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유민을 복속시켰다.
王之都王險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
「三國史記」
平壤者 夲仙人王儉之宅也
평양은 본래 신선 왕검이 있던 곳이다.
或云 王之都王險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고도 한다.
「史記」
聚黨千餘人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三國遺事」
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무리 삼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라 하였다.
號曰壇君王倹 即位 都平壤城 始稱朝鮮
단군왕검이라 칭하며 즉위하여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아들 왕검이 평양에서 조선을 세웠다는 설화는,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도망온 위만이 훗날 평양으로 불리게 되는 왕험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역사와 매우 유사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이 나라를 세웠다는 점이 같고 평양과 조선이라는 명칭이 일치하며 왕검이라는 인명도 왕험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듯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왕검에 대해 설명하며 王之都王險 즉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기에서 위만이 王之都王險하였다는 부분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같습니다.
건국 과정도 비슷합니다. 위만은 무리 천여명을 모아 패수를 건너 일단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고, 환웅은 무리 삼천명을 거느리고 인간세상에 내려와 일단 태백산 꼭대기에 신시를 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