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 삼국지(三國志 289)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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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삼국지(三國志 289) | R
(조선)후(侯) 준(準)이 참람되이 왕(王)이라 일컫다가 연(燕)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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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삼국지(三國志 289) | R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경유하여 한(韓)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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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禮)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예(禮)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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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燕)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否)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否)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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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陳, 진승)과 항(項,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燕)·제(齊)·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준(準)에게 망명하므로, 준(準)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한(漢)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燕王)을 삼으니, 조선과 연(燕)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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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관(綰)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燕)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準)에게 항복하였다.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 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藩屏이 되겠다고 준(準)을 설득하였다. 준(準)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규(圭, 구슬)를 하사하며, 백 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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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만(滿)이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準)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한(漢)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숙위(宿衛)하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準)을 공격하였다. 준(準)은 만(滿)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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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95? 위략(魏略) | R
준(準)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한씨(韓氏)라는 성을 사칭하였다. 준(準)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뒤 준(準)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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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45? 삼국지(三國志 289) | R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신지와 한인(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궁준은 전사했으나 2군은 마침내 한(韓)을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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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4 이전 삼국지(三國志 289) | R
환제(146-167)·영제(168-184) 말기에는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군(郡)·현(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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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6-220 삼국지(三國志 289) | R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장창 등을 파견하여 한(漢)의 유민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에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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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7-239 삼국지(三國志 289) | R
경초 연간에 크게 군대를 일으켜 연(淵, 공손연)을 죽이고 또 몰래 바다를 건너가서 낙랑군과 대방군을 수습하였다. 그 후로 해외가 안정되어 동이들이 굴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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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7-239 삼국지(三國志 289) | R
경초 연간에 명제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 두 군(郡, 낙랑과 대방)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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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0 | R
(245년 고려를 침공한 이후) 드디어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있었다. 비록 오랑캐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조두(俎豆, 제기의 하나)를 쓰는 예절이 남아 있으니, ‘중국이 예를 잃으면 사이(四夷)에게서 구한다’는 것을 더욱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들을 순서대로 찬술하고 그 같고 다른 점을 열거하여 전사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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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1 | R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세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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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2 | R
마한은 서쪽에 위치하였다. 그 백성은 토착생활을 하고 곡식을 심으며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꿀 줄을 알고 면포를 만들었다. 각각 장수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하였다. 산과 바다 사이에 흩어져 살았으며 성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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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3 | R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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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4 | R
...등 모두 5십여 국(國)이 있다. 큰 나라는 만여 가(家)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로서 총 10여만 호(戶)이다. 진왕은 월지국을 통치한다. 신지에게는 간혹 우대하는 호칭인 신운유지보(臣雲遣支報) 안사축지(安邪踧支) 분신이아불례(濆臣離兒不例) 구야진지렴(狗邪秦支廉)의 칭호를 더하기도 한다. 그들의 관직에는 위솔선(魏率善)·읍군(邑君)·귀의후(歸義侯)·중랑장(中郞將)·도위(都尉)·백장(伯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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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 R
한(漢) 때에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朝謁, 조정에 나가 알현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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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위략(魏略) | R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戶)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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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위략(魏略) | R
왕망의 지황 연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하였다. 살던 부락을 나오다가 밭에서 참새를 쫓는 남자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사람의 말은 한인(韓人)의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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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위략(魏略) | R
물으니 남자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漢) 사람으로 이름은 호래이다. 우리들 천 5백 명은 재목을 벌채하다가 한(韓)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모두 머리를 깎이우고 노예가 된 지 3년이나 되었다.” 고 하였다. 착(鑡)이 “나는 한(漢)의 낙랑에 항복하려고 하는데 너도 가지 않겠는가?” 하니, 호래는, “좋다.” 하였다. 그리하여 착(鑡)은 호래를 데리고 출발하여 함자현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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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위략(魏略) | R
함자현에서 군(郡, 낙랑)에 연락을 하자, 군(郡)은 착(鑡)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芩中)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함께 항복한 무리 천여명을 얻었는데, 다른 5백명은 벌써 죽은 뒤였다. 착(鑡)이 이때 진한에게 따지기를, “너희는 5백명을 돌려보내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낙랑이 만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배를 타고 와서 너희를 공격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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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5 위략(魏略) | R
