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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3-23
高句驪가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82년에 편찬된 漢書입니다.
기원전 107년에 漢나라가 玄菟郡을 설치하며 그 아래에 高句驪縣을 두었다고 하죠.
漢書에 표기된 高句驪의 驪는 한자 검은 말 驪입니다.

이후 王莽이 高句驪 군사를 동원하여 오랑캐를 치려 했으나 그들이 반발하자 遼西大尹이 쫓다가 살해됩니다.
이를 두고 다들 高句驪侯 騶를 비난했는데, 嚴尤는 맥인이 그렇게 된 것은 騶에게 책임이 없다고 옹호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騶를 유인하여 죽이죠.
여기에 나오는 騶는 鄒牟 또는 朱蒙에 대응됩니다.
그리고 王莽은 高句驪를 下句驪라 부르게 하죠.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高句驪縣이 貉人 지역에 설치되었으며 王莽의 시기에는 高句驪縣과 별개로 貉人의 우두머리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또 漢書에는 句驪로만 표기된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高句驪에서 句驪는 어근이고 高는 꾸밈말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289년에 편찬된 三國志에는 한자 驪가 검은 말 驪 뿐만 아니라 고울 麗로도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句驪가 음차라는 사실을 암시하죠.
三國志는 또 句麗 사람들이 城을 溝漊라 부른다고 되어 있어 그 음차가 城의 음차일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五女山城처럼 높은 곳에 城이 있어 高句驪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죠.


高+(句驪/麗=溝漊=城)
High Castle

「漢書(082)」
玄菟郡(武帝元封四年開) 縣三 高句驪 上殷台 西蓋馬

莽發高句驪兵 當伐胡 不欲行 郡強迫之 皆亡出塞 因犯法為寇
遼西大尹田譚追擊之 為所殺
州郡歸咎於高句驪侯騶 嚴尤奏言 貉人犯法 不從騶起
尤誘高句驪侯騶至而斬焉 傳首長安
其更名高句驪為下句驪 布告天下 令咸知焉

「三國志(289)」
溝漊者 句麗名城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