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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03-28
삼국사기의 저자는 海東에 국가가 있은 것은 箕子가 주나라로부터 朝鮮에 봉해진 때부터이며 衛滿의 참칭을 거쳐 한나라의 玄莬와 樂浪이 되었다가 나중에 高麗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新羅에 대해서는 秦나라의 유민이 馬韓의 동쪽에 거처를 정하고 辰韓과 더불어 섞여 살다 점차 강성해져 新羅가 되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高麗와 新羅의 유래가 각기 다르게 되는 이런 인식은 高麗계승을 내세운 王氏高麗가 통합을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新羅의 건국 이야기에서 新羅의 뿌리를 秦나라의 유민에서 朝鮮의 유민으로 바꿔놓고 朝鮮을 매개로 高麗와 新羅를 연결한 듯합니다.
이는 일제가 한일합방을 정당화하기 위해 日本과 韓國의 뿌리가 같다는 日鮮同祖論을 내세운 것과 비슷합니다.

「三國史記」
海東有國家久矣
自箕子受封於周室 衛滿僭號於漢初

玄莬·樂浪 本朝鮮之地 箕子所封

髙勾麗本箕子所封之地 漢·晉皆爲郡縣
今乃不臣 別爲異域 先帝欲征之久矣

遣瓠公聘於馬韓
前此 中國之人 苦秦亂 東來者衆
多處馬韓東 與辰韓雜居 至是寖盛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