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신뢰성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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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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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1월에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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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0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2월에 호공을 마한에 보내 예를 갖추니 마한 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했다.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와 같은가?” 대답했다. “... 이에 진한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그리고 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 왕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좌우가 간하여 그치고 돌아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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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온조는 한수 남쪽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 계통은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扶餘)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부여(扶餘)를 씨(氏)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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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동옥저 사신이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희 임금이 남한에 성인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신을 보내 바치게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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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10월에 왕이 군사를 내어 겉으로는 사냥한다고 하면서 몰래 마한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국읍(國邑)을 병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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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4월에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한산(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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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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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8월에 마한의 장군 맹소가 복암성을 들어 항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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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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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7월에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가라(加羅)를 침범하려고 하였으므로 가라 왕자가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 이음(利音)에게 명하여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여, 여덟 나라의 장군을 공격하여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6천 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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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3월에 가야(加耶)에서 왕자를 보내 볼모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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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 韓 | 15
01 韓在帶方之南,... | R    02 馬韓在西。... | R    03 侯准既僭號稱王,... | R    04 將其左右宮人走入海,... | R    05 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 | R    06 桓、靈之末,韓濊強盛,... | R    07 景初中,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 | R    08 其俗少綱紀, | R    09 常以五月下種訖, | R    10 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 | R    11 辰韓在馬韓之東, | R    12 弁辰亦十二國, | R    13 土地肥美, | R    14 俗喜歌舞飲酒。 | R    15 弁辰與辰韓雜居, | R    
0289 삼국지(三國志) | R
(245년 고려를 정벌하고 나서) 드디어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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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나라 이름을 다시 신라(新羅)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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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고기(古記)에는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때에 와서 박사(博士) 고흥 (高興)이 처음으로 서기 (書記)를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흥이라는 이름이 다른 서적에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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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광개토왕릉비 | R
백잔(百殘), 신라(新羅)는 옛부터 고구려 속민(屬民)으로 조공(朝貢)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辛卯年)(391년)에 건너와 백잔(百殘)을 파(破)하고 (2字缺) 신라(新羅) …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벌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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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 韓 | 6
01 韓有三種: | R    02 馬韓人知田蠶, | R    03 辰韓,耆老自言秦之亡人, | R    04 弁辰與辰韓雜居, | R    05 建武二十年, | R    06 馬韓之西, | R    
0445 후한서(後漢書 南朝宋·范曄) 東夷 | R
동이열전에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예(濊), 한(韓), 왜(倭)에 대한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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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8 송서(宋書 南朝梁 沈約 等) 夷蠻 | R
이만열전에 고구려, 백제, 왜(倭)를 동이로 분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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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혹은 사라라고도 칭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라고도 칭하였습니다. ...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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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7 남제서(南齊書 南朝梁 蕭子顯 等) 列傳 | R
열전 제39에 고려국, 가라국 그리고 왜국을 동이로 분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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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7 남제서(南齊書 南朝梁 蕭子顯 等) 列傳 | R
加羅國은 三韓의 한 種族이다. 建元 원년(A.D.479) 국왕 荷知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詔書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올라오니, 멀리 있는 夷가 두루 德에 감화됨이라. 加羅王 荷知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輔國將軍 本國王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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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7월에 이찬 이사부가 아뢰기를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을 만대에 보이는 것이니,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서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널리 선비들을 모아서 편찬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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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隋書 唐·魏徵等) 東夷 | R
동이열전에 고려, 백제, 신라, 말갈, 유구국 그리고 왜국에 대한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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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삼국사기 초기기록 허위론’ 교과서에 | R
한국 사학계 주류의 정설(定說) 중의 하나가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김부식이 허위로 창작한 것이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고구려는 제6대 태조왕(53~146)부터 재위 연대를 기록했고, 백제는 제8대 고이왕(234~286)부터, 신라는 한술 더 떠서 제17대 내물왕(356~402)부터 재위 연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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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4 식민사학 ‘만리장성’ | R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공식 간행한 <중국역사지도집>에 만리장성을 표시해 놓은 지도가 실려 있다. 거기 표시된 현재의 만리장성 동쪽 끝은 알려진 대로 요동반도 건너편 발해만 연안 산해관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하나의 굵은 점선, 곧 중국인들이 오늘날 주장하고 있는 옛 진나라 축조 만리장성 원형이라는 게 그려져 있다. 그 동쪽 끝은 요동 북부를 포함하고 압록강 하류를 지나 한반도 북부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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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백과: 원삼국시대 | R
한국고대사에서 서력기원 전후부터 AD 300년경까지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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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삼국사기 | R
삼국사기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487#32423
위키백과: 삼국지 | R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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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원삼국시대 | R
기원 전후로부터 기원후 2세기 중반까지의 초기 철기 시대 이후를 말하며,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이 멸망 또는 쇠퇴하고 부여가 건국되는 시기부터 삼국이 건립된 이후의 2세기에서 3세기에 걸친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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