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地理志 > -0108 漢郡 > 蒼海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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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6- 일주서
穢人前兒前兒若獮猴立行聲似小兒 예인은 전아(를 바친다). 전아는 원숭이처럼 생기고 서서 다니며 어린애와 같은 소리를 낸다. 良夷在子在子幣身人首脂其腹炙之藿則鳴曰在子 양이는 재자(를 바친다). 재자는 포폐의 체형을 하고 있으나 머리는 사람이다. 배에 기름이 있어 그것을 태운다. ▐ 여기 나오는 양이는 대동강 유역으로 추정된다. 그런 양이와 함께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예인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 하구로 온 뒤 중국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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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한나라 10국 15군
-0195 @한나라 10국 15군
15431 SHARED
 
-0091 사기
彭吳賈滅朝鮮置滄海之郡則燕齊之間靡然發動 팽오가 조선을 매수하여 멸망시키고 창해군을 설치하자 연과 제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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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1 사기
▐ 0058~0075 후한의 요동태수 제융이 청주와 서주에서 돈을 거둬 선비를 매수하고 오환을 견제하게 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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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1 사기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漢)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현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眞番旁衆國 또는 眞番旁辰國 진번 곁의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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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 -0128
夷薉君南閭等口二十八萬人降為蒼海郡 동이 예군 남려가 28만 명과 함께 항복해오니 창해군이 되었다. ▐ 蒼海은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는 대조적이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의 영흥만 지역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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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 -0128
彭吳穿穢貊朝鮮置滄海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팽오가 예맥조선을 뚫고 창해군을 설치하자 연과 제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 사기(-91)의 賈滅朝鮮이 穿穢貊朝鮮으로 바뀌어 있다. 사기에 없는 예군 남려 이야기가 한서에 수록되면서 이 부분도 수정이 된 듯하다. 예맥조선을 뚫는다는 표현은 창해군이 그들 지역을 지나 동해안에 설치되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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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 -0125
三年春 罷蒼海郡 -125년에 창해군을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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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濱大海而居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 大海는 滄海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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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
濊君南閭等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為蒼海郡 數年乃罷 예군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 우거를 배반하였다는 표현은 사기(-91)에 위만조선이 우거 때에 이르러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부분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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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單單大領 北路
▐ 왕씨고려말에 압록강과 영흥만을 잇는 길은 집안-강계-설한령-황초령-화주였다. 한무제 시기에 중국과 예를 잇는 길이 개척되었다면 이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안에서 중국과 통하는 길은 북쪽으로 요동으로 연결되는 길과 남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 발해를 건너는 길이 있다. 원래 예와 중국을 잇는 길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지났는데(單單大領 南路) 위만조선에 의해 막히자 이 길이 개척되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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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0732 사기索隱(司马贞)
(彭吳賈滅朝鮮置滄海之郡) 彭吳賈人姓名 始開其道而滅之 朝鮮番名 팽오는 매수한 사람의 성과 이름이다. 비로소 길을 열고 멸망시켰다. 조선은 번국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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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0056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동옥저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국경을 넓혀 동쪽으로는 창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살수까지 이르렀다. ▐ 蒼은 푸르다는 뜻이고 滄은 큰 바다라는 뜻이다. 예군이 투항해오자 한나라가 설치한 蒼海郡은 예의 북쪽에 있는 동옥저를 고구려가 정벌하고 이르른 滄海에 접해 있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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