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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2 | 1
전두환 회고록 2 P307 | R    
전두환 회고록 P027 광주학살설 | R
"더욱이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 -- 최초의 집단발포는 폭도가 몰고온 버스에 경찰 4명이 깔려 죽은 다음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버스 운전자를 계엄군이 사살한 데서 비롯되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948
전두환 회고록 P027 전두환개입설 | R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8특별법과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도 광주사태 때 계엄군의 투입과 현지에서의 작전지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더욱이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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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031 정치자금 | R
"대통령 재임 중 나의 책임 하에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모아 사용했고, 더욱이 퇴임하면서 상당액의 자금을 남겨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 만큼 그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5.18특별법 재판과 병합된 재판에서 뇌물의 개념을 확대해석함으로써 내가 받은 자금은 모두가 뇌물이라는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나에게 원죄가 있는 만큼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 그 정치자금의 일부는 김대중에게로 흘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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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035 주한미군 철수 | R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한 배경에 대해 전두환의 인식은 일반적인 통설과 같다. 그러나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의 생태적 속성을 생각할 때 인권문제는 구실이고 속셈은 중국과의 거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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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140 미국정보기관 개입설 | R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미국의 개입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또한 거짓말일 수 있다. 분단국이자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지니까 밝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약점 잡힌 사람 마냥 전두환에게 끌려 다녔고 내부적으로는 전두환을 제거할 공작을 검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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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142 김재규와 미국 | R
"공식 외교라인에 있지도 않은 김재규가 (1979년 6월 30일에 있었던) 정상회의 전후로 한 달 동안 글라이스틴 대사를 최소한 세 차례나 만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버트 브루스터 미국 CIA 서울지부장도 김재규를 자주 만났다. 그러한 접촉을 통해 김재규로 하여금 미국 카터 행정부가 박정희 대통령을 버렸다는 확신을 갖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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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292 김대중의 선동 | R
"민주주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은 결코 슬로건이 아니라 진실이다." "혁명은 혁명을 낳고 우리 모두가 혁명가다." "김상진, 김주열 못지 않게 김재규도 충신이다." "10.26사태는 독재에 항거한 전 국민의 혁명이다." "탄압을 받더라고 끈질기게 저항하면 10.26과 같은 또 다른 사태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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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29 소련의 내심 | R
미국의 저명한 군사외교 칼럼니스트인 잭 앤더슨은 1980년 3월 20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칼럼에서 "최신 정보를 다루는 전략 전문가들의 정보보고에 의하면 소련은 세계 전략의 하나로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을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는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 와해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 광주사태가 나던 해에 김일성이 전쟁을 하겠다고 했으면 소련은 기꺼이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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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31 서울의 봄 | R
"20대 청년이 탈취한 버스를 몰고 진압경찰 대열로 미친 듯 돌진한 것이다. 그 버스에 치여 전경대원 다섯 명이 경찰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는데 그 중 한 명은 이튿날 새벽 끝내 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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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48-349 비상계엄 전국확대 | R
전군 주요지휘관회의가 끝난 뒤 주영복 장관은 곧 회의 결과를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보고했고, 오후 5시경 신 총리는 주영복 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대동하고 대통령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정식으로 전국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다. 훗날 최광수 비서실장이 검찰 답변에서 그 자리에 나도 참석했다고 진술한 것은 그날 내가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6시 30분 각각 대통령을 독대했던 사실을 혼동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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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48-349 비상계엄 전국확대 | R
한 시간 정도의 논의가 끝난 후 최 대통령께서는 신 총리에게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날 밤 중앙청에서는 신현확 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가 열려 10.26 다음 날 선포된,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 비상계엄을 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 비상계엄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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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79 직승기사격설 | R
"헬기를 이용한 기총소사까지 감행했다는 등 차마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전해지고 있다." -- 전두환 회고록의 광주사태 부분은 1995년에 있었던 검찰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거기에는 직승기 사격에 의한 피해를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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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82 광주학살설 | R
