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29일 임정 주최로 경교장에서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구는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자는 매국노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송진우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처하자”고 했다. 송진우는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 공산당이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생각에서 김구와 맞섰다. 송진우와 김구의 면담은 12월 30일 새벽 4시에 끝났으며 두 시간 후 송진우는 자택에서 청년단의 저격을 받아 죽었다. 송진우를 살해한 암살범중의 한 사람인 한현우는 후에 송진우가 미국의 후견을 지지한 것이 자신의 저격 동기였다고 말했다.
1947년 12월 2일 한국민주당 장덕수가 자택에서 현직 경찰이던 박광옥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배희범 등 5명이 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한국민주당은 김구와 임정계를 일제 시대 악명 높은 사교 집단인 백백교에 비유하면서 "살인마의 조직과 명령 계통을 근절하라"고 촉구하였다.
ᐥ1948년 5.10 총선을 앞두고 한국민주당은 김구와 김규식의 주장이 남로당 주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들을 '크렘린 궁의 사자'라 비난하였다. 또 '만천하 동포에게 고함'에서 김구의 토지국유정책을 들어 공산당과 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공격했다.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