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3대 말 바꾸기...당헌개정, 검찰개혁, 비례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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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10. 오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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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이슈&북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치러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해 당헌을 개정한 후폭풍이 거세다.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번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첫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국회사무총장 민주당 당헌개정 결정에 대해 “너무 명분이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런 명분 없는 처사를 앞장서서 주도한 사람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를 향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릴 때마다 원칙을 뒤집는 행태를 연이어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의에서 이낙연 대표가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2020.11.3 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표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며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당 대표 시절, 이 조항을 만든 이후 민주당은 이 규정을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적용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이 당헌을 앞세워 당시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 유세에서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민주당 잘못으로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하게 되자 당헌을 헌신짝처럼 폐기해 버렸다. 결국 이 당헌은 야당 공격용 무기였던 셈이다.

여론의 따가운 비판이 계속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당헌 개정을 옹호하고 나섰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수감되면서 대통령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했는데 그때는 후보를 왜 내느냐는 시비가 심각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 관계를 호도하는 발언이다. 국민은 민주당에 후보 내지 말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민주당 스스로 우리는 잘못 저지르면 후보 내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했던 약속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민주당의 대국민 약속 위반이다.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도 비례위성정당 창당 시비가 붙자 이 대표는 모 방송에 출연해 비례정당을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비례의석만을 위한 위성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든 간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편법이다.” 그래놓고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면서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이란 말로 입장 번복을 합리화했다.

이 대표는 검찰 독립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 부하가 아니라는 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누구의 통제도 안 받겠다는 선언이다. 검찰의 민주적 통제가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집권하던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이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는 다른 말을 했다. 당시 군소야당의 원내대표였던 이 대표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정치인 법무장관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경시한 채, 정치적 판단으로 수사지휘한 것은 잘못이다. 법무장관의 잘못된 수사지휘로 검찰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당한 채 반발하며 동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수사지휘는 검찰 독립성 훼손이고 더불어민주당의 수사지휘는 민주적 통제인가. 수사권 독립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표의 말 바꾸기는 그 근간 중 하나를 허물자는 주장이거나 적어도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법을 잘 정비해도 민주주의는 훼손될 위험이 큰 불완전한 제도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기와 대니얼 지블랫 두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는 규범에 의해 지켜진다’고 썼다.

‘민주주의는 성문화된 규칙(헌법)과 심판(사법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인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일상적인 정쟁이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준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132쪽)

두 저자는 민주국가의 지도자에게는 ‘제도적 자제’도 요구된다고 썼다.

‘제도적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같은 책 133쪽)

이낙연 대표는 신중하다고 세간의 평가를 받는다. 정치인의 신중함이란, 이 책에서 말하듯 제도의 원래 취지를 잘 살피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규범을 따르는 자세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이 대표의 행보에서 이런 신중함을 읽을 수 있는가. 규범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가.

민주당이 5년 전 약속을 지키는 결단을 내렸다면 우리 정치는 추문을 딛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차기 후보로 거론되는 이 대표는 당헌을 바꿔버렸고, 당헌을 만들었던 대통령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이런 무원칙하고 몰염치한 행태가 반복되는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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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출판전문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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