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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북선우(北單于)를 공격하고 한에게는 사신과 보물을 바침

  • 국가
    남흉노(南匈奴)
[건무] 25년(49)주 001
각주 001)
『資治通鑑』(권44 「漢紀36」 〈光武帝 建武 25年(49)條〉: 1413~1414)에 “是歲, 遼西烏桓大人郝旦等率衆內屬, 詔封烏桓渠帥侯·王·君長者八十一人, 使居塞內, ……助擊匈奴·鮮卑. 時司徒掾班彪上言:‘烏桓天性輕黠, ……. 臣愚以爲宜復置烏桓校尉, 誠有益於附集, 省國家之邊患.’ 帝從之. 於是始復置校尉於上谷甯城, 開營府, 幷領鮮卑賞賜·質子, 歲時互市焉.”이란 기사가 보인다. 이를 따른다면 전한시대에 설치했다가 없앤 烏桓校尉가 후한시대에 다시 두었는데, 그 시기는 光武帝 建武 25年(49)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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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호한야선우는] 아우인 좌현왕(左賢王) 막(莫)을 파견하니, [그는] 병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북선우(北單于)주 002
각주 002)
蒲奴單于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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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우인 욱건좌현왕(薁鞬左賢王)을 공격하게 하여 그를 생포하였고 또 북선우가 직접 관장하고 있는 군대를 격파하였다. [이 두 전투에서] 총 그 무리 합계 만여 명, 말 7천 필 그리고 소와 양을 [합해서] 만 두를 획득하였다. 북선우는 놀라고 두려워서 천 리나 퇴각하였다.주 003
각주 003)
『後漢書』(권1下 「光武帝紀」:77)에 “南單于遣使詣闕貢獻, 奉蕃稱臣. 又遣其左賢王擊破北匈奴, 却地千餘里.”라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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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황제가 만든 전차(戰車)는 몇 마리의 소가 끌 수 있도록 하였고 [전차] 위에는 망루[樓櫓]를 만들어서 변경 관새(關塞)에 배치하여 흉노를 막도록 하였다. [그것을] 본 당시 사람들은 서로 “참언(讖言)주 004
각주 004)
讖言: 앞으로 일어날 일, 즉 ‘미래의 일을 예언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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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 9대에 이르면 북쪽 오랑캐의 땅이 천 리 뒤로 물러나게 된다.’고 하더니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과연 [은] 땅이 확장되었던 것이다. 북부주 005
각주 005)
北匈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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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욱건골도후(薁鞬骨都侯)와 우골도후(右骨都侯)가 [그] 부중 3만여 명을 거느리고 남선우(南單于)주 006
각주 006)
남흉노의 초대 선우인 呼韓邪單于 比(재위 48~56)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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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귀부(歸附)하였다. [이에] 남선우는 다시 사신을 [의] 궁궐로 보내어 [변경의] 울타리[藩]로써 [왕실을] 받들고 신하를 자칭하며 나라의 진귀한 보물을 바치면서, [의] 사자(使者)가 [남흉노를] 감호(監護)한다면 [남흉노는] 시자(侍子)주 007
각주 007)
侍子: 일반적으로 고대에 屬國의 王이나 諸侯는 그 자식을 보내어 천자를 가까이서 모시면서 문화를 학습하도록 하는데, 이들이 바로 侍子이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후진 국가나 종족이 선진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얻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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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에] 파견한다는 이전의 약속[約]주 008
각주 008)
“이전의 약속”이란 漢의 使者가 匈奴를 監護하면 匈奴는 侍子를 漢에 파견한다는 呼韓邪單于 稽侯狦(재위 전58~전31)과 전한 宣帝(재위 전74~전49)의 약속을 가리킨다(林幹, 1984: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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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키겠다고 하였다.주 009
각주 009)
『後漢書』(권1下 「光武帝紀」: 77)에 “南單于遣子入侍”라고 하여, 이때 호한야선우가 아들을 후한 궁궐에 파견하여 入侍하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권44 「漢紀36」 〈光武帝 建武 25年(49)條: 1409)에는 원문과 동일한 기사, 즉 後漢이 南匈奴를 保護하면 南單于는 자신의 아들을 入侍하도록 한다는 舊約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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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資治通鑑』(권44 「漢紀36」 〈光武帝 建武 25年(49)條〉: 1413~1414)에 “是歲, 遼西烏桓大人郝旦等率衆內屬, 詔封烏桓渠帥侯·王·君長者八十一人, 使居塞內, ……助擊匈奴·鮮卑. 時司徒掾班彪上言:‘烏桓天性輕黠, ……. 臣愚以爲宜復置烏桓校尉, 誠有益於附集, 省國家之邊患.’ 帝從之. 於是始復置校尉於上谷甯城, 開營府, 幷領鮮卑賞賜·質子, 歲時互市焉.”이란 기사가 보인다. 이를 따른다면 전한시대에 설치했다가 없앤 烏桓校尉가 후한시대에 다시 두었는데, 그 시기는 光武帝 建武 25年(49)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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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蒲奴單于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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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後漢書』(권1下 「光武帝紀」:77)에 “南單于遣使詣闕貢獻, 奉蕃稱臣. 又遣其左賢王擊破北匈奴, 却地千餘里.”라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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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讖言: 앞으로 일어날 일, 즉 ‘미래의 일을 예언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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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北匈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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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남흉노의 초대 선우인 呼韓邪單于 比(재위 48~56)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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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侍子: 일반적으로 고대에 屬國의 王이나 諸侯는 그 자식을 보내어 천자를 가까이서 모시면서 문화를 학습하도록 하는데, 이들이 바로 侍子이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후진 국가나 종족이 선진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얻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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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이전의 약속”이란 漢의 使者가 匈奴를 監護하면 匈奴는 侍子를 漢에 파견한다는 呼韓邪單于 稽侯狦(재위 전58~전31)과 전한 宣帝(재위 전74~전49)의 약속을 가리킨다(林幹, 1984: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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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後漢書』(권1下 「光武帝紀」: 77)에 “南單于遣子入侍”라고 하여, 이때 호한야선우가 아들을 후한 궁궐에 파견하여 入侍하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권44 「漢紀36」 〈光武帝 建武 25年(49)條: 1409)에는 원문과 동일한 기사, 즉 後漢이 南匈奴를 保護하면 南單于는 자신의 아들을 入侍하도록 한다는 舊約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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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호한야선우, 막(莫)
지명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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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북선우(北單于)를 공격하고 한에게는 사신과 보물을 바침 자료번호 : jo.k_0003_0119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