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 (8) 요동사(遼東史) > 0916 요(遼)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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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드디어 후백제 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나라 광화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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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세계지도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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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0923 량(後梁, 朱梁) | R
당나라 말기 혼란한 정세속에 당나라 조정을 장악한 군벌 주전충이 907년 당나라 소선제(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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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0960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 | R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를 말한다. 황하 유역의 5개 왕조와 화중 및 화남의 10개의 지방 정권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다. 五代: 량(後梁 朱梁 907-923) - 당(後唐 923-937) - 진(後晉 石晉 936-947) - 한(後漢 947-951) - 주(後周 9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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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요나라 건국 | R
거란의 8부족은 9세기말 당나라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발흥하기 시작하였다. 916년 질라부(迭刺部)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모든 부족을 통합하여 거란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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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0921 요사(遼史 1343) | R
고려가 사신을 파견하여 보검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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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궁예 휘하의 사람들이 마음이 홀연히 변해 태조를 추대하였다. 궁예는 도망하여 달아나다 아랫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태조가 즉위하여 원년을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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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요사(遼史 1343) | R
(왕고가) 와서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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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발해멸망 | R
925년 12월 말, 야율아보기는 군대를 이끌고 발해를 공격하였고, 발해는 요나라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다. 결국 발해는 보름여 만인 926년 1월 15일에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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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요사(遼史 1343) | R
(왕고가) 와서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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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3 고려사(高麗史 1451) | R
당(後唐 923-936)에서 왕경과 양소업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왕건은) 주몽의 상서로운 개국을 뒤쫓아 나라의 군주가 되고 기자가 번국을 이룩한 자취를 밟아서 자애와 상서를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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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5-10 신라멸망 | R
왕이 말하기를, “작고 위태로움이 이와 같아 형세가 보전할 수 없다. 이미 강해질 수 없고 또 약해질 수도 없으니, 죄 없는 백성들의 간과 뇌장이 땅에 쏟아지게 하는 일을, 나는 차마 할 수 없다.”라 하고, 시랑 김봉휴에게 편지를 가지고 가게 해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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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6 견훤백제 멸망 | R
신검 및 두 동생과 장군 부달, 소달, 능환 등 40여 인이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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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6-0946 진(後晉, 石晉) | R
후당의 실력자였던 석경당이 세운 국가이다. 944년 요나라와 진(石晉)은 단주에서 교전을 벌였고, 945년 2번째 원정에서는 석중귀가 직접 출정하여 재차 교전을 벌였다. 947년 2대 황제 야율덕광이 직접 군을 이끌고 세 번째로 원정을 하자, 요양에서 후진의 주력은 격파되었다. 그대로 요나라군은 개봉을 함락시키고 후진을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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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9 요사(遼史 1343) | R
진(石晉)에서 존호를 올리니 이를 받고, (왕고에) 사신을 보내어 이 사실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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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2 자치통감(資治通鑑) | R
처음 고려 왕건이 군사력으로 이웃 나라들을 병합하고 자못 강대해졌다. 오랑캐 중 말라(襪囉)를 통하여 고조(석경당)에게 말하기를 ‘발해는 우리와 혼인하였습니다. 그 왕이 거란의 포로가 되었으니 (石晉) 조정과 함께 그들을 쳐서 구하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나 고조는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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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2-10 고려사(高麗史 1451) | R
거란이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선사했다. 왕은 거란이 과거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오다가 갑자기 의심을 일으켜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켜 버린 것을 볼 때, 이는 매우 무도한 나라로서, 화친을 맺어 이웃으로 삼을 만한 나라가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그 사신 30명을 섬으로 유배보냈으며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두어 다 굶어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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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3-04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내전으로 나가 대광 박술희를 부른 다음 친히 훈요(訓要)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 거란(契丹)은 짐승과 같은 나라로 우리와는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 또한 다르니 복식이나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하라. ... 강포한 나라와 이웃하고 있으니 태평할 때에도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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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5 자치통감(資治通鑑) | R
