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 (8) 요동사(遼東史) > 1115 금(金) | 30
in Silla's webmarks all the webmarks


1103-07 고려사(高麗史 1451) | R
동여진 태사 영가가 사자를 입조시켜 왔다. 영가가 소해리를 격파한 후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오자 우리도 사람을 보내 축하하였다. 이에 영가가 자기 사촌 동생인 사갈을 보내 답례하니, 왕이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31
1104-01 고려사(高麗史 1451) | R
동여진의 추장 오아속이 별부의 부내로와 사이가 벌어지자 공형지조를 시켜 군대를 동원해 공격하게 했는데, 기병이 정주 관문 밖까지 와서 진을 쳤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32
1104-02 고려사(高麗史 1451) | R
추밀원사 윤관을 동북면행영병마도통으로 임명해, 중광전에서 부월을 준 후 출정시켰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33
1104-02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오직 추밀원별가 척준경이 병기ㆍ개마를 임간에게 요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그 장수 한 사람을 베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을 빼앗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5037
1107-12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그 가운데 용감하고 약삭 빠른 자 50, 60명이 의심을 품고 관문에 이르러 들어오려 하지 않으므로 병마판관 김부필, 녹사 척준경을 시켜 길을 나누어 복병하게 하고, 최홍정을 시켜 매우 날랜 기병으로 이에 호응하게 하여 거의 다 사로잡고 죽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5038
1108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연총은 화살에 맞아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구하려 하자, ... 곧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 명을 격살하니 최홍정ㆍ이관진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이때에 적이 포위를 풀고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36급을 베었고 윤관 등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와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5039
1108-03 고려사(高麗史 1451) | R
윤관이 또 의주·통태·평융의 세 성을 쌓고 남계의 백성들을 새로 수축한 9성으로 이주시켰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9
1109-02 고려사(高麗史 1451) | R
이여림을 요나라에 보내 동계에 9성을 신축한 것을 알리게 하자, 요나라에서 반서대 한 벌을 내려 주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8
1109-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여진이 길주를 포위하자 오연총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7
1109-06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선정전 남문에서 요불과 사현 등 여섯 명을 접견하고 입조한 연유를 묻자 요불 등이 다음과 같이 애걸했다. “현재 태사를 맡고 있는 오아속도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9성을 되돌려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안정된 생업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하늘에 맹세코 자손대대로 조공을 정성껏 바칠 것이며, 감히 기와 조각 하나라도 귀국의 영토에 던지지 않겠나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6
1109-06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선정전 남문에서 요불과 사현 등 여섯 명을 접견하고 입조한 연유를 묻자 요불 등이 다음과 같이 애걸했다. “현재 태사를 맡고 있는 오아속도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9성을 되돌려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안정된 생업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하늘에 맹세코 자손대대로 조공을 정성껏 바칠 것이며, 감히 기와 조각 하나라도 귀국의 영토에 던지지 않겠나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972
1109-07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선정전의 남문에서 요불 등을 접견하고 9성의 반환을 허락하자 요불이 감읍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왕이 예물을 하사하고 돌려보내면서, 내시 김향을 시켜 국경까지 호송해 주게 했다. 이어 원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9성을 반환하려는 뜻을 알렸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30
1109-07 고려사(高麗史 1451) | R
왕이 선정전의 남문에서 요불 등을 접견하고 9성의 반환을 허락하자 요불이 감읍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왕이 예물을 하사하고 돌려보내면서, 내시 김향을 시켜 국경까지 호송해 주게 했다. 이어 원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9성을 반환하려는 뜻을 알렸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971
1109-07 금사(金史 1345) | R
高麗請和,盡歸前後亡命及所侵故地,退九城之戍,遂與之和。 고려가 화친을 청하여, 전후로 망명한 자들과 침략한 옛 땅을 모두 돌려주고 9성의 병사를 퇴각시키니, 마침내 화친을 베풀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26174
1115-01 고려사(高麗史 1451) | R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면서, 이름을 민(旻)이라 고치고, 국호를 금(金)이라 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17
1115-04 고려사(高麗史 1451) | R
이수 등이 요(遼)에서 귀국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遼) 황제의 회답을 가지고 왔다. “이제 경이 사신을 보내 답장을 올렸으니, 짐의 명령을 좇는 경의 충절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봄철을 맞은 지금 군사를 동원하면 농사를 해칠 우려가 있으니 우선 훈련에 힘쓰면서 작전 시행은 따로 기다리도록 하라.”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19
