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삼한(三韓)시대 연대기 > 태초부터 007년 사이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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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한민족은 북방계가 아니다 | R
우리는 흔히 한반도의 선사시대 사람들을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북방과 연관을 지으려 하고 남방과의 연관은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인돌, 난생신화, 벼농사와 같은 남방계 문화에 이어 최근의 인류유전학에 의한 연구결과는 한반도의 선사시대가 남방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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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요동사의 여명 | R
요하 동쪽의 역사는 분명 한국사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사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점이 매우 많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지역의 역사를 요동사라 하여 한국사도 아니고 중국사도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로 설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매우 명쾌하게 정리되는 이점이 있다. 이 요동사의 출발점은 조선(朝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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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사기(史記) 화식열전 | R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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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사기(史記) 흉노열전 | R
其後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그후 연나라에는 진개라는 현명한 장수가 있어 동호의 인질이 되었는데 동호가 그를 매우 신뢰하였다. 돌아와 동호를 침공하여 내쫓고 천여 리의 땅을 빼앗았다. 이어 연나라는 장성을 쌓았는데 조양에서 시작해서 양평에까지 이르렀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동호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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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염철론(鹽鐵論 BC 81) | R
燕襲走東胡,辟地千裏,度遼東而攻朝鮮。 연(燕)이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했다. 또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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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2 이전 연(燕)의 조선병합 | 4
BC 0222 이전 위략(魏略) | R    BC 0222 이전 사기(史記) 조선열전 | R    BC 0222 이전 위략(魏略) | R    연나라가 조선을 병합했다고 보는 근거 | R    
BC 0222 사기(史記) | R
秦滅燕屬遼東外徼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는 요동 변방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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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진(秦), 중국통일 | R
연(燕)을 서기전 222년에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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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 BC 202 위략(魏略) | R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否)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否)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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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 BC 202 사기(史記) 진시황본기 | R
地東至海暨朝鮮,西至臨洮、羌中,南至北向戶,北據河為塞,并陰山至遼東。 땅이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러 조선에 닿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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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21 - BC 202 중국으로부터의 유민 | 3
BC 0221 - BC 202 위략(魏略) | R    BC 0209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202 이전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202 한(漢), 중국통일 | R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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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후 사기(史記) 평준서 | R
彭吳賈滅朝鮮,置滄海之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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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후 사기(史記) 천관서 | R
越之亡,熒惑守鬬;朝鮮之拔,星茀于河戍;兵征大宛,星茀招搖:此其犖犖大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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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후 사기(史記) 조선열전 | R
漢興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屬燕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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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202 이후 사기(史記) 율서 | R
南越、朝鮮自全秦時內屬為臣子,後且擁兵阻阸,選蠕觀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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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이후 위만조선 건국 | 6
BC 0195 이후 사기(史記 BC 91) | R    BC 0195 이후 위략(魏略) | R    BC 0195 이후 위략(魏略) | R    BC 0195 이후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195 이후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195 이후 후한서(後漢書 445) | R    
BC 0195 - 109 사기(史記) | R
燕丹散亂遼閒 滿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燕)과 단(丹)의 무리가 요(遼)를 어지럽힐 때, 만(滿)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진번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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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 109 삼국지(289) | R
망명객 위만이 조선의 왕이 되면서 옥저는 모두 복속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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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5 - 109 위략(魏略 220-265) | R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조선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한(韓)씨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뒤 준의 후손은 끊어졌으나, 지금 한인(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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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91 사기(史記) | R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BC195- BC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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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28 후한서(後漢書 445) | R
예군(濊君)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蒼海郡)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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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9 이전 위략(魏略 220-265) | R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相) 역계경이 우거에게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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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9 - 0108 한(漢)의 조선 침공 | 9
BC 0111 사기(史記 BC 91) | R    BC 0108 사기(史記 BC 91) | R    BC 0108 한서(漢書 82) | R    BC 0108 한서(漢書 82) | R    BC 0108 후한서(後漢書 445) | R    BC 0107 후한서(後漢書 445) | R    太平御覽 | R    왕험성 위치에 관한 괴이한 주장 | R    한(漢)의 조선침공 | R    
BC 0109 한서(漢書 82) | R
朝鮮王攻殺遼東都尉,乃募天下死罪擊朝鮮。 조선왕이 요동의 도위를 공격하여 죽였으므로 천하의 사형수들을 모집하여 조선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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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9 상황도 | R
동방변군과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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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7 한(漢), 현도군 설치 | 3
BC 0107 한서(漢書 82) | R    BC 0107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107 후한서(後漢書 445) | R    
BC 0082 후한서(後漢書 445) | R
始元五年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에 합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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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75 현도군 이전, 동부도위 설치 | 6
BC 0075 한서(漢書 82) | R    BC 0075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075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075 후한서(後漢書 445) | R    BC 0075 후한서(後漢書 445) | R    예(濊)와 임둔 | R    
BC 0057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신라)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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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50 삼국사기 혁거세 08 | R
(신라) 왜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변경을 침범하려다가 시조가 거룩한 덕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되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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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 R
朝鮮(조선) 䛁邯(남감) 增地(증지) 黏蟬(점제) 駟望(사망) 屯有(둔유) 帶方(대방) 列口(열구) 長岑(장잠) 海冥(해명) 昭明(소명) 提奚(제해) 含資(함자) 遂成(수성) 鏤方(누방) 渾彌(혼미) 浿水(패수) 吞列(탄열, 원문에는 吞에 초두가 붙어 있다.) 東暆(동이) 蠶台(잠태) 不而(불내) 華麗(화려) 邪頭昧(사두매) 前莫(전막) 夫租(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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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3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1월에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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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33-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왜) 가을 7월 임나국이 소나갈질지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 여기서 말하는 임나는 거제도의 지리 조건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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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28-0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임나인 소나갈질지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고자 청하였다. 선황의 시대에 조공하러 왔다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나갈질지에게 많은 상을 주고 붉은 비단 1백 필을 가지고 가 임나왕에게 주게 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길을 막고 그것을 빼앗았다. 그 두 나라의 원한은 이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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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28 삼국사기 혁거세 거서간 30년 | R
(신라) 4월 그믐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낙랑인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려다가 밤에도 집의 문을 잠그지 않고, 노적가리를 들에 그대로 쌓아둔 것을 보고는 서로 말하였다. "이 지방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지 않으니 도가 있는 나라라 할 만하다. 우리들이 몰래 군사를 거느리고 습격한다면 도둑과 다름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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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27 천일창(天日槍) | 2
BC 0027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 R    고사기(古史記 712) | R    
BC 0020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2월에 호공을 마한에 보내 예를 갖추니 마한 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했다.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와 같은가?” 대답했다. “... 이에 진한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그리고 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 왕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좌우가 간하여 그치고 돌아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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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19 삼국사기 혁거세 거서간 39년 | R
(신라) 마한왕이 죽었다. 어떤 사람이 임금을 달래어 말하였다. "서한의 왕이 지난번에 우리의 사신을 욕보였는데 지금 상을 당하였으니 그 나라를 치면 쉽게 평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재난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하고는 따르지 않고,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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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18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온조는 한수 남쪽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 계통은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扶餘)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부여(扶餘)를 씨(氏)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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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05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동옥저 사신이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희 임금이 남한에 성인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신을 보내 바치게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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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남해 차차웅(1년) | R
7월에 낙랑의 군사가 와서 금성을 몇 겹으로 둘러쌌다.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적이 우리가 국상을 당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겨서 망령되게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이 잠시 후에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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