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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시사저널> 9일자 동행취재기.
ⓒ 시사저널 홈페이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양계장 분쇄기에서 살해했다는 이모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MBC PD수첩)

"PD수첩팀이 일방적으로 내린 결론은 취재과정과 절차 등을 짚어볼 때 사건의 진실이라고 단정하기에 불충분하고 바람직한 보도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사저널)


이른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양계장 암살설' 진위여부를 둘러싼 시사저널과 MBC의 공방이 한창이다. 사건 당사자로 거론된 국가정보원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두 언론사의 뜨거운 보도공방이 진상규명에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MBC PD수첩은 지난 3일 "김형욱 양계장 암살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를 처음 제기한 4월 11일자 시사저널 보도를 사실상 오보로 간주했다. 그러자 시사저널은 9일 "PD수첩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박 동행취재기를 실었다. 이에 PD수첩은 같은 날 제작진 일동 명의로 쓴 '시사저널의 PD수첩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 재반박을 펼쳤다.

시사저널 "PD수첩, 취재는 부실했고 결론은 성급했다"

정희상 시사저널 기자는 9일자 「'김형욱 암살현장' 동행취재의 진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PD수첩 취재는 부실했고 결론은 성급했다"며 MBC 보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정 기자는 일본·프랑스 등에서 6박7일간 진행된 PD수첩 현지취재에 전 중앙정보부 특수공작원이자 김형욱 암살자를 자처하는 이모씨와 동행했다.

정 기자는 "당초 기대했던 핵심증거 접근에 실패하면서 사건진상 규명은 궁극적으로 정부기관 몫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만 안고 돌아왔을 뿐"이라며 "동행취재 과정에서 PD수첩의 단정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 기자는 ▲여배우 최지희씨와 이모씨(위조여권 이름 김승)의 일본 출입국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 ▲파리 현지취재는 하루 반에 불과했고 사전취재 준비가 안돼 있었다 ▲이씨를 대동해 양계장을 하나하나 방문해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겠다던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다 ▲ 이모씨가 26년 전 파리 길을 주저 없이 찾아내리란 기대가 무리였다 ▲79년 파리근교 양계장 분포도와 위치를 확보해두지 않았다 ▲이모씨가 주장한 대규모 산란계 양계장을 가보지 못했다 ▲방문한 양계장 분쇄기는 커터 절단기나 중대형 햄머밀 형태와 달랐다 등을 부실취재 사례로 지적했다.

정 기자는 "PD수첩이 대략 어떤 방향으로 방송할지는 짐작했지만 '현장철저 검증' 타이틀까지 붙이고 양계장 암살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양계장 분쇄기 이용한 살인범죄 통계를 찾아낸다든지, 프랑스 축산용 사료분쇄기 유형과 역사, 기능 등에 대해 직접 찾아보는 보강취재가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정 기자는 "PD수첩은 국내외에서 몇몇 축산연구가나 업자들 말만 듣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면서 "79년 당시 대형 커트절단기나 큰 햄머밀을 사용한 파리 근처 양계장이 어디에 있었는지 등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장까지 갔지만 의문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고 밝힌 정 기자는 "PD수첩 판단이 옳을지라도 '이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를 절대적 진리인 양 몰고간 것은 위험하다, 이번 보도로 국정원 (이씨) 조사를 가로막을 수 있어 안타깝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정 기자는 PD수첩이 이번에 보여준 취재·보도과정에 대한 윤리문제도 제기했다. 정 기자는 "PD수첩이 처음부터 독자적 방향으로 취재한다고 사전에 밝혔더라면 스스로 취재하도록 맡겼을 텐데 시사저널의 모든 취재자료를 그들에게 넘겨준 뒤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씨의 '김형욱 양계장 암살실행' 주장에 대해 "언론으로서 진위여부 검증이 불가능한 사건"으로 규정한 뒤 "국가정보원이나 새로 출발하는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에서 제대로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지난 3일 방영된 MBC < PD수첩> '현장검증! 김형욱 양계장 암살'편. 이모씨가 79년 당시 김형욱씨를 납치했다는 프랑스 파리 거리.
ⓒ MBC 제공

PD수첩 "시사저널, 상식 외면하고 검증 생략했다"

그러나 동행취재를 했던 PD수첩 제작진은 전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양계용 사료분쇄기로 사람을 흔적 없이 없애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 국내취재와 이모씨 동행취재, 파리현지 사전취재 등을 통해 양계장 암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PD수첩은 ▲시사저널이 주장하는 커터 절단기는 양계장에서 쓰지 않는다 ▲사람을 흔적 없이 만들 양계장 분쇄기는 과거는 물론 지금도 없다 ▲79년 당시 파리근교 양계장에는 '흔적 없는 분쇄'는 물론 사람을 넣을 정도의 큰 분쇄기마저 없었다 ▲유인역할을 했다는 여배우가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자칭 암살자 이씨는 범행루트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지 못했다 ▲이씨는 국내에서 최초 인터뷰와 현장에서 인터뷰가 불일치했다 등을 양계장 살해 불가의 근거로 제시했다.

여기에 암살 실행조장을 자처한 이모씨가 파리에서 납치현장을 단번에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당시 숙박호텔을 기억하지 못한 점과 납치현장에 있었다고 거론된 여배우 최지희씨가 제시한 일기 형식의 비망록 알리바이(날씨 일치) 등도 덧붙여졌다.

PD수첩은 "우리가 검증한 이같은 사실은 지난 6개월간 시사저널에 의해 검증될 수도 있었다"며 "파리 현지취재가 아니더라도 국내 양계관련이나 사료분쇄기 전문가를 접촉해 상식적 질문을 했다면 들을 수 있었던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부분 매체들이 인용하도록 한 끔찍한 보도가 충분한 검증 없는 오보였음에도 그저 지나간다면 국민이 겪은 심리적 충격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이며 언론윤리 저하는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또 "PD수첩이 제시한 핵심근거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시사저널 반박을 맞받아쳤다.

PD수첩은 또 "다음 호에서 이모씨의 양계장 암살주장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전문가를 단 한명이라도 실명으로 인터뷰해주기 바란다"고 시사저널에 요구하고 "만약 시사저널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방송을 통한 사과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MBC "공개토론하자"

시사저널과 MBC PD수첩은 공개토론이나 제3의 언론을 통해 이번 보도공방의 진위를 검증받자는 제안을 동시에 내놓았다.

그러나 정희상 시사저널 기자는 취재·보도윤리의 문제점을, PD수첩은 사건실체를 포함한 양자 보도내용을 함께 검증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정 기자는 "언론이 사건실체 규명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정원 등 국가권력에게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PD수첩의 취재·보도윤리 문제를 지적했던 정 기자는 "기자협회나 PD연합회가 주최하는 공개토론회에서 검증해보자"고 말했다.

이에 비해 PD수첩은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최종 핵심증거 전에 간접적 증거들이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양시양비론이나 어정쩡한 중계로 주장을 나열하는 눈치보기식 보도는 끝내야 한다"며 양측 관계자 토론에도 응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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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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