"우리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결코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일은 없다." -- 최초의 집단발포는 폭도가 몰고온 버스에 경찰 4명이 깔려 죽은 다음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버스 운전자를 계엄군이 사살한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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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83 광주학살설 | R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계엄군은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 결코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 최초의 집단발포는 폭도가 몰고온 버스에 경찰 4명이 깔려 죽은 다음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버스 운전자를 계엄군이 사살한 데서 비롯되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920
전두환 회고록 P384 전두환개입설 | R
"이 책에서 12.12와 5.17과 관련해서는 내가 했던 일과 알고 있는 사실들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5.18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내가 직접 겪은 사실들에 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 까닭은 다시 말하지만 5.18사태에 관해 내가 한 일, 직접 겪은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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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84 전두환개입설 | R
"5.18사태의 발단에서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움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광주사태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전두환이 개입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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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97 지역감정 | R
"택시들을 보낸 뒤 다시 인도에 최초 대형으로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경남 넘버를 단 12톤 정도의 트럭이 돌을 가득 실은 채 지나가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빵빵' 경적을 울렸는데 그 소리를 들은 시민들이 갑자기 격분하여 트럭 운전수를 끌어내어 발로 밟아..." _이OO 3여단 13대대 9지역대장: 1995.6.28. 진술조서, 5.18사건 검찰 수사기록 31,98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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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98 계엄군의 출신지 | R
"광주지역의 향토사단인 31사단에는 호남지역 출신들이 많았다. 또한 광주에 맨 처음 투입된 7공수여단도 전북 금마에 주동하고 있어서 부대원 중 40퍼센트가 호남 출신이었다. 순차적으로 광주에 증파된 공수부대들을 작전통제한 소준열 전교사령관과 정웅 31사단장도 호남이 고향이다. 소준열 장군은 전남 구례, 정웅 장군은 전남 순천 출신이다. 계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서 광주 작전을 총괄한 김재명 장군도 바로 광주와 이웃한 전남 강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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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99-400 총기탈취 | R
"5월 19일 오후 3시 30분경 시위대에 의해 MBC를 경비하던 31사단 병력이 M16소총 1정과 실탄 15발을 탈취당했다. 바로 다음날인 20일 밤 11시에는 2,000여 명의 시위대가 광주세무서 별관 무기고를 습격해 카빈 17정을 탈취했다. 광주에서 무기가 대량으로 탈취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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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18 자위권 발동 | R
진종채 2군사령관은 5월 21일 오전 김준봉 작전참모를 대동하고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를 찾아갔다. 전남북계엄분소장인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시민과 학생이 탈취한 무기로 무장을 하고 계엄군에게 총을 난사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발표하면 진정이 될 것"이라면서 계엄사령관에게 자위권 발돌을 건의해줄 것을 진종채 2군사령관에게 요구했다고 진종채 사령관이 1심 21차 공판에서 증언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301
전두환 회고록 P419 자위권 발동 | R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저녁 7시 30분경 "지난 18일에 발생한 광주지역 난동은 치안 유지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으며 계엄군은 폭력으로 치안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득이 자위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을 경고한다."는 내용의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를 발표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이어 19시 45분경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해 담화문 발표와 관련된 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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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21 자위권 천명 | R
"국민들에 대한 경고적 의미 이외에 5월 20~21일 사이에 광주에서 발생한 총기, 탄약, 장비 등의 피탈과 관련하여 당시 자위권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면 그와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계엄군들이 자위권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서, 또는 자위권 자체를 몰라서 자위권을 발동하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정당한 자위권 발동을 촉구하는 의미로 했던 것입니다." - 이희성 _1995.2.3. 피의자 신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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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24 공수부대의 철수 | R
광주폭격계획이 사실이라면 5월 21일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계엄군이 시위대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폭격을 하면 계엄군도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도심에서 폭도만 골라서 폭격하는 일이 가능한가? F-5에 장착된 500파운드 폭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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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40 전두환개입설 | R
"나는 보안사령관으로서 재임 시 그 어떤 작전지휘모임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참석한 일도 없다." -- 광주사태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전두환이 개입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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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69-473 집단발포 | R
견디다 못한 63대대장은 지프차에 보관하고 있던 경계용 실탄을 개봉해 중대장 1인당 10발씩 나눠주면서 위급할 때 명령에 의해서만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관계법령들이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광주에 출동한 계엄군은 계엄사령관이나 상급 작전지휘권자의 자위권 발동 지시가 없더라고 당연히 '정당방위권'과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검찰은 1995년 수사 결과 발표에서 5월 19일 최초의 발포와 20일과 21일에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분명하게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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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70 집단발포 | R
