훤 2 | R
처음견훤이 태어나 아기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면 어머니가 그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었는데, 아이를 숲 밑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에서 들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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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견훤 5 | R
드디어 무진주(武珍州)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아직 감히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못하였다. 스스로 서명하기를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 지절(持節) 도독전무공등주군사(都督全武公等州軍事) 행전주자사(行全州刺使) 겸 어사중승(御史中丞)상주국(上柱國) 한남군개국공(漢南郡開國公) 식읍이천호(食邑二千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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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견훤 7 | R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총장 연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 배에 군사 13만을 싣고 바다를 건너게 하였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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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견훤 8 | R
드디어 후백제 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나라 광화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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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1281) 견훤 1 | R
≪ 삼국사 (三國史)≫ 본전(本傳)에는 “ 견훤 은 상주 (尙州) 가은현(加恩縣) 사람으로, 함통(咸通) 8년 정해에 태어났다. 본래의 성은 이(李)씨였는데 뒤에 견(甄)으로 씨(氏)를 삼았다. ... ≪ 이비가기 (李碑家記)≫에는 “ 진흥대왕 의 왕비 사도 (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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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1281) 견훤 2 | R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광주 (光州) 북촌(北村)에 살았다. 딸 하나가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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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1281) 견훤 3 | R
처음에 견훤 이 나서 포대기에 싸였을 때,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밥을 가져다 주려고 아이를 수풀 아래 놓아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이니 마을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다. 아이가 장성하자 몸과 모양이 웅장하고 기이했으며 지기가 크고 기개가 있어 범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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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견씨(黃磵甄氏) | R
견씨(甄氏)는 중국 중산(中山)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서 한(漢)나라 때 사람인 견풍(甄豊)의 후예(後裔)로 전한다. 우리나라 견씨는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견훤(甄萱)을 시조(始祖)로 하는 황간견씨(黃磵甄氏)와 아자개(阿慈介)를 시조로 하는 상주견씨(尙州甄氏)가 있으며, 그 외에도 남양(南陽), 청양(靑陽), 전주(全州) 등 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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