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三國志(289) -0075

後爲夷貊所侵 徙郡句麗西北 今所謂玄菟故府是也 沃沮還屬樂浪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 한서(82)의 낙랑군에는 沃沮가 나오지 않고 夫租로 나온다.
 
 압록강 유역
압록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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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 -0125 蒼海郡
濊君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蒼海郡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예군이 중국과 내통한 경로는 황초령을 넘어 압록강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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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後爲夷貊所侵 徙郡句麗西北 今所謂玄菟故府是也 沃沮還屬樂浪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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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0075 三國志(289)
▐ 현도군이 옥저에서 후퇴할 때 창려군 설치 때 이용되었을 길이나 동천왕이 도주할 때 이용했을 길을 따라 이루어졌을 듯하다. 각각 상은태와 서개마를 지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서개마 그리고 상은태의 중앙에 있는 집안에는 설치할 여건이 되지 않아, 또는 잠시 설치했다가, 요동군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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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三國史記(1145)
王遷都於國内 築尉那巖城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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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003 집안
▐ 고대의 교통과 물류는 물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압록강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영흥만으로 넘어가는 길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인접한 집안은 압록강 유역의 중심이 될 만하다. 그런 곳이 -107년에 현도군을 설치한 이후 3년에 고구려가 도읍을 옮길 때까지 100여년 동안 역사의 공지로 남아 있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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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집안
▐ -107년에 고구려현을 집안에 설치하고 -75년에 옥저를 낙랑에 합칠 때 현도군의 치소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곳에서의 유지가 어려워지자 현도군과 고구려현의 치소를 모두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겼고, 그러자 3년에 고구려가 이곳에 들어와 도읍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이는 -82년에 진번군이 폐지된 후 -6년에 진번군의 치소였던 삽현(한성)에 백제가 들어가 도읍으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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