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3) 왜와 신라/임나의 초기관계 > 日本書紀 神武東征 | 38
in Silla's webmarks all the webmarks


일본서기(日本書紀) | R
신일본 천황의 이름은 언화화다. 언파렴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옥의희라고 부른다. 바다 신의 작은 딸이다. 천황은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의지가 굳었다. 15세에 태자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 일향국 오전읍의 오평진원을 비로 맞이하여 수연이명을 낳았다. -- 신일본반여언천황(神日本磐余彦天皇) 언화화출견(彦火火出見) 언파렴무로자초즙불합존(彦波瀲武鸕鷀草葺不合尊)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6
BC 666_ 일본서기(日本書紀) | R
나이 45세에 이르러 천황이 형들과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옛날 우리의 천신 고황산과 대일령존이 풍위원을 모두 우리의 천조 화경경에게 주셨으므로 화경경이 하늘의 문을 열고 구름길을 헤치고 행인을 물리치는 일을 맡은 신을 앞서 보내고 오셨다. 이때 세상은 태고 시대로 어둡고 질서도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두운 세상에서 바른 길을 가르치시고 서쪽 변방을 다스리셨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신성하셔서 오랫동안 선정을 펴셨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7
BC 666_ 일본서기(日本書紀) | R
지금 천조께서 내려오신 지 179만2,470여 년이 되었지만 먼 지방은 아직 왕택에 젖지 않아 읍에는 군이 있고 촌에는 장이 있어 각각 영역을 나누어 서로 이기려고 싸움을 한다. 그런데 염토로옹이 ‘동쪽에 아름다운 땅이 있는데 청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그 안에 또한 천반선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땅이 필히 대업을 펴서 천하를 다스리기에 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지 않겠는가.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8
BC 666_ 일본서기(日本書紀) | R
하늘에서 날아왔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요속일일 것이다. 그곳에 가서 도읍으로 정해야겠다.”고 말하니 여러 황자들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속히 행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 해의 간지는 갑인(기원전 666년)이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9
BC 666-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월 5일에 천황이 친히 여러 황자와 수군을 거느리고 동쪽을 정벌하러 나섰다. 속흡지문에 이르렀을 때 한 어부가 작은 배를 타고 다가왔다. 천황이 불러서 “너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신(臣)은 국신(國神)으로 이름을 진언(珍彦)이라고 합니다. 해안의 후미진 곳에서 낚시할 때 천신(天神)의 아드님께서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마중하러 나와 기다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1534
BC 666-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또 천황이 “네가 나를 위해 인도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인도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천황이 바로 어부에게 장대를 내밀어 끝을 잡도록 하여 천황의 배에 끌어올려서 물길 안내인으로 삼았다. 그에게 특별히 추근진언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가 곧 왜직부의 시조다. 축자국의 토협으로 갔다. 이때 토협국조의 토협진언, 토협진원이라고 하는 선조가 토협의 상류에 일주등궁을 짓고 향응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1535
BC 666-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이때 천황이 칙을 내려 토협진원을 시신 천종자명과 결혼하도록 하였다. 천종자명은 중신씨의 먼 조상이다. 11월 병술삭 갑오(9일)에 천황이 축자국의 강수문에 도착하였다. 12월 27일에 안예국으로 가서 애궁에 머물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1536
BC 665-03 일본서기(日本書紀) | R
3월 6일에 길비국으로 옮겨 행궁을 짓고 머물렀다. 이것을 고도궁이라고 하였다. 3년간 배를 준비하고 무기와 식량을 모아서 장차 단번에 천하를 평정하려고 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1537
BC 663 | 54
0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3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4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4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4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4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4 참고 | 5    05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6 참고 | 9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8 참고 | 1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일본서기(日本書紀) | R    09 참고 | 7    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0 참고 | 1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1 참고 | 1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12 참고 | 1    
