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릉비에는 396년에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자 아신왕이 항복하고 모루성 등 58성과 이들 성에서 뽑은 포로 1000명을 바쳤다고 나옵니다.
비리성 등 포로들의 출신지를 보면 이 58성은 차현 이남까지 이르는 것으로 마한 54국에 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정황은 고려가 이들 지역을 차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 기록의 진위를 의심하게 되죠.
그 의심은 일본서기에 의해 해소됩니다.
일본서기에는 이듬해인 397년에 왜가 백제의 동한, 현남, 지침, 곡나 그리고 침미다례를 빼앗고 백제가 왕자 직지를 왜에 볼모로 보냈다고 되어 있죠.
이는 전해에 백제가 고려에 항복하고 58성을 바친 것을 왜가 뒤집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광개토왕릉비에도 백제가 항복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였고 이어서 왜가 고려를 침공해 왔다고 되어 있어 일본서기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죠.
28년전인 369년에 백제와 왜가 연합하여 반도의 남부를 정벌하고 동서로 갈라 차지할 때만해도 두 나라는 대등한 관계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백제는 왜의 괴뢰국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廣開土王陵碑」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 軍□□ 首攻取
殘不服義 敢出百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歸穴□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太王恩赦□迷之愆 錄其後順之誠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守墓 韓穢二百廿家 牟婁城 彌鄒城 古牟婁城 比利城 ...
「日本書紀」 百濟記云
阿花王立無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廣開土王陵碑」
百殘違誓與倭和通
十四年
而倭不軌侵入帶方界□□□□□石城□連船□□□
王躬率□□從平穰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斬煞無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