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구태 여전, 유권자 "이번에 다를 것" 별러

“부산지역에서는 민국당 당명을 ‘영도다리 퐁당’으로 바꿔야 한다는 농담이 나오고 있다. 환경 공무원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돈다. 그렇지 않아도 오염이 심한 영도바다에 김광일씨 등 민국당 당원이 뛰어 내리면 큰일난다는 이야기다. DJ가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지역의 지역주의는 다분히 ‘방어적 지역주의’성격을 띠고 있다. 민국당이 출현해 부산 텃밭을 놓고 한나라당과 경쟁하면서 시민은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박재율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충청지역 시민은 지역감정 발언 인사에 상당히 냉소적이다.”(김광식 충청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김윤환씨의 발언 이후 대구에서는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언동에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대구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인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는 질책이다.”(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전라도에서는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을 풀었다. 이젠 호남사람이 DJ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옛날과는 다를 것으로 본다. 역대 선거에서 ‘90% 이상 지지표’가 나왔다는 사실은 전라도측에서 볼 때도 지역감정 책임론을 부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

3월 벽두부터 총선 정국을 어지럽히고 있는 각당의 지역감정 유발 발언에 대한 지역주민의 반응을 요약한 것이다. 이들의 분석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대로라면 지역감정은 앞으로 별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일부에서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 과거에 재미를 봤듯이 이번에도 지역감정을 부추겨 수확을 올리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4·13 총선의 밑그림이 1여3야의 구도로 그려지면서 지역주의 발언은 ‘막가파’식으로 치닫고 있다. 망국(亡國)보다는 망당(亡黨)이 더 무섭다는 태도다. 최근 지역감정 관련 발언은 막 별거상태에 들어간 DJ와 JP사이에서 터져나와 각 당으로 파급, 확대됐다. 각 당 인사의 발언을 시간별로 정리해 보자.


앞다툰 지역감정 자극발언

“전에는 영·호남이 나쁘지 않았으나 5·16 쿠데타 이후에 완전히 갈라섰다.”(3월1일, 김대중대통령)

“대한민국이 영·호남으로 갈린 것은 1971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 입후보하면서부터다. 이전에는 영남 사람이 호남 가서, 또 호남 사람이 영남 가서도 돌멩이를 맞은 적이 없었으나 이때부터 영·호남이 좍 갈라져 노태우 전대통령은 유세때 방탄유리까지 사용했다. 앞으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중화시킬 중요한 일은 중부권에서 해야 한다.”(2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민주당은 자존심 높은 충청도민을 뭘로 보기에 이인제군을 논산에 공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느냐.”(2일, 이한동 자민련 총재)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김대통령이다. 본인의 잘못을 알면서도 남에게 덮어 씌우는 행동은 지도자로서의 기본 자격조차 의심케 하는 것이다.”(3일,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

“차기 대선에선 TK와 PK가 합쳐 영남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5일, 김윤환 민국당 최고위원)

“신당이 실패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어야 되는 것 아니냐. 확실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영남에서 (대통령)후보가 나와야 한다.”(5일, 김광일 민국당 최고위원)

“(정권의)곁에서 곁불이나 쬐는 사람의 표밭 중심이 되는 충청인에 대해 정권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5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강원도에서 인물이 나면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러나 지역정당 구조가 계속되면 강원도 출신 대통령은 불가능하다.”(6일, 이인제 민주당 선대위원장)

“지역감정 덕택에 싹쓸이하고 그것도 모자라 옆동네와 동업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지역감정의 괴수중의 괴수다. 병신같은 놈을 우리 동네 사람이라고 찍어주는 것이 지역감정이지, 큰 사람을 우리 동네가 밀어주는 것은 지역감정이라고 할 수 없다.”(6일, 김광일 민국당 최고위원)


지역정당 구조가 지역감정 부채질

각 당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해답은 우선 현재 정당구조의 문제점과 한계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책정당이 아닌 지역정당 구조가 지역감정을 재생산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정당구조 아래서는 ‘모든 정당이 지역감정으로 이익을 보게 된다’는 일부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격적이든 방어적이든 지역감정은 각 지역을 결집시키고 이에 따라 각 당은 권리금을 챙겨 일단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있는 자민련과 민국당을 보자. 자민련은 자신의 충청권 지역터전이 내우외환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용환 의원의 한국신당이 안에서 잠식하고, 이인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밖에서 파고드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자민련은 충청권 유권자의 위기의식을 극대화해 자기 쪽으로 단결시키는 것이 원내교섭단체나마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민국당은 후발주자로서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세력을 거세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책이라고 보고 있다. 김광일 최고위원이 이회창 총재보다는 DJ를 향해 험구하는 것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한나라당 보다는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이 지역감정 유발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다소 느긋한 입장에서 적극대응을 않고 있다.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세력이 저절로 약화해 ‘손 안대고 코 푼 셈’이니 굳이 맞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자민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때려 주기를 원하고 있는’JP를 때리는 것은 전술에 말려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자민련측은 공격받을수록 충청표가 자신에게 몰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호남편중 인사론 등을 내세우며 영남권에서 반호남 정서를 부추기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인상이다. 영남권에서 민국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민주당(호남지역)이 이익을 보게 된다는 식의 우회공격을 택하고 있다.


최종해결사는 유권자와 시민단체

문제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데 난점이 많다는 것. 선거법상의 허위사실 공표죄(250조)와 후보자비방(251),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는 있지만 구체성이 없으면 적용이 어렵다.

민국당의 ‘영남정권 창출’이나 ‘영도다리 투신’ 등 세몰이 차원에서 나온 발언은 처벌이 어렵다는 얘기다. 더 큰 애로점은 처벌에 뒤따를 편파시비가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검찰과 선관위가 답답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민심이 지역감정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계속 여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지역정서와 투표가 일치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평소 지역감정을 배격하던 유권자들이 막상 투표장에서는 지역인사를 선호하는 투표행태가 재연되기를 각 정당이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6대 총선에서도 이같은 행태가 반복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광주 참여연대 한 관계자의 이야기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호남이 정권을 잡은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 총선연대 리스트에 오른 민주당 인사 중 적어도 몇명은 떨어질 것이다. 역시 문제가 있는 다른 후보가 반사이익을 보겠지만 지역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것은 지역감정 해소란 대의를 위해 불가피하다.” 지역감정 문제의 최종적 해결사는 유권자와 시민단체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