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史書 > 0554 魏書(北齊 魏收) > 勿吉
 
魏書(554) 01
勿吉國 在高句麗北 舊肅慎國也 邑落各自有長 不相總一 其人勁悍 於東夷最強 言語獨異 常輕豆莫婁等國 諸國亦患之 去洛五千里 自和龍北二百餘里有善玉山 山北行十三日至祁黎山 又北行七日至如洛環水 水廣里餘 又北行十五日至太魯水 又東北行十八日到其國 國有大水 闊三里餘 名速末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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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1
勿吉國은 高句麗의 북쪽에 있으니, 옛 肅愼國의 지역이다. 읍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으며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東夷 중에서 가장 강하며, 언어도 그들 만이 다르다. 豆莫婁 등의 나라를 항상 깔보며 여러 나라도 이들을 두렵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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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1
洛陽에서 五天理 떨어져 있다. 和龍에서 북으로 2백여리에 善玉山이 있고, 그 산에서 북으로 13일을 가면 祁黎山에 이른다. 다시 북으로 7일을 가면 如洛瓖水에 이르니, 강 폭이 1리 남짓이다. 다시 북으로 15일을 가면 太魯水에 이르고, 다시 동북으로 18일을 가면 그 나라에 도달한다. 그 나라에는 큰 강이 있어, 폭은 3리 남짓이며 이름은 速末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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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2
其地下濕 築城穴居 屋似形塚 開口於上 以梯出入 其國無牛 有車馬 佃則偶耕 車則步推 有粟及麥穄 菜則有葵 水氣醎凝 鹽生樹上 亦有鹽池 多豬無羊 嚼米醖酒 飲能至醉 婦人則布裙 男子豬犬皮裘 初婚之夕 男就女家執女乳而罷 便以為定 仍為夫婦 俗以人溺洗手面 頭插虎豹尾 善射獵 弓長三尺 箭長尺二寸 以石為鏃 其父母春夏死 立埋之 塚上作屋 不令雨濕 若秋冬 以其尸捕貂 貂食其肉 多得之 常七八月造毒藥傅箭鏃 射禽獸 中者便死 煮藥毒氣亦能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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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2
땅은 낮고 습하며 성을 쌓아 혈거 생활을 하는데, 집 모양은 마치 무덤과 같으며 출구를 위로 향하게 내어 사다리를 놓고 드나든다. 그 나라에는 소는 없는데, 수레와 말은 있다. 밭갈 때는 사람 둘이서 끌고, 수레는 사람이 밀고 다닌다. 곡식은 보리와 기장이 있고 채소는 아욱이 있다. 물의 맛은 소금기가 배어 있으며, 소금은 나무에서 생산된다. 또 짠물이 고여 있는 못도 있다. 돼지는 많으나 羊은 없다. 쌀을 씹어 술을 만드는데 마시기만 하면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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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2
부인은 베로 만든 치마를 입고, 남자들은 돼지나 개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 결혼 첫날 밤에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여자의 유방을 잡았다가 그만두면 곧 정혼이 되어 이내 부부가 된다. 오줌으로 세수하고 머리에는 호랑이나 표범의 꼬리를 꽂는다. 활로 사냥을 잘 하니 활의 길이는 3자요, 화살 길이는 1자 2치인데, 돌로 화살촉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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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2
부모가 봄이나 여름에 죽으면 세워서 묻고는 무덤 위에 지붕을 지어 비나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한다. 만약 가을이나 겨울에 죽으면 그 시체를 이용하여 담비를 포획하는데, 담비가 그 살을 뜯어먹다가 많이 잡힌다. 해마다 7,8월이면 독약을 제조하여 화살촉에 묻혀 두었다가 새나 짐승을 쏘는데, 맞기만 하면 바로 죽는다. 독약을 다리는데 그 약기운은 사람도 능히 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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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3
國南有徒太山 魏言大皇 有虎豹羆狼不害人 人不得山上溲污 行逕山者 皆以物盛 나라 남쪽에는 徒太山이 있는데 魏나라 말로는 大白으로, 호랑이·표범·큰곰·이리가 사람을 해쳐 사람들이 산에서는 오줌이나 대변을 보지 못한다. 산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물건에 담아 가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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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4
去延興中 遣使乙力支朝獻 지난 471~475년에 사신 을력지를 보내 조회하고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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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5
太和初 又貢馬五百匹 乙力支稱 初發其國 北船溯難河西上 至太沵河 沉船於水 南出陸行 渡洛孤水 從契丹西界達和龍 自云其國先破高句麗十落 密其百濟謀從水道並力取高句麗 遣乙力支奉使大國 請其可否 詔敕三國同是籓附 宜共和順 勿相侵擾 乙力支乃還 從其來道 取得本船 泛達其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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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5
477~499년 초에 또 말 5백필을 바쳤다. 을력지는, “처음 나라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難河를 거슬러 서쪽으로 오르다가 太沵河에 이르러 배를 물속에 감추어 두고, 남으로 육로로 걸어서 洛孤水를 건너 거란의 서쪽 국경을 따라 和龍에 이르렀다.”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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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5
스스로 말하길, “그 나라에서 먼저 고구려의 10부락을 함락하고, 은밀히 백제와 함께 물길을 따라 힘을 합쳐 고구려를 취할 것을 꾀하고, 을력지를 대국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그 가부를 청한다.” 하였다. 이에 조칙으로, “세 나라를 똑같은 번신으로 마땅히 서로 화순해야 할 것이니, 서로 침입하지 말라.” 하였다. 을력지가 이에 돌아가는데, 그가 온 길을 따라 본래 가지고 온 배를 타고 그 나라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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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6
九年 復遣使侯尼支朝獻 明年復入貢 485년에 다시 사신 후니지를 보내 조회하고 방물을 바쳤다. 그 다음해에 다시 입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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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7
其傍有大莫盧國 復鐘國 莫多回國 庫婁國 素和國 具弗伏國 匹黎爾國 拔大何國 鬱羽陵國 庫伏真國 魯婁國 羽真侯國 前後各遣使朝獻 그 나라 근처에는 大莫盧國·覆鍾國·莫多回國·庫婁國·素和國·具弗伏國·匹黎尒國·拔大何國·郁羽陵國·庫伏眞國·魯婁國·羽眞侯國이 있는데, 잇달아 각기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고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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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8
太和十二年 勿吉復遣使貢楛矢方物於京師 488년에 물길에서 다시 사신을 경사에 파견하여 호시와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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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09
十七年 又遣使人婆非等五百餘人朝獻 493년에 또 사신 파비 등 5백여 명을 파견하여 조회하고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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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10
景明四年 復遣使候力歸等朝貢 自此迄於正光 貢使相尋 503년에 다시 사신 후력귀 등을 파견하여 조공하였다. 이 때부터 520~524년이 끝날 때까지 공물과 사신이 서로 왕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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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書(554) 11
爾後 中國紛擾 頗或不至 興和二年六月 遣使石久雲等貢方物 至於武定不絕 그 뒤 중국이 어지러워지면서 한참 동안 오지 않다가, 540년 6월에 사신 석구운 등을 파견하여 방물을 바쳤으며, 543~549년까지 끊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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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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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隋書(636)
徒太山이라는 산이 있어 풍속을 매우 숭상하고 두려워한다. 산 위에는 곰, 표범, 이리 등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도 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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