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솔까역사이야기 > 나라 사이의 이야기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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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한반도 - 반도적 속성의 전형적인 사례 | R
4세기의 한반도는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였다. 이것은 '한반도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의해 크게 휘둘려 왔다.'는 반도적 속성(강중약국의 속성)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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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중국-요동-한국-왜(倭)의 외교와 전쟁 | R
장수왕 재임시의 북위는 북중국의 강국이었다. 고려는 북위와 우호적인 관계를 잘 유지함으로써 한반도 남부로는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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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말 영양왕의 객기 | R
영양왕 대에 있었던 고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국가간의 관계에 변화된 조건을 반영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가간의 관계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왕조간의 관계다. 이 두 왕조간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든지 두 나라 백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직 어느 왕조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지느냐 더 낮아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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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물귀신 연개소문 | R
백제와 고려 두 왕조는 모두 한 물귀신에 의해 패망의 늪으로 끌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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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의자왕의 실수 | R
의자왕의 실정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취리산 맹세문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된 의자왕의 죄는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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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교체기(1) - 송(趙宋)과 요(遼) 사이에서 | R
960년에 세워진 송(趙宋)은 분열되었던 중국을 다시 통일하고 대륙의 강국이 되었다. 왕씨고려는 이런 송(趙宋)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북방의 요(遼)가 이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왕고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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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교체기(2) - 요(遼)와 금(金) 사이에서 | R
흑룡강 일대에 있던 여진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요(遼)는 왕고에 파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고는 파병을 거부하고 처신을 잘 한 덕분에 금(金)의 침공을 받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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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교체기(3) - 원(元)과 명(明) 사이에서 | R
원(元)이 쇠약해지고 명(明)이 등장하자 왕고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왕씨왕조가 망하고 이씨왕조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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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교체기(4) - 명(明)과 청(淸) 사이에서 | R
원(元)이 쇠약해지고 명(明)이 등장하자 왕고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왕씨왕조가 망하고 이씨왕조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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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양원왕은 중국 사신에게 구타당했나? | R
문제는 영주에 이르러 박릉 최유를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위나라 말에 흘러 들어간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케 하면서, ... 고려에 이르러 허락을 받지 못하자, 최유는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면서 주먹으로 양원왕을 쳐 용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왕의 좌우 신하들은 숨을 죽이고 감히 꼼짝도 못한 채 사죄하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최유는 5천호를 돌려받아 복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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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냉정한 실리외교 | R
고려의 외교는 원초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냉정하고 실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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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사(南海史) | R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해에 얽힌 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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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개로왕의 실패는 토목공사 때문인가? | R
백제는 475년 고려의 침략을 받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된다. 백제가 이렇게 된 것을 두고 개로왕의 토목공사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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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처녀 진헌 | R
세종이 명(明)에 처녀를 바칠 때의 기록.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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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의 수괴(首魁)는 신라때문에 홧병이 났나? | R
신라가 임나를 병합하자 왜(倭)의 수괴(首魁)는 몹시 분노하여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어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침공하게 하였는데 도리어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9년이 지난 후 왜(倭)의 수괴(首魁)는 병이 나 죽게 되는데, 태자를 불러 신라에게 꼭 복수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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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은 왜 몽골 황제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였나? | R
한 나라의 왕이 다른 제국의 황제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얘기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고려사절요에는 왕씨고려의 충렬왕이 몽골의 황제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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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때문에 망한 마한(馬韓) | R
살기위해 도망온 사람들에게 땅을 떼어주며 살게 해 주었더니 처음에는 복종을 하고 공물을 바치더니 점점 세력이 커지자 복종을 하지않게 되고 나중에는 은혜를 베풀어준 나라까지 집어삼켜 버린다는 이야기는 인류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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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和寧) 이야기 | R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다. 이성계는 새 왕조를 세운 뒤,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두 가지 안을 올려 조선을 국호로 쓰라는 재가를 받고 국호를 정했다. 당시 몽골제국의 중심지도 화령(카라코럼)이었는데 이로 인해 약간의 혼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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