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에 대해서는 일본서기가 맞다
by Silla on 2022-08-31
ᐥ❶ 일본서기(720)┆蓋鹵王(~476) → 汶洲王(477~) → 文斤王(~479) → 東城王(479~502) → 武寧王(502~523)┆汶洲王과 昆支 모두 蓋鹵王의 동생이며 東城王과 武寧王 모두 昆支의 아들이나 武寧王의 친부는 蓋鹵王 ┆ ❷ 삼국사기(1145)┆蓋鹵王(455~475) → 文周王(475~477) → 三斤王(477~479) → 東城王(479~501) → 武寧王(501~523)┆부자관계는 蓋鹵王-文周王-三斤王과 蓋鹵王-昆支-東城王-武寧王ᐥ

삼국사기는 이 시기의 왕위계승이 蓋鹵王(455-475) - 文周王(475-477) - 三斤王(477-479) - 東城王(479-501) - 武寧王(501-523)으로 이어진다고 하고 부자관계는 蓋鹵王-文周王-三斤王으로 이어지는 갈래와 蓋鹵王-昆支-東城王-武寧王으로 이어지는 갈래가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일본서기에는 汶洲王과 昆支가 모두 蓋鹵王의 동생이며 東城王과 武寧王은 모두 昆支의 아들이고 武寧王의 친부는 蓋鹵王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믿을만한지는 19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이 갈라놓았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는 무령왕이 523년에 62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되어 있다. 滿62세를 의미하는 거라면 태어난 해는 461년이 되어 일본서기와 일치한다. 이것을 삼국사기의 계통에 적용하면 개로왕은 증손자인 무령왕을 보고도 14년을 더 왕으로 재직한 셈이 된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훨씬 자연스럽고 또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