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언론의 균형감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목숨을 끊는 역사적 비극에서 언론도 책임의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책임론은 일부 보수신문과 방송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책임을 통감하는 등 언론 전반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6월2일까지 경향과 한겨레에 실린 칼럼과 사설을 중심으로 '박연차 리스트' 보도의 문제점과 교훈을 살펴본다.

▷'∼라면' 보도, 여론재판 논란=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돈을 받은 목적과 위법성, 정확한 금액, 노 전 대통령 인지 시점, 돈의 최종 목적지 등은 검찰과 봉하마을 쪽 견해가 엇갈렸다. 경향과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라면'을 전제로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는 3월28일자 <노 전 대통령 주변의 추한 모습>이라는 사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의 부패상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면서 "사실이라면 법과 수사의 허점을 악용한 신종 부패수법"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4월15일자 <밝혀야 할 수백만달러의 대가>라는 사설에서도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여러 분야에 걸쳐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면서 "그런 일에 노 전 대통령의 관여가 있었다면 대가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4월8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국민은 참담하다>라는 사설에서 "혹여 이번 고백이 측근 세력을 비호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면 노 전 대통령은 두번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너진 인격, 파렴치한 인물 묘사= 유인화 문화1부장은 경향신문 5월4일자 26면 <아내 핑계 대는 남편들>이라는 칼럼에서 연극공연용 대사를 통해 현 상황을 풍자했다. 여자가 "이번에도 내가 총대 멜게요"라고 말하자, 남자는 "걱정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 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라고 얘기했다.

유 부장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연극공연용으로 적어본 대사"라면서도 "전직 대통령뿐이 아니다. 가정이, 일터가, 사회가 어머니들을, 아내들을 핑계대며 공공연한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4월8일자 <노 전 대통령, 국민 가슴에 대못 박았다>라는 사설에서 "그는 한 오라기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4월9일자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라는 사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는 4월16일자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칼럼에서 "노무현 패밀리가 한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범죄와 도덕적 결함의 차이, 남편과 아내의 차이, 알았다와 몰랐다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필사적"이라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4월16일자 26면.  
 
이대근 에디터는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태규 한겨레 논설위원은 4월24일자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라는 칼럼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비판은 노 전 대통령의 이번 잘못을 무한 확장해, 그와 관련한 모든 일을 통째로 들어내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이번 일을 빌미로 '노무현 시대 5년'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달라진 평가= 경향신문은 5월30일자 <다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사설에서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과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고, 서민의 대변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진 추모 행렬은 인권과 민주주의, 권위주의 타파,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을 위해 헌신해온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5월24일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함>이라는 사설에서 "솔직담백하고 소탈한 언행,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탈권위적 모습 등은 영원히 신선한 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5월25일자 <처음부터 정치보복 냄새 진동했던 노무현 사건>이라는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은 사실상 폐족되는 멸문지화를 당했고,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정을 맞았다"면서 "'노무현 제압하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권력기관이 일제히 나서 십자포화를 날리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경향, 내부 자성론=이봉수 한겨레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4월30일자 21면 칼럼에서 "균형감이란 무엇일까? 우선 진실을 파헤치면서도 근거 없이 의혹을 부풀리거나 싸잡아 매도하지 않는 보도 태도일 것"이라며 "배신감은 애증의 기복을 겪으면서 증폭된다. 애증의 연장 선상에서 신문을 만들 일은 아니다. 보수신문도 <한겨레>도"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5월28일자 사설에서 "<한겨레>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론을 무겁게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로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도 5월29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며>라는 사설에서 "고인은 검찰의 언론플레이만으로 '640만달러짜리 서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경향신문도 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흔들린 균형감각, 남은 교훈=이봉수 시민편집인은 한겨레 5월28일자 21면 칼럼에서 "<한겨레>는 보수신문에 견주면 '노무현 수사보도'에서 상당히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진보언론의 맏형인 한겨레에 대해 느꼈을 노 전 대통령의 실망감은 '브루투스 너마저도…'를 외치며 죽어 갔던 카이사르의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도 지난 1일자 23면 칼럼에서 "비판의 칼을 언론이 쥐는 것은 언론이 분별력을 가지고 차별 없이 이 칼을 휘두른다는 전제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 4월30일자 21면.  
 
한국언론학회장을 지낸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 원칙이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가장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자. 정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기사쓰기, 저널리즘 복원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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