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562~0659 年代記 > 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사신을 보내 고려에 말하기를 “너희와 백제는 즉시 군사를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또다시 그를 공격한다면 내년에 반드시 군사를 내어서 그대 나라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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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三國史記(1145)
진흥왕이 거칠부와 여덟 장군에게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거칠부 등은 승리를 틈타서 죽령 바깥, 고현 이내의 10군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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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2.05 日本書紀(720)
百濟·加羅·安羅 遣中部德率木刕今敦·河內部阿斯比多等奏曰 高麗與新羅 通和幷勢 謀滅臣國與任那 故謹求請救兵 先攻不意 백제, 가라 그리고 안라가 중부 덕솔 목례금돈, 하내부 아사비다 등을 보내어 “고려가 신라와 화친하고 세력을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도모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구원병을 청해 먼저 불시에 공격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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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8↝ 三國史記(1145)
혹자가 고구려 왕에게 “신라 사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온 것은 아마 우리의 형세를 관찰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왕께서는 그 계책을 세우시어 후환이 없도록 하소서.”라고 고하였다. 왕이 곤란한 질문으로 대답하기 어렵게 하여 그를 욕보이고자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다. 만약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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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 구당서(945) 新羅
高麗百濟 累相攻襲 亡失數十城 兩國連兵 意在滅臣社稷 謹遣陪臣 歸命大國 乞偏師救助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고려와 백제가 여러차례 번갈아 공습을 하여 수십 성을 잃었는데, 두 나라 군대가 연합하여 신의 사직을 없애려 합니다. 삼가 배신을 보내어 대국에 보고를 하오니, 약간의 군사로나마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상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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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 신당서(1060) 高麗
高麗百濟聯和 將見討 謹歸命天子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글을 올려, “고려와 백제가 연합하였으므로 침범을 받을 것 같습니다. 삼가 천자께 의지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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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책부원귀(册府元龜)
九月庚辰 新羅遣使言 高麗百濟侵凌臣國, 累遭攻襲數十城 兩國連兵 期之必取 將以今玆九月大擧 臣社稷必不獲全 謹遣陪臣 歸命大國 願乞編師 以存救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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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三國史記(1145)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말하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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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구당서(945) 新羅
太宗遣相里玄獎齎璽書賜高麗曰 新羅委命國家 不闕朝獻 爾與百濟 宜卽戢兵 若更攻之 明年當出師擊爾國矣 태종은 상리현장을 보내어 고려에, “신라는 나의 명령에 따르는 나라로서 조헌을 빼놓지 않았소. 그대 나라와 백제는 함께 마땅히 무기를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이오. 만약 다시 공격을 한다면 내년에 군사를 내어 그대 나라를 칠 것이오.” 라는 새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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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구당서(945) 高麗
蓋蘇文謂玄獎曰 高麗新羅 怨隙已久 往者隋室相侵 新羅乘釁奪高麗五百里之地 城邑新羅皆據有之 自非反地還城 此兵恐未能已 개소문이 현장에게 말하기를, “고려와 신라는 원수를 맺은 지가 이미 오래다. 지난날 수나라와 서로 싸울 적에 신라는 그 틈을 타서 고려 땅 5백리를 빼앗고, 성읍도 신라가 모두 차지하였다. 스스로 그 땅과 성들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번의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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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구당서(945) 高麗
● 642년에 고려는 김춘추에게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5백리는 죽령 이북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땅은 551년에 백제가 고려를 칠 때 신라가 어부지리로 획득한 지역이고 수나라가 고려를 침공할 때 빼앗은 땅이 아니다. 수나라가 고려를 침공할 때 신라가 고려의 땅 5백리를 빼앗았다는 기록은 없다. 개소문이 내력를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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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신당서(1060) 高麗
是遣司農丞相里玄獎以璽書讓高麗 且使止勿攻 使未至 而蓋蘇文已取新羅二城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새서를 주어 보내어 고려를 나무라고, 또 공격하지 말도록 하였다. 사자가 채 이르기 전에 개소문이 벌써 신라의 두성을 탈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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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신당서(1060) 高麗
玄獎諭帝旨 答曰 往隋見侵 新羅乘舋奪我地五百里 今非盡反地 兵不止 현장이 태종의 유지를 알리자, 답변하기를, “지난 날 수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적에 신라는 그 틈을 타 우리 땅 5백리를 빼앗아갔소. 지금 그 땅을 다 돌려주지 않으면 싸움을 중지할 수 없소.”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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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신당서(1060) 高麗
玄獎曰 往事烏足論邪 遼東故中國郡縣 天子且不取 高麗焉得違詔 不從 현장이, “지나간 일을 논할 것이 있겠소? 요동은 본시 중국의 군현이지만, 천자께서는 그래도 취하지 않으시었소. 고려가 어찌 조명을 어길 수 있겠소?”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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