계엄군의 발포 이전에 시위대의 발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날 세무서 무기고에서 카빈 17정이 폭도들에 의해 탈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엄군의 발포에 있어서 시위대 쪽의 발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계엄군이 장갑차에 치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상황에서 버스까지 돌진해 왔기 때문이다. 전날에도 버스가 돌진해 와 경찰 4명이 죽은 바 있다. 계엄군의 발포는 시위대 쪽의 선제 발포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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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70 집단발포 | R
"오후 1시경 시위대는 장형태 지사가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음에도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은데 항의하면서 공수부대 장갑차에 화염병을 던졌다.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 측 장갑차 한 대가 공수부대원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대원들은 돌진하는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지부 건물 등으로 흩어졌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대원 2명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1명은 즉사했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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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73 집단발포 | R
"상급 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발포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거나 광주 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전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하여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며 ... 특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하여 자위 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242
전두환 회고록 P480 직승기사격설 | R
"피터슨 목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당시 기총 소사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는 사진까지 제출했다. ... 그가 제시한 사진도 가짜였다. 목사라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가짜 사진까지 가져와서 허위 진술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피터슨 목사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그러한 거짓말을 한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256
전두환 회고록 P480 직승기사격설 | R
"이러한 주장(피터슨 목사와 조비오 신부의 직승기사격 목격 주장)은 헬리콥터의 기체 성능이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이거나 아니면 계엄군의 진압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다." -- 전두환 회고록의 광주사태 부분은 1995년에 있었던 검찰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거기에는 직승기 사격에 의한 피해를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918
전두환 회고록 P484 조비오 신부 | R
"그러나 조비오 신부는 그 후에도 자신의 허위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미국인 목사라는 피터슨이나 조비오 신부나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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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530 인민군개입설 | R
"연고대생으로 소개됐다는 5~600명의 정체, 조직적으로 움직인 수백 명 규모의 집단이 실재했느냐의 여부, 복면한 사람들의 정체 그리고 5.18사태에 북한은 어느 정도 개입했었는가 하는 문제들에 관해 내가 이 글에서 확신을 갖고 새삼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341
전두환 회고록 P531 인민군개입설 | R
"5·18사태 때에는 북한의 특수요원들 다수가 무장하고 있는 시위대 속에서 시민으로 위장해 있을 터였다." -- 광주의 상황이 생생하게 김조의 통혁당 방송을 통해 나오는 것을 보면 시위대 속에 분명 간첩이 있었을 터인데 왜 잡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설명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233
전두환 회고록 P535 인민군개입설 | R
"1950년 북한의 남침 때 수백만 명의 인명피해를 무릅쓰며 싸웠던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었듯이 5.18사태 당시 정부와 계엄군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던 무장혁명 세력과 맞섰던 일도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조치였음이 오래지 않아 명백히 밝혀질 거라 믿는다." -- 인민군개입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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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538 광주사태 폭동론 | R
광주사태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이 사건을 언급하는 외국 정부나 연구소, 언론은 'riot' 'uprising' 또는 'incident'라는 단어를 썼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영어 논문에서 광주사태를 가리키는 말로 'revolt(반란)'라는 단어를 썼다. 5.18단체의 영문 공식문서에도 'rebellion(반란)'이란 단어와 함께 이 단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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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541 지만원의 주장 | R
"지만원박사는 5.18때 북한의 특수공작원으로 침투했다가 돌아가 그 뒤 북한의 정부와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수백 명의 인물을 사진분석을 통해 실명으로 밝히고 있고 그 내용이 특정 보도매체와 출판물, 인터넷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지만 주요 언론매체들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 지만원의 인민군개입설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 주장에 대한 어떤 평가도 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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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541 지만원의 주장 | R
"독자나 시청자들의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언론매체들, 여론의 향배를 좇을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학계에서조차 ‘민주화운동’이라는 정통적 역사 인식에 대한 어떠한 ‘수정주의적’접근도 금기되어 있는 것 같다. 광주가 계속 신화의 영역에 있기를 원하며 불편할 수도 있을 진실이 더 이상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 세력이 엄존한다는 것은 뚜렷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 현대사학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http://qindex.info/drctry.php?ctgry=3211#3235
전두환 회고록 P602 대통령이 되다 | R
대다수 국민들은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는구나."하는 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0.26이후 사람들은 집권 욕심에 혈안이 된 정치 지도자들의 폭주, 심각한 경제난, 학생들의 폭력시위, 노동계의 과격 투쟁, 북한의 도발 위협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정부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황에 떠밀려 올라온 나를 보며 박수로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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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관련 논쟁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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