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가 편찬되기 300여년 전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에는 396년에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자 백제가 항복하고 58성을 바쳤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백제가 항복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고 하죠.
일본서기에는 397년에 왜가 백제의 침미다례, 현남, 지침, 곡나 그리고 동한을 빼앗고 백제가 왕자 직지를 왜에 볼모로 보냈다고 되어 있어, 백제와 왜가 화통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에는 또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간청하자 광개토왕이 400년에 5만의 군사를 보내어 신라에 가득한 왜군을 내쫓고 임나가라까지 추격하여 항복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왜는 404년에 고려의 대방 지역을 침공해 왔다고 되어 있죠.
이러한 광개토왕릉비의 이야기는 대륙 세력인 고려와 해양 세력인 왜 사이에서 한국이 고전했다는 반도적 속성론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廣開土王陵碑」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
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百殘違誓與倭和通
「日本書紀」 百濟記云
阿花王立無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廣開土王陵碑」
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十年
遣步騎五萬往救新羅
至新羅城倭滿其中 官軍方至倭賊退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十四年
而倭不軌侵入帶方界□□□□□石城□連船□□□
王躬率□□從平穰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斬煞無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