황제(석중귀)가 거란과 원수가 되자 말라(襪羅)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황제가 고려로 하여금 거란의 동쪽을 어지럽혀 그 힘을 분산시키고자 하였다. 왕건이 죽고 아들 왕무가 권지국사를 칭하며 표를 올려 이를 알려왔다. 11월에 왕무를 대의군사 고려왕으로 삼고 통사사인 곽인우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거란을 치도록 하였다. 곽인우가 그 나라에 이르러 병력이 매우 약한 것을 보고 말라의 말이 단지 왕건의 과장일 뿐 거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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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0 송(趙宋) 건국 | R
후주(後周)의 전전도점검이었던 조광윤이 후주 최후의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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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송(趙宋)에서 태상경 왕저와 비서감 여문중을 보내 왕의 관작을 더해주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짐이 큰 강역에 있으면서 천하를 한 집으로 만들자, 온 나라가 입조해 오니 ... 이에 특별히 검교태부 벼슬을 주고 사지절현도주제군사·현도주도독·충대순군사·고려국왕의 봉호는 그 전과 같이 하며 식읍 1천호를 더한다. 그리고 산관훈은 종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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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송(趙宋)이 다음과 같은 조서를 보내왔다. “국토가 저 견융(거란)과 접해 있어 늘 해악을 입어 왔으니 그 쌓인 분노를 풀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이로다! 군사들을 잘 타일러 좌우로 호응해 적과 맞서고 이웃나라와 힘을 합쳐 적을 소탕할 것이며, 왕성한 사기를 떨쳐 거진 멸망한 오랑캐를 일거에 쳐부수는 것이 옳으리라.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니 왕은 잘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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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시일을 끌며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자 한국화가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며 설득했다. 왕이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출동시켜 서쪽에서 만나겠다고 약속하자 한국화가 그제서야 돌아갔다. 앞서 거란이 여진을 칠 때 우리 영토를 거쳐 갔는데 이 때문에 여진은 우리가 거란을 끌어다가 분란을 일으킨 것으로 여기고 송나라에 말을 바치러 가서, 고려가 거란과 합세해 자기 백성들을 납치해 갔다고 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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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07 요사(遼史 1343) | R
모든 도(道)에 조칙을 내려 무기를 정비하여 동쪽으로 고려를 정벌하는데 대비하도록 하였다가 8월에 요나라 진펄이 비습(卑濕)한 까닭으로 출병을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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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6 고려사(高麗史 1451) | R
거란이 궐열을 보내 화친을 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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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2 요사(遼史 1343) | R
동경유수 소항덕(소손녕)으로 하여금 고려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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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거란의 소손녕이 군사를 거느리고 봉산군을 쳐서 우리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았다는 말을 듣고는, 왕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바로 돌아왔다. 서희가 군사를 이끌고 봉산군을 구원하려고 하니, 소손녕이 성명하기를, “대조(거란)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했는데, 이제 너희 나라가 강토의 경계를 침탈하니 이 때문에 정토한다." 하였다. 또 글을 보내 말하기를, “대조가 사방을 통일하는데 귀부하지 않은 자는 기필코 소탕할 것이니, 속히 와서 항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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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요사(遼史 1343) | R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진국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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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서경으로 가는 길에 안북부까지 가 머물렀는데,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봉산군을 공격해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더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서희를 보내 화의를 요청하니 소손녕이 전투를 중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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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4 왕씨고려, 송나라와 국교단절 | R
6월에 원욱(元郁)을 송에 보내어 군사를 얻어 지난해의 전쟁(거란의 침입)을 보복하기를 청했더니, 송은, 북쪽 변방이 겨우 편안해졌는데 경솔하게 움직여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송 나라와 국교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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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4 요사(遼史 1343) | R
(왕고가) 입공하였다. 3월에 왕치(성종)가 사신을 파견하여 사로잡은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니. 조칙을 내려 계속 송환하도록 하고 아울러 사신을 파견하여 위무하였다. 12월에 왕치(성종)가 기악을 바치자 조서를 내려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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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4-06 고려사(高麗史 1451) | R
작년 거란의 침략 행위를 보복하기 위해 원욱을 송(趙宋)으로 보내 원군을 요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송(趙宋)은 북방 국경이 가까스로 평안해진 마당에 경솔한 군사행동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 후 사신을 후하게 대접만 하고 돌려보냈다. 이 일 이후 송(趙宋)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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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5 요사(遼史 1343) | R
