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20대 장애인의 꿈' 섬으로 팔려 노예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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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환자 수백명 인신매매단 적발…솜방망이 처벌 피해 키워

'장애인의 날'인 오늘(20일) 장애인과 생활보호 대상자 수백 명을 전남 일대 어선에 팔아넘긴 인신매매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 일자리를 갖고 싶은 20대 장애인의 꿈 = " 월수입 200-400만 원 확실 보장", " 숙식 제공, 선원 훈련 무료"

정신지체장애 2급을 앓아온 이 모(24)씨는지난 1월쯤, 우연히 생활광고지에 난 광고를 보고 부산 남포동에 있는 A선원을 찾았다. 일거리는 전남지역에 있는 섬을 돌며 그물을 손질하는 일이고, 월수입은 최소 300만 원까지 보장된다는 것이 A선원 총책 강 씨(44)의 설명.

평생 직장없이 지내다 처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이 씨는 고민할 여지 없이 전남 목포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바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이씨는 여관을 전전하는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총책 강 씨는 이씨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일자리를 주겠다."며 술을 먹였고, 윤락녀를 데려와 성관계도 강요했다.


결국 500만원 상당의 비용은 고스란히 이씨의 빚으로 남게 됐고 부채를 갚으라는 명목으로 전남 낙도에 팔아 넘겨졌다.

평생 제대로 일을 해보지 않은 이씨에게 선상생활은 악몽 그 자체.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같은 수법으로 수백만 원의 빚만 더 지게 될 뿐이었다.

결국 한 달 동안 이씨는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소개비와 외상값으로 1천 300만 원의 빚만 지게 됐고, 선불금은 총책 강 모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런 수법으로 지난 2005년 4월부터 장애인, 중증 폐결핵 환자 등 443명을 전남 서해안으로 인신매매한 뒤 1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해양경찰서는 인신매매단 '영호파' 총책 41살 강 모 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달아난 목포 총책 3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은 현재 피해자 400여 명 가운데 확인된 장애인은 5명이지만 이 씨 같은 수법으로 인근 섬에 끌려간 장애인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3년동안 인신매매, 왜 안잡혔나? = 이들은 자신의 범행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서에 자진 출석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무허가 선원 소개의 경우 먼저 자수할 경우 몇 백만원 정도의 벌금만 물면 된다는 법의 허점을 노린 것.

경찰조사결과 총책 강씨는 피해자들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인근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 먹고살기 어려워서 무허가 소개업을 했다." 고 진술해 200만 원 상당의 벌금형을 받는 수법으로 인신매매 사실을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400여 명에 이르는 인신매매 피해자들도 대부분 혼자 생활하는 독신이 많았고, 가족들이 실종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3년 동안 범행의 실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 계속되는 불법 선원 소개, 인신매매…처벌은 솜방망이 = 서해안 낙도 지역의 경우 열악한 환경 탓에 건강한 선원들 조차 승선을 꺼리는 곳. '노예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선주들은 불법 선원 소개나 인신매매 방법이 아니면 선원을 모집할 수 없어서 강 씨 일당의 소개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경찰이 서해안 도서 지역을 탐문수사에 나섰을 때도 선주, 양식업주들이 앞으로 선원 모집이 더 어려워 질까봐 수사를 회피하기도 했다.

또, 인신매매가 선원 소개 멍목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지만 처벌이 약하다는 점도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허가 선원 알선의 경우 초범은 벌금 50만 원, 재범일 경우도 벌금 100~200 만 원 정도에 그친다.

총책 강씨도 남포동 일대에서 무허가 인신매매 소개업을 하는 이들에게 "벌금만 조금 내면 큰돈을 모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처음 범행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악랄한 수법으로 장애인 인신매매가 이뤄졌어도 '직업안전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상당의 벌금에 머물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처벌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산CBS 김혜경 기자 hk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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