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리(德興里) 벽화무덤은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 구역 덕흥동 무학산 옥녀봉 남단 구릉에 자리잡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石室封土墳]이다. 1976년 관개공사 중 발견된 이 무덤은 구릉 위를 조금 파낸 반지하식 묘광(墓壙) 안에 잘 다듬고 갈아낸 석재로 축조하였으며,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무덤의 형태는 널길[羨道], 전실, 이음길,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두칸무덤[二室墓]이며, 널방에는 북쪽으로 치우쳐 널받침이 놓여 있다. 천장은 네 벽을 오므려 쌓아 올라가서 큰 판석으로 덮은 궁륭평행고임식 구조이다.
널방 안의 벽면에는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는데, 벽화의 내용은 주로 생활 풍속을 주제로 하였다. 널길에는 인물, 수문장, 연꽃 등을 묘사하였으며, 아울러 이 무덤을 폐쇄한 때가 409년[己酉年] 2월임을 명시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실과 널방의 네 벽 모서리와 천장에는 기둥과 들보, 도리 등을 그려 목조가옥처럼 묘사하였다.
그리고 전실 벽면에는 주인공이 화려하게 장식된 방에 앉아 13군 태수의 배례(拜禮)를 받는 모습과 함께 여러 신하와 개마무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소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가는 주인공의 장엄한 행렬도가 그려졌다. 천장에는 해와 달, 하늘 별자리와 기린[瑞獸], 천인(天人) 등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이음길 양 벽에는 남녀 주인공의 나들이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들의 우아한 모습이 옛 고구려 여인들의 풍취를 자아낸다.
널방 안쪽 벽에는 서쪽으로 치우친 벽면에 긴 자루부채[長扇]를 든 시종 네 사람이 무덤 주인공 곁에서 호위하는 모습을, 동벽에는 연못과 칠보행사(七寶行事)가, 서벽에는 말 위에서 활쏘는 장면을 묘사한 마상유희도(馬上遊戲圖)와 고상 창고가, 남벽에는 마구간과 외양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천장에는 연꽃무늬 등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무덤의 전실 안쪽 벽 상단에서는 총 14행 154자의 무덤 주인 진(鎭)의 묵서(墨書) 묘지명이 발견되었다. 이 묘지명에 따르면, 무덤 주인공은 군 신도[현] 도향 감리(郡信都[縣] 都鄕 甘里) 출신의 진(鎭)이라는 사람으로, 유주자사(幽州刺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77세로 생을 마감하여 영락(永樂) 18년(408) 12월에 무덤 완성 후 영구(靈柩)를 옮겼다고 한다.
이 기록은 국내외 학계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특히 무덤 주인공 진의 출신국 문제에 집중되었다. 대체로 북한 학자들은 진을 고구려인으로 보는 데 반해, 남한과 중국,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인 망명객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는 아직 통일된 견해가 도출되지 못한 채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덕흥리 벽화무덤은 풍부한 벽화 내용과 더불어 무덤의 주인공과 축조 연대를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구려 고분으로,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겠다. 또한 묘지명과 더불어 벽화의 각 장면마다 거의 빠짐없이 붙여놓은 비교적 자세한 설명들은 덕흥리 고분벽화 자체의 내용을 넘어 다른 벽화고분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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