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史書 > 0289 三國志(晉 陳壽) > > 三國志(289) 04

侯準旣僭號稱王 為燕亡人衞滿所攻奪 후 준이 참람되이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三國志(三國志)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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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1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為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為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潘汗為界 朝鮮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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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1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가 약해지고 연이 스스로를 높여 왕을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 하자 조선후도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역공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대부 례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그래서 례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을 설득하니 연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은 장군 진개를 보내어 서쪽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은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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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2
及秦并天下 使蒙恬築長城 到遼東 時朝鮮王否立 畏秦襲之 略服屬秦 不肯朝會 否死 其子準立 二十餘年而陳 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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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위략(魏略) 02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즉위하였다.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승과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제·조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준에게 망명하므로 준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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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3
及漢以盧綰為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綰反 入匈奴 燕人衞滿亡命 為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說準求居西界 收中國亡命為朝鮮藩屏 準信寵之 拜為博士 賜以圭 封之百里 令守西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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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3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 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준을 설득하였다.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규를 하사하며 백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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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4
滿誘亡黨 衆稍多 乃詐遣人告準 言漢兵十道至 求入宿衞 遂還攻準 準與滿戰 不敵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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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魏略) 04
위만이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한나라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숙위하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은 만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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