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 백제 건국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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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 후한서(後漢書 445) | R
(부여가) 사자(세자) 위구태(尉仇台)를 보내어 궁궐에 나아와서 조공을 바치므로 천자가 위구태에게 인수와 금채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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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0 요동사 | R
190년 요동태수 공손탁(공손도)이 스스로 요동후 평주목을 칭하며 한(漢)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부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 들였다. 그의 아들 공손강에 이르러서는 고려를 침공하고 낙랑군에서 둔유현 이남의 황무지를 떼어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한(漢)의 유민을 모으고 한(韓)과 예(濊)를 침공하여 대방에 복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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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0-0204 삼국지(三國志 289) | R
부여는 본래 현도에 속하였다. 한나라 말년에 공손탁(공손도)이 해동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외이들을 위력으로 복속시키자 부여왕 위구태(尉仇台)는 바꾸어 요동군에 복속하였다. 이 때에 구려와 선비가 강성해지자, 탁(度)은 부여가 두 오랑캐의 틈에 끼여 있는 것을 기화로 일족의 딸을 시집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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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 R
마한에는 백제국(伯濟國) 등 모두 5십여 국(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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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2 위서(魏書 554) | R
신(臣, 개로왕)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선대에는 우의를 매우 돈독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조인 쇠(釗, 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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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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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3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성(姓)은 (고려 왕실과) 동성(同姓)이고 관위는 간솔이며 나이는 29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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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隋書) | R
백제의 선대는 고려국에서 나왔다. 그 나라 왕의 한 시비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어 ... 신령스럽게 여겨 기르도록 명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다. 장성하자 고려왕이 시기를 하므로, 동명은 두려워하여 도망가서 엄수에 이르렀는데, 부여 사람들이 그를 모두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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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隋書) | R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대방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 한(漢)의 요동태수 공손도가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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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주서(周書) | R
백제는 그 선대가 대체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인 듯하다. 구태(仇台)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에 나라를 세우니,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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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북사(北史) | R
백제국은 대체로 마한의 족속이며, 탁리국에서 나왔다. 그 왕이 출행 중에 시녀가 후(後)에서 임신하였다. ... 왕은 신령스럽게 여겨 그 아이를 기르도록 명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다. 장성하면서 활을 잘 쏘자, 왕은 그의 용맹스러움을 꺼려 또 다시 죽이려고 하였다. 동명이 이에 도망하여 남쪽의 엄대수에 다다라,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모두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동명은 그것을 딛고 물을 건너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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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북사(北史) | R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漢)의 요동태수 공손도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가(百家)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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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9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그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都慕王)이라는 사람은 하백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 황태후는 곧 그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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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0 속일본기(續日本紀 797) | R
“저희들은 본계가 백제국 귀수왕에서 나왔습니다. 귀수왕은 백제가 처음 일어난 때로부터 제16대 왕입니다. 대저 백제의 태조 도모대왕(都慕大王)은 태양신이 몸에 내려온 분으로, 부여에 머물러 나라를 열었습니다. 천제가 녹(籙)을 주어 모든 한(韓)을 통솔하고 왕을 칭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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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책부원구(冊府元龜)에 이르기를 백제는 늘 4계절의 중간 월마다 왕이 하늘 및 5제의 신을 제사지낸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를 국성(國城)에 세우고 해마다 4번 제사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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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1) 북부여의 주몽이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로 와 부여왕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는데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가서 미추홀과 위례성에 각각 나라를 세웠다. 나중에 합쳐서 백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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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살펴보건데 (백제 시조에 대해서) 해동고기(海東古記)에는 혹은 시조 동명(東明)이라 하고, 혹은 시조 우태(優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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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2)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자인 우태는 졸본 사람 소서노에게 장가들어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우태가 죽고 나서 소서노는 부여에서 도망온 주몽에게 시집을 가서 고구려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유류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남쪽의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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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3) 북사와 수서에는 모두 “동명의 후손 중에 구이(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한(漢)의 요동태수 공손도가 자기의 딸을 구이(仇台)에게 시집보냈고, 그들은 마침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어느 주장이 옳은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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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다루왕 2년 봄 정월에 시조 동명의 묘에 아뢰었다. 책계왕 2년 봄 정월·분서왕 2년 봄 정월·계왕 2년 여름 4월·아신왕 2년 봄 정월·전지왕 2년 봄 정월에 모두 위와 같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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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온조왕) 원년 여름 5월에 동명왕의 사당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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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 R
《북사》ㆍ《통전(通典)》에 모두, “백제가 그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국성(國城)에 세우고 해마다 네 차례씩 제사한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우태의 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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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 R
옛 사책 《통전(通典)》 및 《책부원구(冊府元龜)》ㆍ《북사(北史)》ㆍ《수서(隋書)》 등 사책을 가리킨다. 에 분명히 시조 우태의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네 차례씩 제사지냈다고 썼으니, 동사(東史)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사씨(史氏)가 기록에 빠뜨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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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 정리 | R
삼국사기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가 백제 건국에 대한 가장 믿음직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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