진한은 “5백명은 이미 죽었으니, 우리가 마땅히 그에 대한 보상을 치르겠습니다.” 하고는, 진한 사람 만 5천명과 변한포 만 5천필을 내어놓았다. 착(鑡)은 그것을 거두어 가지고 곧바로 돌아갔다. 군(郡)에서는 착(鑡)의 공과 의를 표창하고, 관책과 전택을 주었다. 그의 자손은 여러 대를 지나 안제 연광 4년(125년)에 이르러서는 그로 인하여 부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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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6 | R
풍속은 의책(衣幘, 옷과 모자)을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下戶)들도 군(郡, 낙랑 또는 대방)에 가서 조알(朝謁, 조정에 나가 알현함)할 적에는 모두 의책를 빌려 입으며 자신의 인수(印綬, 관인을 다는 끈)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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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7 | R
그 풍속은 기강이 흐려서, 각 나라의 도읍에 비록 주수(主帥)가 있어도 읍락에 뒤섞여 살기 때문에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무릎을 꿇고 절하는 예 또한 없다. 거처는 초가에 토실을 만들어 사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무덤과 같았으며, 그 문은 윗부분에 있다. 온 집안 식구가 그 속에 함께 살며, 장유와 남녀의 분별이 없다. 그들의 장례에는 관은 있으나 곽은 사용하지 않는다. 소나 말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소나 말은 모두 장례용으로 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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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8 | R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하지만, 금·은과 금(錦)·수(繡)는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그 사람들의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다.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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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09 | R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丈]쯤 되는 나무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또 이를 강건한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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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0 | R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가락과 율동은 탁무(鐸舞, 목탁을 가지고 추는 춤)와 흡사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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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1 | R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서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이 있으니 그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그 지역으로 도망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적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 묘탑)와 같으나,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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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2 | R
그 나라 북방의 군(郡)에 가까운 여러 나라는은 그런대로 약간의 예속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흡사 죄수와 노비가 모여 사는 곳과 같다. 별다른 진보(珍寶)가 나지 않고, 동물과 초목은 대략 중국과 동일하다. 큰 밤이 생산되는데 그 크기가 배만큼 크다. 또 세미계(細尾雞)가 나는데 그 꼬리의 길이는 모두 5자(尺) 남짓 된다. 그 고장 남자들은 간혹 문신을 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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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3 | R
또 주호(州胡)가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말도 한(韓)과 같지 않다. 모두 선비족처럼 머리를 삭발하였으며, 옷은 오직 가죽으로 해 입고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옷은 상의만 입고 하의는 없기 때문에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韓)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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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4 | R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의 고역를 피하여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고 하였다. 그곳에는 성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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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5 | R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진(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연(燕)과 제(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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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6 | R
낙랑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아(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6國이던 것이 차츰 12國으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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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7 | R
변진도 12國으로 되어 있다. 또 여러 작은 별읍이 있어서 제각기 거수(渠帥)가 있다. 세력이 큰 사람은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에는 험측(險側)이 있고, 다음에는 번예(樊濊)가 있고, 다음에는 살해(殺奚)가 있고, 다음에는 읍차(邑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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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8 | R
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冉奚國·弁辰半路國·弁[辰]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馬延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이 있어서, 弁韓과 辰韓의 합계가 24國이나 된다. 大國은 4~5천家이고, 小國은 6~7백家로, 총 4~5萬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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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9 | R
그 중에서 12國은 진왕(辰王)에게 신속되어 있다. 진왕은 항상 마한사람으로 왕을 삼아 대대로 세습하였으며, 진왕이 자립하여 왕이 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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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9 위략(魏略) | R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한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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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0 | R
토지는 비옥하여 오곡과 벼를 심기에 적합하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를 알아 비단과 베를 짤 줄 알았으며, 소와 말을 탈 줄 알았다. 혼인하는 예법은 남녀의 분별이 있었다.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여 장사를 지내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이 새처럼 날아다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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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0 위략(魏略) | R
그 나라는 집을 지을 때에 나무를 가로로 쌓아서 만들기 때문에 감옥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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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1 | R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한(韓)·예(濊)·왜인(倭人)들이 모두 와서 사 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 두 군(郡, 낙랑과 대방)에도 공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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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2 | R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마시기를 좋아한다. 비파가 있는데 그 모양은 축(筑)과 같고 연주하는 음곡도 있다.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 왜(倭)와 가까운 지역이므로 남녀가 문신을 하기도 한다. 보전을 잘하며, 병장기는 마한과 같다. 그들의 풍속에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길을 양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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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3 | R
변진은 진한 사람들과 뒤섞여 살며 성곽도 있다. 의복과 주택은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지만,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방식은 달라서 문의 서쪽에 모두들 조신(竈神, 부엌신)을 모신다. 그 중에서 독로국은 왜(倭)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12國에도 왕이 있으며 그 사람들의 형체는 모두 장대하다. 의복은 청결하며 장발로 다닌다. 또 폭이 넓은 고운 베를 짜기도 한다. 법규와 관습은 특히 엄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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