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 외부로부터의 유민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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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 BC 202 위략(魏略) | R
二十餘年而陳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승과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燕)·제(齊)·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준(準)에게 망명하므로 준(準)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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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9 삼국지(三國志 289) | R
陳勝等起 天下叛秦 燕齊趙民避地朝鮮數萬口 진승(陳勝)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진(秦)에 반기를 드니, 연(燕)·제(齊)·조(趙)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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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전 삼국지(三國志 289) | R
진한(辰韓)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의 고역을 피해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떼어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진(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연(燕)과 제(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낙랑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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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사기(史記 BC 91) | R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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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 109 사기(史記) | R
燕丹散亂遼閒 滿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燕)과 단(丹)의 무리가 요(遼)를 어지럽힐 때, 만(滿)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진번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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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9 이전 위략(魏略 220-265) | R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相) 역계경이 우거에게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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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晉·陳壽)/卷30 | R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늙은 노인의 말에 의하면 진나라의 노역 또는 난리를 피해 한국으로 도망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라를 邦이라 하고 활을 弧라 하며 도적을 寇라 하고 술을 따르는 것을 行觴라 하며 서로를 부를 때 徒라 하는데 진나라 사람과 비슷하다. 秦韓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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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온조왕 (00년 BC18) | R
온조는 한수 남쪽[河南]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 계통[世系]은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扶餘)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부여(扶餘)를 씨(氏)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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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유리 이사금(14년) | R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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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탈해 이사금(0년) | R
탈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때 나이는 62세였다. 성은 석씨이고 왕비는 아효부인이었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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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혁거세 거서간(00년) | R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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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무대왕릉비(新羅文武大王陵碑) | R
신라김씨는 자신들이 흉노왕자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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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당신라인 대당고김씨부인묘명 전문 | R
신라김씨인들 스스로 그 뿌리를 흉노에서 찾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9세기 재당(在唐) 신라인의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쪽 교외 곽가탄(郭家灘)에서 출토된 이 묘지명에서 신라김씨는 소호금천씨에서 비롯되어 한 무제 때 투항한 흉노 왕자 김일제로 혈통이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2009.4.22 << 문화부 기사참조, 권덕영 부산외대 교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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