BC 66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반여 땅의 옛 이름은 편거 또는 편립이라고 한다. 천황의 군대가 적을 격파하고 대군이 모여 그 땅에 가득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반여라고 고쳐 불렀다. 혹은 말하기를 “천황이 옛날에 엄옹의 양식을 드시고 군대를 내어 서정하였다. 이때 기성의 팔십효수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천황의 군사와 크게 싸워 드디어 멸망하였다. 그래서 이름지어 반여읍이라 한다.”고 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4
BC 66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천황은 전년 가을 9월에 몰래 천향산의 진흙으로 많은 평옹을 만들어 친히 재계하고 제신을 제사지내 드디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진흙을 판 곳을 식안이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5
BC 66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3월 7일에 천황이 영을 내려 “내가 동쪽을 정토한 지 이제 6년이 되었다. 천신의 위광 덕분에 흉도를 멸하였다. 그러나 변방의 땅은 아직 평정되지 않아서 요상한 무리가 아직 버티고 있지만, 중주 땅에서는 다시는 풍진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도 평온하다. 그러니 황도를 넓히고 대장 괘를 본떠 대궐을 만들자. 그런데 지금 세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민심도 소박하다. 나무 위에서 살고 굴 안에 살면서 미개한 습속은 그대로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6
BC 66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무릇 대인은 제도를 세우는 존재로 그 도리는 반드시 시세에 적합한 것이다. 만약 백성에게 이익이 된다면 성인이 행하는 일에 무슨 방해가 있겠는가? 마땅히 산림을 개척하고 궁전을 조영하여 삼가 보위에 올라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위로는 건령이 나라를 주신 덕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황손이 바른 길을 닦은 마음을 넓히고자 한다. 그 후 육합을 통일하여 도읍을 열고 팔굉을 덮어서 우리 집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7
BC 662 일본서기(日本書紀) | R
바라다보니 무방산 동남쪽의 강원 땅은 깊숙이 안주할 만한 땅이다.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자.”라고 하였다. 이 달에 곧 관리에게 명하여 도읍을 조영하기 시작하였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8
BC 661 일본서기(日本書紀) | R
8월 16일에 천황이 정비로 삼으려고 널리 귀한 집안의 자손을 찾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사대주신이 삼도구궐이신의 딸 옥즐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습니다. 원비도오십령원명이라고 하는데 용모가 매우 빼어납니다.”라고 상주하였다. 천황이 기뻐하였다. 9월 24일에 원비도오십영원명을 들여 정비로 삼았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099
BC 660 일본서기(日本書紀) | R
정월 1일에 천황이 강원궁에서 즉위하였다. 이 해를 천황 원년으로 하였다. 그리고 정비를 높여서 황후로 하였다. 황자 신팔정명, 신정명천이존을 낳았다. 그래서 옛날에 “무방의 강원에서 궁의 기둥을 반석 위에 튼튼히 세우고 고천원에 박풍을 높이 세우고 처음으로 천하를 다스리신 천황이라고 칭하였는데 그 이름을 신일본반여언화화출견천황이라고 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3100
前方後円墳 ぜんぽうこうえんふん | R
https://ja.wikipedia.org/wiki/%E5%89%8D%E6%96%B9%E5%BE%8C%E5%86%86%E5%A2%B3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50
古墳時代(こふんじだい) | R
고분시대에는 무덤의 계층화가 심했다. 또 계층에 따라 묻힌 사람의 신체적 특징도 달랐는데 대형 고분에 묻힌 사람은 키가 170cm 정도였지만 지방 호족의 경우는 키가 160cm에 불과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1051
古墳時代(こふんじだい) | R
고분시대는 일본 열도에서 고분, 특히 전방후원분이 축조되던 시기를 말한다. 3세기 중반에서 7세기 말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미생시대 말기의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복강과 내량 두 지역에서 고대 국가로 발전할 만한 세력이 있었다. 이 중 어느 하나가 대화 왕조를 수립했을 것이다. 전방후원분은 대화 왕조가 열도를 통일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들을 흡수하고 허용했던 무덤 양식으로 추정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49
石塚山古墳 いしづかやまこふん | R
복강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54