封高麗王為三韓國公,贈其父為高麗國王。고려왕을 삼한국공에 봉하고 그의 아비를 고려국왕으로 추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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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5 요사(遼史 1343) | R
치(성종)가 이주정을 보내어 공물을 보내오고 매도 함께 바쳤다. 10월에 이지백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11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치(성종)를 왕으로 책봉하였다. 동자 10명을 보내와 본국의 말을 배우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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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6 요사(遼史 1343) | R
왕치(성종)가 표를 올려 혼인을 요청하니, 부마인 동경유수 소항덕(소손녕)의 딸을 하가시켰다. 6월에 사신을 보내와 안부를 물었다. 이 뒤부터는 사신이 수시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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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7 요사(遼史 1343) | R
한언경이 와 빙폐를 바치고, 부마 소항덕(소손녕)의 아내 월국공주의 죽음을 조문하였다. 11월에 치(治 성종)가 죽자 그의 조카 송(誦 목종)이 왕동영을 보내와 통고하였다. 12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치제하고, 조서를 내려 그의 조카 송(誦)을 권지국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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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8-11 요사(遼史 1343) | R
遣使冊高麗國王誦。사신을 보내어 고려국왕 송(誦 목종)을 책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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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요사(遼史 1343) | R
송(誦 목종)이 사신을 보내와 송나라를 정벌하여 승전한 것을 축하하였다. 7월에 와 본국의 지리도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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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요사(遼史 1343) | R
조서를 내려 (왕고로 하여금) 남방 정벌에 관하여 알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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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전연의 맹(澶渊之盟) | R
송(宋)은 군비(軍備)로서 요(遼)에 매년 비단 20만 필, 은(銀) 10만 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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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전연의 맹약 | R
- 함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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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요사(遼史 1343) | R
고려에서 송나라와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와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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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요사(遼史 1343) | R
(왕고가) 용수초석을 바침과 아울러 중경성을 쌓은 것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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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요사(遼史 1343) | R
승천황태후가 죽자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상을 통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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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3 요사(遼史 1343) | R
송(誦 목종)이 위수우 등을 보내와 제사를 올렸다. 3월에 사신이 와서 장례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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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상서좌사낭중 하공진과 화주방어낭중 유종을 먼 섬으로 유배보냈다. 하공진이 과거 동여진을 치다가 패배한 일을 두고 유종이 한스럽게 생각하던 차에 마침 여진족 95명이 우리 조정에 입조하던 길에 화주관에 당도하자 유종이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유배를 당한 것이다. 여진이 거란에게 이 사정을 호소하자 거란 임금은 신하들에게, “고려의 강조(康兆)는 임금을 죽인 대역 죄인이니,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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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5 요사(遼史 1343) | R
고려의 서경유수 강조(康肇)가 그 임금 송(誦 목종)을 시해하고 제마음대로 송(誦)의 종형 순(詢 현종)을 임금으로 세웠다. 8월에 성종이 친히 고려를 정벌하면서 송나라에 통보하는 한편 인진사 한기를 파견하여 순(詢)에게 선문하였다. 순(詢)이 표를 올려 출병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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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1 고려사(高麗史 1451) | R
거란 임금이 친히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포위하였으나, 양규와 이수화 등이 굳게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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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1 요사(遼史 1343) | R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자 강조(康肇)가 동주(銅州)에서 항거하였는데 패퇴하였다. 강조가 다시 나오자 우피실 상온 야률적로가 강조 등을 사로잡고, 도망하는 군사들을 수십리 추격하여 군량ㆍ갑옷ㆍ무기 따위를 노획하니 동주(銅州)ㆍ곽주ㆍ귀주ㆍ녕주 등이 모두 항복하였다. 이에 순(詢)이 표를 올려 조회하겠다고 하니 이를 허락하고, 군사들에게 사로잡거나 노략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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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1 요사(遼史 1343) | R
군사를 철수시키니 항복하였던 모든 성들이 다시 반하였다. 군사가 귀주 남령곡에 다다르자 큰 비가 연일 내려 비가 개서야 강을 건넜는데, 말이나 낙타들이 지쳐 갑옷과 무기들을 많이 버리고 압록강에 진을 쳤다. 사로잡은 사람들을 여러 능묘에 나누어 배치하고 나머지는 친척들이나 대신들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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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2 고려사(高麗史 1451) | R
거란 임금이 이끄는 군대가 개경으로 진입해 태묘와 궁궐 및 민가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 날 왕은 광주에 머물고 있었다. ... 거란 임금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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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요사(遼史 1343) | R
