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년 신라가 당(唐)과의 전쟁을 끝마쳤을 때, 신라의 영토는 북쪽으로 임진강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이남이 신라의 영토로 공고히 된 것은 735년 당(唐)으로부터 대동강 이남의 통치권을 인정받고 난 이후였다.
신라는 신문왕(681~691)때 지방 통치조직을 9주(州)·5소경(小京)으로 재편하였고 경덕왕(742~765)때는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
이렇게 한국은 통일 이후 200여 년 간 신라라는 단일정치단위에 담기게 되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비로소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에서 당(唐)이 망할 무렵에는 신라도 지방 세력들이 왕조의 통제를 벗어나며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전라도 지방의 장수로 있던 견훤은 892년에 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 전무공등주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상주국 한남군개국공 식읍이천호(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 全武公等州軍事 行全州刺史 兼 御史中丞上柱國 漢南郡開國公 食邑二千戶)라 칭하였다. 그리고 900년에는 전주를 점령하고 백제왕을 자처하였다.
그러자 강원도와 경기도에 걸쳐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궁예도 901년에 고려를 세우고 왕을 칭했다. 그러나 918년에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나면서 고려는 왕씨의 왕조가 되었다. 왕씨고려는 935년에 신라와 합방하고 936년에 견훤백제마저 병합하였는데 이로써 한국의 왕조는 신라에서 왕고로 교체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