石塚山古墳 いしづかやまこふん | R
길이 120m 원부 높이 10m의 크기로 추정되며 길이 5.5m 폭과 높이 모두 1m인 수혈식 석실이 발굴되었다. 봉분에는 즙석을 깔았다. 축조연대는 3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56
神武天皇 じんむてんのう | R
http://ja.wikipedia.org/wiki/%E7%A5%9E%E6%AD%A6%E5%A4%A9%E7%9A%87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40753
神武天皇陵 | R
...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69
神武東征 | R
기록에는 구주 남부의 일향국에서 출발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복강 지역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60
筑紫の日向 高祖山 | R
https://www.google.co.kr/maps/place/Takasuzan/@33.5482534,129.7083168,192172m/data=!3m1!1e3!4m5!3m4!1s0x3541eaf885822681:0x3af47260f1fbec4c!8m2!3d33.5482489!4d130.2686249?hl=en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62
筑紫の日向 高祖山 | R
축자는 지금의 복강현이다. 거기에 일향이라고 하는 지역이 있다. 그 지역에 고조산이 있는데 高祖는 '높은 곳에 있는 인간의 거처'라는 뜻이다. 고고학에서 말하는 高知性集落와 비슷하다. 고조산 연봉에는 クシフルタケ란 산이 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63
箸墓古墳 はしはかこふん | R
전방후원분으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인 3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방은 수혈식석실로 추정된다. 지금의 크기는 전체 길이가 278m인데 원부는 직경이 150m에 높이가 30m이고 방부는 전면 폭이 130m에 높이가 16m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51
箸墓古墳 はしはかこふん | R
내량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53
西都原古墳群 | R
3세기 전반이나 중반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고분 320여기가 있다. 高塚墳311基(前方後円墳31基、方墳1基、円墳279基)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2
西都原古墳群 | R
3세기 전반이나 중반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고분 320여기가 있다. 高塚墳311基(前方後円墳31基、方墳1基、円墳279基)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83
반여(磐余) | R
磐余와 伊波禮는 내량 분지의 동남부에 위치한 옛 대화국 십시국(현재 橿原市와 櫻井市)이다. 반여는 대화 정권에게 유서깊은 지역으로 많은 천황과 황후의 왕궁이 있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91
신무천황(神武天皇 じんむてんのう) | R
동정과 팔지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61
신일본반여언천황(神日本磐余彦天皇) | R
かんやまといわれひこのすめらみこと. 고사기에서는 신위이파례비고명(神倭伊波禮毗古命)으로 적고 있다. 神日本과 神倭은 미칭이고 磐余와 伊波禮는 내량 분지의 동남부에 위치한 옛 대화국 십시국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90
언화화출견(彦火火出見 ひこほほでみ) | R
언화화출견은 목화지개야희가 천손 경경저존과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 후 정절을 증명하기 위해 불 속에서 출산한 세 아들 중 막내다. 활로 사냥을 잘 하였으므로 山幸彦이라고 불렸다. 활을 형 海幸彦에게 주고 형의 낚시 바늘을 빌려 낚시하던 중 도미가 낚시 바늘을 삼키고 달아났다. 형에게 추궁당하자 염토로옹의 안내를 받아 바다 신의 궁으로 갔다. 그곳에서 바다 신의 딸 풍옥희와 결혼하였다. 3년 후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알고 돌아와 형의 항복을 받아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92
옥의희(玉依姬 タマヨリヒメ) | R
옥의회는 바다 신의 딸로 풍옥희의 여동생이다. 풍옥희가 출산할 때 함께 해변으로 나왔다. 풍옥희는 자신이 출산하는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남편에게 말하였다. 풍옥희는 출산할 때 용으로 변하였는데 남편이 이를 훔쳐 보았으므로 풍옥희는 남편을 비난하고 태어난 아들을 해변에 남겨놓고 바닷속의 궁으로 돌아갔다. 풍옥희는 여동생 옥의희를 보내 아들을 양육하게 하였는데 옥의희는 자신이 기른 언파렴과 결혼하여 네 명의 아들을 낳았다. 언화화는 넷째 아들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93
일본 천황은 가라인의 후예인가? | R
http://kallery.net/index.php?g_clss=forum&g_prcss=thrd&g_brd=20&g_thrd=2438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2964
참고 | 9
奈良盆地 ならぼんち | R    福岡県 ふくおかけん | R    竪穴式石室 | R    葺石 ふきいし | R    近畿地方 きんきちほう | R    高地性集落 | R    高地性集落 | R    가야고분 | R    일본서기 권3 신무천황 | R    
execute:1.279 sec, load: sec http://qindex.info/drctry.php?ctgry=2832 [ refresh ] [ Email to Silla ]
Qindex.info 2004,   Introduction | 소개 | 介绍 | 導入 | qindex.inf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