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년에 편찬된 宋書에는 '高驪가 遼東을 차지하자 百濟는 遼西를 차지하였다. 百濟는 치소를 두고 晋平郡 晋平縣이라 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다른 역사 기록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죠.
西晉 말에 慕容部 선비가 昌黎, 遼東 등 平州를 차지하자 段部 선비가 遼西, 北平 등 幽州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이 慕容部와 段部를 각각 高驪와 百濟로 잘못 적었다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晋平은 北平의 오기가 되겠죠.
高驪와 百濟가 각각 遼東과 遼西를 차지하였다는 宋書의 이 기록은 梁職貢圖, 梁書, 南史, 通典 등을 거쳐 한국의 국사 교과서로 이어졌습니다.
「宋書」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謂之晋平郡晋平縣
「梁職貢圖」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梁書」
晉世 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 地矣自置百濟郡
「南史」
晉世 句麗既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 地矣自置百濟郡
「通典」
晉時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 今柳城北平之間
「고등학교 교과서」
정복 활동을 통하여 축적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백제는 수군을 정비하여 중국의 요서 지방으로 진출하였고, 이어서 산둥 지방과 일본의 규슈 지방에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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