1115-08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요(遼)에서 여진을 치려고 사신을 보내와서 청병하였다. 재추ㆍ시신ㆍ도병마판관과 여러 위의 대장군 이상을 불러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파병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오직 위위소경 척준경과 예부낭중 김부일, 호부원외랑 한충, 우사간 김부식ㆍ우정언 민수가 국가에서 정해ㆍ무자의 전란 이후로 군사와 백성들이 겨우 어깨를 쉬게 되었는데, 지금 타국을 위하여 군사를 출동한다면 이것은 자진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니, 장래의 이해가 어찌 될지 두렵습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5040
1115-11 고려사(高麗史 1451) | R
요(遼)에서 이주관내 관찰사 야율의와 대리소경 손양모를 보내 군대 동원을 독촉했는데 그 조서는 다음과 같다. “이제 각 부대가 모두 집결해 적지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바, 그대 나라의 부대는 진작 군세를 점검했으니 즉시 먼저 출발하여 적을 협격하는 일에 늦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에 사신을 시켜 고려군의 출정을 살펴보게 했으니 충성을 다해 짐의 명령에 따라 공적을 떨치라.”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18
1116-04 고려사(高麗史 1451) | R
중서문하성에서, “요(遼)가 여진의 침략을 당하여 매우 위급한 형편이니, 요(遼)로부터 받은 역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공사의 모든 문서에서 천경이라는 연호를 삭제하고 간지만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라고 건의하자 왕이 허락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0
1117-03 고려사(高麗史 1451) | R
금(金) 임금 아골타가 아지 등 다섯 명 편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형인 대여진 금(金) 황제는 아우인 고려 국왕에게 편지를 보내오. 왕은 우리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형제의 관계를 맺어 대대로 끝없는 우호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는 바요.”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1
1120-07 고려사(高麗史 1451) | R
요(遼)에서 악원부사 소준례 편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보냈다. “올린 표문을 살펴보고 모든 것을 잘 알았다. 이렇듯 강개한 마음을 더하였으니 반드시 적을 소탕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공동의 원수를 앞에 둔 처지에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는가 살피면서 다음 표문을 기다렸다가 다시 회답을 보낼 터이니 그대로 준수해 주기를 바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2
1126-03 고려사(高麗史 1451) | R
모든 관리들을 소집해 금(金)을 상국으로 대우하는 일의 가부를 의논하게 하자 모두 불가하다고 했으나 이자겸과 척준경만이 찬성하고 나섰다. "지금 금(金)은 급격히 세력을 떨쳐 요(遼)와 송(趙宋)을 멸망시켰으며,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군세 또한 막강해 나날이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와는 국경이 맞물려 있으니 형편상 상국으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3
1126-04 고려사(高麗史 1451) | R
정응문과 이후를 금(金)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저는 하찮은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황제폐하의 비상한 위업을 듣고, 이미 오랫동안 존경을 바쳐 왔으니, 넉넉지 못한 예물이나마 충성의 뜻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변변치 못한 공물을 바치는 것이 부끄럽긴 하오나, 크신 은덕으로 받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4
1126-05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준경이 갑옷을 입고 급히 궁궐로 들어가니, 왕은 천복전 문에 나와 준경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준경이 왕을 모시고 나오는데 자겸의 무리가 활로 준경을 쏘았다. 준경이 칼을 빼어 들고 한번 호통하니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5041
1126-07 고려사(高麗史 1451) | R
송(趙宋)에서 합문지후인 후장과 귀중부 등 60여 명을 보내왔다. "천하의 군사를 동원해 추악한 오랑캐들의 죄를 묻고자 하니 고려국왕은 군대를 지휘해 우리 군대와 협력해 적에게 천벌을 내리도록 하라." 후장이 송(趙宋)으로 돌아가는 편에 왕이 다음과 같은 표문을 전달하게 했다. "저희나라는 본래 강성한 나라가 아닐 뿐더러, ... 상국의 군사가 적을 제압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적으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25
1126-11 정강의 변 | R
1126년 금나라는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시키고 황제 흠종과 전 황제 휘종을 비롯한 왕족과 관료 수천 명을 만주로 끌고 가 모욕을 주었다. 이때가 정강 원년이었기 때문에 정강의 변이라 부른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25113
1127-05 고려사(高麗史 1451) | R
김부식 등이 송(趙宋)의 명주까지 갔으나 마침 금(金)의 군대가 변경(汴京)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바람에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계묘일에 귀국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40334
1129-03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52) | R
서경에 행차하여 새 궁궐에 들어 앉았다. 이때 어떤 사람은 표를 올려 '황제'라 일컫고, 원년의 칭호를 정하라고 왕에게 권하고, 어떤 사람은 제(齊)와 동맹하여 금(金)을 협공하여 멸하기를 청하였다. 식자는 그것을 비난하였으며 묘청의 무리는 유창한 말로 지껄여댔으나 왕이 마침내 듣지 않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9851
米中교체기(2) - 요(遼)와 금(金) 사이에서 | R
흑룡강 일대에 있던 여진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요(遼)는 왕고에 파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고는 파병을 거부하고 처신을 잘 한 덕분에 금(金)의 침공을 받지는 않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3661
金史(1345) 卷1 | R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726#38413
execute:0.821 sec, load: sec [ refresh ] [ Twttr ] [ Fcbk ] [ Gplus ] [ Email to Silla ]
Qindex.info 2004,   Introduction | 소개 | 介绍 | 導入 | qindex.inf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