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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영화9년명 문자전돌

1932년 평양시 평양역 구내 공사도중 고구려 고분으로서는 매우 이질적인 벽돌과 돌을 함께 사용하여 만든 무덤 하나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긴 네모형의 무덤방과 널길[羨道]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방의 천장은 이미 무너져내렸으나 맞조으기식[穹窿狀] 천장 구조로 추정된다. 무덤방은 벽면 중간 아랫부분을 벽돌로 쌓고 그 윗부분은 갈아낸 네모난 돌로 쌓아 만든 벽돌과 돌의 혼합 구조였다.

잘 알다시피 평양 지역에는 낙랑의 벽돌무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벽돌과 돌을 혼합하여 쌓은 무덤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무덤방과 널길의 구조가 낙랑 후기의 벽돌무덤과 같은 한 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낙랑 후기의 벽돌무덤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더구나 무덤방을 쌓는 데 쓰인 벽돌의 문양은 중첩된 마름모형으로 낙랑 벽돌무덤의 벽돌 문양과 같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평양 지역에는 벽화고분을 포함하여 고구려의 돌방무덤들도 많이 알려져 있어 고구려 돌방무덤과의 관련성도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대체 낙랑과 고구려 중 어느 쪽의 무덤이었을까. 무덤 안에서는 굵은고리귀걸이 한 쌍과 금동으로 만든 투조 금구, 쇠못, 뼈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그중에 굵은고리귀걸이 정도가 전형적인 고구려 귀걸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무덤에 묻힌 사람은 고구려인일 가능성을 높여주었지만, 오히려 어떻게 고구려인이 낙랑 무덤에 묻힐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만 더할 뿐이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는 무덤 벽에 쌓은 벽돌 사이에 세워서 끼워 넣은 벽돌 한 장이 쥐고 있었다. 이 벽돌에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총 21자의 귀중한 글씨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벽돌에는 "353년에 요동·한·현도군을 관할하는 태수인 동리가 만들었다(永和九年遼東韓玄菟太守領佟利造)"고 쓰여 있었다. 무덤이 조성된 연대와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그는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영화(永和)는 중국 동진의 제(帝)나라 때 가용한 연호로 영화 9년은 서기 353년에 해당한다.

그런데 낙랑이 313년에 멸망하였으니, 낙랑 멸망 후 42년이나 지난 고구려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이었다. 이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게 되었다. 낙랑의 벽돌무덤이 낙랑 멸망 후에도 상당 기간 영향을 미쳐왔으며, 낙랑 벽돌무덤에서 고구려 돌방무덤으로 교체되어 가는 과도기의 무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덤 주인공은 낙랑시기부터 고구려시기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중국 유민이었던 듯싶다. 고구려는 낙랑을 멸망시킨 후 얼마간은 중국 유이민을 매개로 하여 지배력을 관철함으로써 낙랑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시켜 나갔던 것이다. 동리는 바로 고구려의 낙랑고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나가는 데 이용된 인물로, 아마 안악 3호무덤의 주인공인 동수(佟壽)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또 이 무덤에서 문자전돌이 출토됨으로써 낙랑 벽돌무덤의 소멸 시기와 고구려 돌방무덤의 조성 연대를 추정하는 기준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낱 볼품 없는 조그만 벽돌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많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영화9년명 문자전돌 출토 모습

영화9년명 문자전돌 출토 모습

영화9년명 문자전돌

영화9년명 문자전돌 평양시 평양역 구내 출토, 길이 35.2×14.5㎝, 두께 4.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제공처 정보

문화 유산 시리즈 <한국 미의 재발견> 제7권.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천 년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역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을 분야별로 나누고,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어 누구나 쉽게 우리 미술에 담긴 철학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풍부한 컬러 사진과 자료, 도표 등을 통해 생생한 볼거리와 감상의 묘미를 전해준다. <고분미술Ⅰ> 편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고분미술 양식을 소개하였다. 삶의 모습과 그들이 꿈꾸었던 내세를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통해 힘과 기백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고구려인들의 화법을 만나볼 수 있다. 독특한 무덤 양식과 장인의 숨결이 서려 있는 백제의 고분과 유물들은 웅진시대와 사비시대로 나누어 살펴본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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