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숭이 부대 이야기 평가
by Silla on 2023-04-19
원숭이 부대에 관한 기록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번째는 양호가 소사 전투에서 수백 기의 원숭이 기병을 투입했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유정의 부대에서 전투에 활용될 수 있는 원숭이 몇 마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며, 세번째는 철수하는 명나라 군대를 환송하는 행사에 300마리의 원숭이 부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각각 1597년, 1598년 그리고 1599년의 일이다.
원숭이에 대한 표현도 각각 농원(弄猿), 초원(楚猿), 원병(猿兵) 등으로 조금씩 달리 표기되고 있다.
손기양과 조경남의 기록은 일기처럼 적은 것으로 두 사람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이다. 두 사람은 당시에 활동 지역이 서로 달랐고 두 기록의 내용에도 조금 차이가 있어 두 사람의 기록은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두 독립적인 기록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그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유정의 부대에 말을 잘 다루고 적진을 교란시킬 수 있는 원숭이가 있었다는 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양호가 그런 원숭이 수백 마리를 말에 태워 전투에 투입하였다는 이야기도 가능성이 생긴다.
이 원숭이들은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적의 말고삐를 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이용되었을 뿐, 적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런 정도의 일은 원숭이를 훈련시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도 원숭이를 훈련시켜, 나무에 올라가 코코아 열매를 따게 한다거나 양치기 개를 타고 로데오 경기장을 달리게 한다거나 말을 타고 서커스 무대를 돌게 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원숭이 부대의 이야기가 당대의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느냐는 데서 의문이 생긴다. 또 수백 기나 운영되었다면 이전이나 이후에라도 중국의 기록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는 사실도 의문을 더하게 한다.
그래서 유정의 부대에 있었던 원숭이 몇 마리 이야기가 후대에 소사 전투의 원숭이 부대 이야기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전서화첩에 그려진 원숭이 부대는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상상화로 설명이 된다.
한편, 소사 전투에 투입된 농원수백기에 대해 특수 부대를 원숭이로 오인한 것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설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된 모든 기록에서 사람이라 한 부분이 전혀 없고 또 달단 철기에 앞서 투입될 인간 기병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한편, 명나라 때는 청계광이란 장수가 원숭이로 하여금 화기를 익히게 하여 왜구를 토벌하는 데 써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의 총은 한 발을 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또 불이 붙은 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원숭이를 훈련시킨들 총을 쏘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이야기는 시기적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일이다. 따라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소사 전투의 원숭이 부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때의 경험이 소사 전투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원숭이 기병의 개념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양호는 소사 전투에서 달단 철기에 앞서 원숭이 기병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것은 원숭이 기병이 달단 기병과 전술적으로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척계광은 1566년 이후 북쪽 변경으로 임지를 옮겼는데, 이때 척계광에 의해 원숭이 부대가 달단으로 전해졌고 그곳의 기마 문화와 결합하여 원숭이 기병으로 발전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중국 기록에서 그런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