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4.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솔까말...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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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6 김한규 | R
‘고구려는 한국의 일부도 중국의 일부도 아니었다. 고구려는 요동(遼東)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건립된 국가로 역사에 출현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1460
2004-09-02 임지현 | R
"사실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2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1442
2005-03-15 이전 | R
‘고조선과 고구려, 과연 우리 한민족의 역사인가?’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1461
고려의 계급 및 이민족 착취 | R
동옥저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에 신속케 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서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하여 맥(貊)·포목·생선·소금·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41054
김조의 고국원왕릉 날조 | R
그 무덤의 벽면에는 묻힌 사람이 중국인 '동수'이며 357년에 죽었다고 씌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국원왕이 평양을 침공한 백제와 전쟁을 하다 371년에 죽었으며 고국(故國)의 들에 묻혔다고 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고 장소도 백제와 가까운 안악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41520
날조된 동명왕 | R
동명은 부여의 시조고 고려의 시조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주몽(추모)이다. 그런데 고려 왕조는 부여가 망한 이후 주몽을 동명으로 둔갑시켰다. 주몽의 묘를 평양으로 옮겨왔을 수는 있으나 동명의 묘가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28#41521
안학궁의 수수께끼 | R
안학궁은 고려때 축조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안학궁 아래에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려의 고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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