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1392 元明 교체 > 1387~1388 철령위와 위화도 회군 > 1388.02 王高 禑王 表

명에서 철령위를 세우고자 하니 우왕이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였다.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철령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고주·화주·정주·함주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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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王高 禑王 表(1388)
至遼乾統七年 有東女眞等作亂 奪據咸州迆北之地 睿王告遼請討 遣兵克復 就築咸州及公嶮鎭等城 1107년에 동여진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 이북의 땅을 빼앗아 점거하니, 예왕이 요에 고하고 토벌할 것을 청하여 병사를 보내어 쳐서 회복하고 함주와 공험진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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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王高 禑王 表(1388)
及至元初戊午年間 蒙古散吉大王·普只官人等領兵 收附女眞之時 有本國定州叛民卓靑 龍津縣人趙暉 以和州迆北之地迎降 聞知金朝遼東咸州路附近瀋州 有雙城縣 因本國咸州近處和州 有舊築小城二坐 矇聾奏請 遂將和州 冒稱雙城 以趙暉爲雙城摠管 卓靑爲千戶 管轄人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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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王高 禑王 表(1388)
1258년에 이르러 몽골의 산길대왕·보지관인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정복하던 때에, 본국의 정주의 반란민인 탁청, 용진현 사람인 조휘가 화주 이북 지방을 가지고 나아가 항복하였습니다. 금의 요동 함주로 부근의 심주에 쌍성현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본국의 함주 근처 화주의 작은 옛 성 2개를 모호하게 주청하여, 마침내 화주를 가지고 쌍성이라고 모칭하고 조휘를 쌍성총관으로, 탁청을 천호로 삼아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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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王高 禑王 表(1388)
▐ 우왕의 주장을 요약하면, 천산산맥 북쪽에 금나라의 咸州가 있었는데 철령 이북에 있는 咸州를 이와 혼동하여 원나라가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켰다는 이야기다. 몽골은 1234년에 북경에 있던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산길 대왕이 이끄는 군대가 만주의 여진을 평정하였는데, 이 군대가 철령 이북까지 내려와 1258년에 쌍성부를 설치한 것이다. 당시 왕씨 조정은 1232년에 강화도로 들어간 뒤 1270년까지 육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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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 王高 禑王 表(1388)
至至正十六年間 申達元朝 將上項摠管千戶等職革罷 以和州迆北 還屬本國 至今 除授州縣官員 管轄人民 1356년에 원 조정에 아뢰어, 윗 항의 총관과 천호 등의 직을 혁파하고 화주 이북을 다시 본국에 속하게 하였는데, 지금까지 주현의 관원을 제수하여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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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高 禑王 表(1388)
鐵嶺之山距王京 僅三百里 公嶮之鎭 限邊界 非一二年 철령의 산은 왕경으로부터 거리가 겨우 300리이며, 공험진을 변방의 경계로 삼은 것은 1, 2년이 아닙니다. ▐ 개경에서 금강산 인근의 철령까지는 300리쯤 되고 봉집까지는 1000리쯤 된다. 따라서 우왕이 말하는 철령은 금강산 인근에 있는 고개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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