순(詢 현종)이 채충순을 보내와 옛날처럼 칭신하겠다고 청하므로 순(詢)에게 조서를 내려 친조하도록 하였다. 8월에 (왕고가) 전공지를 보내와 표를 올리고 병을 칭하여 조회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조칙을 내려 다시 6주를 빼앗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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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요사(遼史 1343) | R
야율자충이 고려에 사신으로 가 땅을 요구하다가 얼마 안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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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요사(遼史 1343) | R
자충이 다시 사신으로 가 전처럼 땅을 요구하였다. 5월에 국구인 상온 소적열과 동경유수 야율단석 등에게 조칙을 내려 압록강에다 부교를 설치하고 보주ㆍ선의주ㆍ정원주 등지에다 성을 쌓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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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요사(遼史 1343) | R
북부재상 유진행은 도통으로, 추밀사 야율세량은 부도통으로, 전전도점검 소허열은 도감으로 삼았다. 그런데 진행이 변방까지 가족을 데리고 가 출군할 시기가 더뎌지자 뒤쫓아가 그를 되돌아오도록 하고, 세량과 소허열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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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요사(遼史 1343) | R
세량 등이 고려와 곽주 서쪽에서 전투하여 쳐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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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요사(遼史 1343) | R
추밀사 소합정 소합탁을 도통으로, 중국 사람인 행궁도부서 왕계충을 부도통으로, 전전도점검 소허열을 도감으로 삼고 쳐들어가 토벌하도록 하였는데, 소합탁이 흥화군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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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요사(遼史 1343) | R
조칙을 내려 동평군왕 소배압을 도통, 소허열을 부도통, 동경유수 야율팔가를 도감으로 삼아 다시 고려를 정벌하게 하였다. 12월에 소배압이 다하ㆍ타하 사이에서 싸웠는데, 요나라 군사가 불리하여 천운ㆍ우피실 2군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았으며, 전운군 상온 해리ㆍ요련 장상온 아과달ㆍ객성사 작고ㆍ발해상온 고청명 등은 싸움터에서 모두 전사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364#41907
1019 요사(遼史 1343) | R
조칙을 내려 배압이 고려를 토벌하다가 패전한 죄를 낱낱이 책망한 뒤 풀어주었다. 전공이 있는 장교에게는 관직을 높여주고 전사한 장교의 아내에게는 봉작을 더하여 주고 그 아들은 관리로 채용하였다. 남피실 군교들은 전공이 있었으므로 의복ㆍ기물ㆍ은ㆍ견 따위를 차등있게 하사하고 금백도 효리ㆍ열가의 두 해군에게 내렸다. 8월에 낭군 갈불려 등을 파견하여 제부의 병사들을 통솔하여 대군으로 편성해서 함께 고려를 토벌하도록 하니 순(詢)이 사신을 보내와 방물 바치기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364#41908
1020 요사(遼史 1343) | R
자충이 돌아와 순(詢)의 항복표를 바치니, 순(詢)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364#41909
1025 세계지도 | R
http://en.wikipedia.org/wiki/File:East-Hem_1025a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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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나라를 계승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국경으로 삼아왔습니다. 하물며 전 태후와 황제께서도 책문을 보내 은혜를 베풀면서 영토를 분봉할 때에도 또한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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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 요사(遼史 1343) | R
8월에 王徽가 薨하여 徽의 아들 三韓國公 勳을 權知國事로 삼았는데, 12월에 勳이 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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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요사(遼史 1343) | R
五年, 王顒乞封册. 六年, 封顒爲三韓國公. 1099년 왕옹(王顒 숙종)이 책봉을 요청하였다. 1100년에 옹(顒)을 책봉하여 삼한국공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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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요사(遼史 1343) | R
三韓國公 顒이 薨하자 아들 俁가 사신을 보내와 통고하였다. 1108년에 에 俁를 三韓國公으로 봉하고, 그의 아버지 顒는 國王으로 追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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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잡지 | R
이전의 고구려 남쪽 영토 내에도 3주를 설치하였다. 서쪽 제일 첫 번째가 한주(漢州), 그 다음 동쪽을 삭주(朔州), 그 다음 동쪽을 명주(溟州)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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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 요사(遼史 1343) | R
高麗와 西夏가 遼나라를 섬기면서 일찍이 國婚을 요청하여 下嫁시켰지만, 이것이 어찌 그들의 변치 않는 마음을 얻어낼 수 있겠는가? 三韓은 국경을 접하고 있기에 反覆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涼州는 멀리 있음을 믿고서 배반한 사람을 받아들이고 국경을 침입하여 틈만 있으면 함부로 출동시켰으며, 朝貢하는 사신이 막 가고나면 사건이 뒤따라 발생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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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 요사(遼史 元·脫脫等)/卷38 | R
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周武王釋箕子囚,去之朝鮮,因以封之。作八條之教,尚禮義,富農桑,外戶不閉,人不爲盜。傳四十餘世。燕屬真番、朝鮮,始置吏、築障。秦屬遼東外徼。漢初,燕人滿王故空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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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 요사(遼史 元·脫脫等)/卷49 | R
遼本朝鮮故壤 箕子八條之教 流風遺俗 蓋有存者 요나라는 원래 조선의 옛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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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교체기(1) - 송(趙宋)과 요(遼) 사이에서 | R
960년에 세워진 송(趙宋)은 분열되었던 중국을 다시 통일하고 대륙의 강국이 되었다. 왕씨고려는 이런 송(趙宋)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북방의 요(遼)가 이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왕고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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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굶겨죽인 태조의 의도 | R
- 이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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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지도 - 윤명철 | R
고려의 영역을 세 단계로 나누어 표기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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