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진을 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윤월. 서경에 행차하였다가 다음으로 안북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봉산군을 공격하여 우리의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이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서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봉산을 구하고자 하였다. 소손녕이 공표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다 차지하였는데, 지금 너희 나라가 변경지역을 침탈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토벌하러 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사방을 통일하였으니 아직 귀부하지 않은 나라는 기필코 소탕시킬 것이다. 속히 항복하여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서희가 그 글을 보고 돌아와서 강화할 수 있는 기미가 있다고 아뢰었다. 왕이 감찰사헌 차예빈소경 이몽전을 거란의 군영에 보내어 강화를 청하였다.
소손녕이 또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80만 병사가 이르렀다. 만약 강으로 나와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섬멸시킬 것이니, 마땅히 군신들은 속히 군영 앞에 나와서 항복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군영에 이르러 침입하여 온 까닭을 물었다. 소손녕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백성들의 일을 돌보지 않으니, 이 때문에 삼가 천벌을 주려는 것이다. 만약 강화를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속히 나와서 항복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돌아오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그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어가는 개경의 궁궐로 돌아가고, 중신으로 하여금 군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항복을 청하게 하십시오.”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서경 이북의 땅을 나누어서 저들에게 주고, 황주에서부터 절령까지의 선을 국경으로 삼음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장차 땅을 나누어 주자는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서경 창고의 쌀을 개방하여 백성들에 가져가도록 맡겨두었는데, 남은 것이 여전히 많았다. 왕이 적군의 군량으로 쓰일까 염려하여 대동강에 던져버리게 하였다.
서희가 아뢰기를, “식량이 충분하면 곧 성을 지켜낼 수 있으며, 전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병사들의 승부는 강하고 약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다만 틈을 잘 보아 움직이는 것일 뿐이니, 어찌 경솔하게 버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식량은 백성들의 목숨과 같은 것이니, 차라리 적군의 군량이 될지언정 헛되이 강물에 버린다면 이 또한 하늘의 뜻에 맞지 않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옳게 여기고 그만두게 하였다. 서희가 또 아뢰기를,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지금 거란병이 침입하여 옴에 그 뜻은 이 두 성을 차지하고자 한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그 말은 고구려의 옛 땅을 취하겠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보기에 그들 병사들의 기세가 매우 성하다고 하여 성급히 서경 북쪽의 땅을 나누어 주는 것은 계책이 아닙니다. 또 삼각산 이북지역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욕심으로써 싫증낼 줄 모르고 그곳을 요구한다면, 다 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땅을 나누어 준다면 곧 진실로 만세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시고, 신 등으로 하여금 그들과 한 번 싸워본 후에 다시 의논하게 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전 민관어사 이지백도 아뢰기를, “태조께서 나라를 처음 세워 왕통을 드리우셨는데, 오늘 날에 이르러 충신이 한 사람도 없어서 갑자기 국토를 경솔하게 적국에 주고자 하니, 원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 사람의 시에서 말하기를, ‘천리의 산하를 가벼이 한 어린아이, 두 왕조의 문무백관이 초주를 한탄하였네.’라고 하였으니, 대개 초주가 촉의 대신으로서 후주에게 영토를 위에 바치라고 권하여 오래도록 웃음거리가 되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경솔하게 토지를 분할하여 적국에 주어버리는 것이 어찌 연등회·팔관회·선랑 등 선왕의 일을 다시 시행하고, 다른 나라의 다른 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보존하여 태평한 정치에 이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만약 옳다고 여기신다면, 마땅히 먼저 천지신명에게 고하시고, 그 후에 저들과 싸울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는 오직 성상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왕이 중국의 풍속을 즐겨 따랐는데, 백성들은 이를 기꺼워하지 않았으므로 이지백이 이렇게 말 한 것이다.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지 오래되었는데도 회답이 없자 마침내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맞서 싸워서 이겼다. 소손녕이 감히 다시 전진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재촉하였다.
왕이 화통을 위한 사신으로 합문사인 장형을 거란의 군영으로 보냈다. 소손녕이 말하기를, “마땅히 다시 대신을 보내어 군영 앞에서 면대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장형이 되돌아오니,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묻기를, “누가 거란의 군영으로 가서 담판을 지어 적군을 물러가게 함으로써 만세에 길이 남을 공을 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 중 아무도 부응하는 자가 없었는데, 서희만이 홀로 아뢰기를,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강가 나루터까지 배웅 나와서 손을 잡고 위로하고는 보내었다.
서희가 국서를 받들고 거란의 군영으로 갔는데, 소손녕과 더불어 동등한 예로 대하면서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소손녕이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기면서 서희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범하여 갉아먹고 있다. 또 우리와 더불어 영토를 맞대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송을 섬기고 있으니, 우리 대국이 이 때문에 토벌을 하러 온 것이다. 이제 영토를 나누어 바치고 조빙의 예를 취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이니, 그렇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입니다. 토지의 경계를 논하자고 한다면, 상국의 동경도 모두 우리의 영역에 있는 것이 되는데, 어찌 침식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의 영역 안쪽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를 도적질하여 기거하면서 완악하고 교활하게 변덕을 부리므로 길이 막혀 통하지 못함이 바다를 건너는 것 보다 더 심하니, 조빙이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때문입니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돌려주어 성과 보를 쌓고 길이 통하게 하여 준다면 감히 조빙의 예를 갖추지 않겠습니까. 장군께서 신의 말을 가지고 가서 천자께 전달하신다면, 어찌 불쌍히 여겨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의 기운이 강개하므로 소손녕도 억지로 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마침내 그대로 갖추어서 아뢰니, 거란의 황제가 말하기를, “고려가 이미 강화를 요청하였으니, 마땅히 군사들을 철수시키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서희가 거란의 군영에 7일간 머무르다가 돌아오니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강나루로 나와 맞이하고, 곧 시중 박양유로 하여금 예폐사가 되어 들어가 뵙게 하였다.
서희가 다시 아뢰기를, “신이 소손녕과 약속하기를, 여진을 평정하여 옛 땅을 수복한 후에야 조정에 들어가 뵙고 통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겨우 강 안쪽만을 수복하였으니, 강 바깥쪽까지 점령하기를 기다렸다가 조빙의 예를 취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오랫동안 조빙을 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게 될까 두렵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보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